실제 우사인 볼트 선수 트위터 계정에 올라온 '무도' 멤버들의 사진.

실제 우사인 볼트 선수 트위터 계정에 올라온 '무도' 멤버들의 사진. ⓒ 우사인 볼트 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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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특집'을 기대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자메이카 출국에 대한 기사가 나온 터였고, 뒤이어 멤버들이 기록적인 폭설로 피해를 본 강원도 산간 지방을 방문했다는 소식도 전해진 후였다. 일단, 기대를 한 풀 꺾으면 마음이 평온해지는 법이다.

<무한도전> 22일 '자메이카' 특집이 그랬다. 좌절된 밀라노행의 결과를 전하는 한편 같은 시기 거론됐던 자메이카 레게 페스티벌 참여 여부로 자연스레 연결됐다. '탐정특집'이 일으킨 반향에 이미 기획됐던 해외 프로젝트를 연이어 편성하는 운용의 묘랄까.

여기에 강원도 제설 참여가 아무래도 시의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그림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이날 방송에선 아직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지만). 그렇게 이날 방송은 끊임없는 교차편집 아래 자메이카로 향하는 하하 팀의 여정과 유재석과 함께 서울에 남은 4인의 이야기를 병렬시켰다. 9년이란 시간이 주는 익숙함, 그 거부할 수 없는 무기를 손에 쥔 채.

우사인 볼트의 SNS 한 줄만으로 웃음을 뽑아내는 '무도'의 노력과 기지

 <무한도전> '자메이카 특집'의 한 장면.

<무한도전> '자메이카 특집'의 한 장면. ⓒ mbc


그렇게, 긴장이 필요했던 '탐정특집'과 달리 '자메이카' 특집은 지속해서 익숙한 그림을 환기하게 시켰다. 자메이카 출신 육상영웅 우사인 볼트를 만나기 위해 SNS 접선에 공을 들이는 섭외 노력은 '무도' 멤버들이 '평균 이하 남자들'로 불릴 수 있던 시기, 김연아 선수나 앙리 선수를 만나며 호들갑을 떨던 멤버들의 초창기 모습과 닮아 있었다.

심지어, 자메이카행에 동참하지 않은 박명수와 정준하, 길은 유재석으로부터 끊임없이 4년 전 번지점프 멤버들로 놀림을 받아야 했다. 그때 그 '예능 인생 최악의 시간'으로 꼽혔던 프로그램 화면이 전파를 탄 것은 물론이었다. 위기 상황도 기회로 만들고, 엎어진 특집도 '땜질'로 되살려내는 '무도' 제작진의 이 기지라니(은메달을 딴 김연아 선수를 빗대 신속하게 자막에 반영한 감각도 역시...).

운도 따랐다. 생각지도 못한 우사인 볼트의 트위터 리트윗(그의 트위터 계정엔 아직도 방송에 나간 사진이 남겨져 있다)이 타전되면서 의외의 재미를 안겨줬다. 예상치 못했던 우사인 볼트의 반응 하나 때문에 새벽에 다시 모인 김태호 PD 이하 작가들이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멤버들을 찍는 풍경은 꽤 이색적이었고, 한편으론 방송을 위한 '무도' 제작진과 멤버의 노력을 효과적으로 자랑(?)할 기회이기도 했다.   

의외의 상황으로 웃음을 만들기는 서울팀도 마찬가지. 이제는 보편화한 리얼 예능의 창시자들답게 휴게소에서 일반 시민들과 벌인 멀리뛰기, 달리기, 팔씨름 경기로 잔잔한 재미를 안겨주는 상황은 역시 '무도'다웠다. 그러니까, 이날 방송은 자메이카에 도착한 직후까지와 강원도를 향하는 길목까지만 보여준 셈이다. 메인 음식은 남겨둔 채 식전 애피타이저로 잔잔한 재미를 엮어낸 것과 마찬가지랄까.     

초심에 가까웠던 자메이카 멤버의 얼굴, 반가웠다

 <무한도전>만의 감각을 엿볼 수 있었던 '김연아' 자막.

<무한도전>만의 감각을 엿볼 수 있었던 '김연아' 자막. ⓒ mbc


잘 알려진 대로, '무도'는 집중을 필요하는 게임과도 같은 특집이 있지만 서사와 성장이 중요한 장기 프로젝트가 중심축 역할을 해 왔으며, 그 사이사이 예능의 정석인 슬랩스틱 코미디와 같은 단발성 특집이 쉬어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줬다. 그리고 종종 해외특집이 있었다.

알래스카에서 고생하기도 했었고, 잠시 일본에 날아가 인기를 확인한 적도 있었으며, 뉴욕 특집으로 정점을 찍기도 했다. 싸이의 타임스퀘어 앞 ABC 프로그램 라이브 공연에 초대되기도 했다(물론 호불호가 확연히 갈렸던 비교적 최근의 하와이 특집도 있었다). 

<무한도전>이란 쇼 자체가 비대해진 것과 궤를 같이하며 해외 특집 역시 규모나 위상이 달라져 왔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자메이카 특집'은 오히려 초심으로 돌아간 듯한 멤버들의 호들갑과 화려하지 않은 자메이카의 풍광이 겹쳐져 꽤 소탈하게 다가왔다. 해외 특집 특유의 생경함 들은 간직한 채 좀 더 초심에 가까운 분위기랄까.

흥미로운 것은 '자메이카 특집'이 지난주 '탐정특집'에 이어 편성되면서 무도의 너른 영역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친숙한 분위기와 낯선 풍광이 공존한 해외 특집과 피해 복구(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방영됐지만)라는 의미가 강조되는 분량을 2주 사이에 함께 가져갈 수 있는 '예능'은 오로지 '무도' 뿐이다.

개인적으로 정준하와 노홍철에게는 미안하지만 밀라노 행이 좌절된 것이 다행이라 여기는 편이다. 그 화려하고 장벽 높은 패션쇼 무대에서 성장이란 서사를 다루기도 어려울 뿐더러 나머지 멤버들의 지분도 줄어들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프로그램과 멤버들의 영향력이 비대해지면서 '스포일러'를 항상 신경써야 하는 상황에까지 다다른 '무도'.

'탐정특집'에 이은 '자메이카 특집'이 반가웠던 이유도 이 비대해진 위상에 있다. 자의 반 타의 반 힘들어진 장기 프로젝트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제작진이 과거 잘 해왔고 잘할 수 있던 특집들의 창조적인 재활용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움에 대한 강박이나 장기 프로젝트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우사인 볼트의 리트윗 하나에 호들갑을 떨던 정형돈과 하하, 노홍철의 얼굴, 참 오랜만이어서 더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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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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