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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신문 지면에 반말 제목의 기사를 버젓이 발행하고 있다.
 언론은 신문 지면에 반말 제목의 기사를 버젓이 발행하고 있다.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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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난데없이 가족놀이에 빠졌다. 웃어른이 아랫사람을 하대하듯, 언론은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을 향한 기사 제목에 반말을 쓰고 있다. 2월 12일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 결승에서 이상화 선수가 우승하자, 다음날 조선일보는 "상화야 이제 맘놓고 웃어"라며 친오빠 행세를 하더니, 2월 19일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결승에서 한국 선수들이 역전승을 거두자 동아일보는 "맘고생 심했지? 실컷 울어"라며 선수들의 아빠라도 되는 양 다독이는 모양새를 보였다. 21일 김연아 선수가 피겨스케이팅 은퇴 경기에서 은메달을 수상하자 "넌 만점"과 같은 제목의 기사를 신문 1면에 배치하여 수능을 치른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평소에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언론은 선수들이 메달을 획득하자, 마치 해외 유학을 보낸 자녀가 학위라도 따온 것 마냥 대하며 유사 가족주의적 태도를 보인다. 언론이 보이는 태도의 핵심은 반말이다. 대체 언론은 무슨 자격으로 웃어른을 자처하면서 선수들에게 반말을 할까.

그것은 아마 '나이' 일 것이다. 기사를 쓴 기자 또는 편집부는 선수들보다 자신의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선수들을 향해 반말을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나이를 권력으로 만드는 나이주의. 나이주의는 출생의 선후관계, 다시 말해 나이의 많고 적음만으로 윗사람과 아랫사람이라는 권력관계를 설정하고, 반말이라는 무기를 마음껏 휘두른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연륜을 가진 성숙한 인간이고, 어린 사람은 아직 사회를 경험하지 못한 미성숙한 아이로 취급하는 것이 나이주의다.

또 눈에 띄는 것은 언론의 반말 제목이 대부분 여자 선수들을 향한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 소치 올림픽에서 여성 선수들의 활약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진 것은 사실이다. 오죽하면 한겨레 칼럼에서 "한국 여성은 왜 우수한가?"라는 제목으로 변태-우생학적 기사까지 나온 실정이다.

그러나 남성 선수들의 활약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졌을 때와 비교하면, 언론의 논조의 차이는 명확히 드러난다. 이번 올림픽 이전 가장 근래의 올림픽인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양학선 선수가 한국 선수 최초로 체조부문에서 금메달을 얻었을 때,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의 신문 1면은 각각 "양학선 날았다 … 한국 체조 사상 첫 금", "神技의 양학선 체조사상 첫金"였다. 현재 언론이 여자 선수들을 향하는 제목처럼 반말의 대화체가 아니라 간결하게 사실만 요약하여 제목을 정했다.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상호 간의 위치를 설정하는 것을 기반으로 한다. 어린 여성 선수들을 향한 언론의 반말 사용은 그녀들을 낮은 사람, 아랫사람, 약자로 단정 지어버린 결과다. 언론의 논조는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의 틀 안에 있다. 결국 언론의 반말 사용은 한국사회 깊숙하게 뿌리박혀 있는, 그리고 만연한 젊은 여성에 대한 일반 남성의 시시한 우월의식, 그리고 대부분의 연장자에게 만연한 나이주의가 언론을 통해 여과없이 표출된 것이다.

미국의 사회운동가 필립스(Wendell Phillips)는 "사람은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좋은 포도주처럼 익어가는 것"이라 말했다. 그런데 지금 언론이 보여주는 태도는 우리 사회의 연장자들이 좋은 포도주처럼 익어가는 것이 아니라, 질 나쁜 포도주처럼 썩어버렸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goham20.com에 중복게재될 예정입니다.



태그:#올림픽, #반말, #나이주의,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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