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쇼박스가 투자, 배급한 영화 <관상> 포스터
 쇼박스가 투자, 배급한 영화 <관상> 포스터
ⓒ 주피터 필름

관련사진보기


지난해 가을 흥행한 <관상>이라는 영화에서 "사람의 얼굴에는 세상 삼라만상이 모두 다 들어 있다"고 했다. 얼굴의 상을 보아 길흉화복을 점치는 관상과 밀접한 학문이 바로 '사주'다. 사주(四柱)란 사람을 하나의 집으로 비유하고 생년, 월, 일, 시를 그 집의 네 기둥이라고 보아 붙여진 명칭이며, 각각 간지 두 글자씩 총 여덟 자로 나타내므로 '팔자'라고도 불린다. 그래서 흔히 사주팔자를 풀어보면 타고난 운명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사주가 좋거나 나쁘다는 것은 곧 자신의 타고난 운이 좋거나 나쁘다는 것과 연결된다.

기자의 어머니는 실로 '사주 마니아'다. 집안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은 실행 전에 꼭 사주를 보고 나서 결정한다. 워낙 어려서부터 "에휴, 내가 남편복은 없어도 자식복은 있대", "올해는 뭘 조심해야 한다던데" 하는 엄마의 말을 자주 듣다보니, 자연스럽게 나도 점 보는 게 어색하지 않다. 그동안 낸 복채로 작은 샤○ 가방 하나는 너끈히 살 수 있을 정도.

특히 '취준생(취업준비생)'이라는 카오스 속에 놓인 지금은 더더욱 '운명' 따위에 의존하게 되는 것 같다. 따라서 올해는 신년 운수를 좀 거창하게(?) 여러 군데서 보기로 했다. 종각에 있는 유명한 사주카페 한 곳과 건대입구에 있는 사주카페 두 곳을 가봤다. 과연 올해 취직할 수 있다는 점괘가 나올 것인가, 두근두근.

"제가 올해 취직을 해야 하는데요, 잘 될까요?"

점을 보면, 설명하면서 보통 이런 종이에 점괘를 적어준다. 들을 때는 다 알 것 같은데, 집에 와서 다시 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 안 가는 내용도 많다.
▲ 사주, 신년운수 설명 종이 점을 보면, 설명하면서 보통 이런 종이에 점괘를 적어준다. 들을 때는 다 알 것 같은데, 집에 와서 다시 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 안 가는 내용도 많다.
ⓒ 남기인

관련사진보기


종각의 '오○'라는 사주카페는 엄마가 강력 추천한 곳이다. 들을 땐 모르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착착 들어맞는다나 어쩐다나. 종합사주의 복채는 3만 원이고 4000~5000원 정도의 음료를 따로 시켜야 한다. 전화로 예약을 하고 갔더니 차분한 여자 원장님께서 사주를 봐주셨다. 이 원장님의 장점은 굉장히 꼼꼼하게 봐준다는 것이다. 2014년의 전반적인 신년 운수와 각 월별 운세를 봐줬다.

올해는 전체적으로 금전출납의 해란다. 돈이 들어온 만큼 그대로 나가기 때문에 벌어도 쓸모가 없다는 식이었다. 지난 달에 설 단기판매 알바로 번 짭짤한 100만 원이 다시 내 품을 떠난다는 생각을 하니 좀 서운했다. 하지만 중요 관심사는 그게 아니었다.

"저… 선생님, 제가 올해 취직을 해야 하는데요, 잘 될까요?"       
"음, 나쁘지 않다고 나와~. 사주 자체는 안정되고 좋은 직업을 갖는다고도 하고. 특히 기인이는 사주에 귀인이 들어 있어서 어려울 때 도와주는 사람이 많아."
"나쁘지 않다는 것은 곧 좋지도 않은 건가요?"
"올해보다는 내년이 더 좋은데, 올해도 나쁘진 않다는 거지. 갑오년의 말이라는 글자가 너한테 관, 명예라는 글자로 작용해. 원래 공무원을 해야 하는 팔자인데, 그게 싫다면 뭐라도 되긴 돼. 혹시 나중에 생각 있으면 해외로 유학을 다녀와도 좋아. 사주에 물의 기운이 부족해서 물 건너갔다 오면 좋거든."

건대입구에 있는 '사주○○'이라는 사주카페에서도 비슷한 운세가 나왔다. 크게 좋지도 않지만 나쁘지도 않아서,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직업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그곳은 사주카페라기보다 그냥 작은 술집 같은 분위기였다. 복채는 1만5000원. 특이했던 점은 기자의 사주를 봐준 사람이 타로도 함께 볼 줄 아는 분이라, 어떤 직업이 잘 어울릴지 등의 세부적인 내용은 타로 카드를 통해 알려줬다는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기자를 직업 삼지는 말라는 조언을 해줬다. 권태로움을 자주 느껴, 때려치울 위험이 크다고 했다. 젊은 남자분이라 좀 의심스러웠지만, 조곤조곤하고 꼼꼼하게 설명해줘 복채가 아깝지 않았다. 무엇보다 올해 도화살(점술에서 흔히 호색과 음란을 말하는 살로, 예전엔 나쁜 의미였지만 요즘엔 남자에게 인기가 많다는 의미로 여김)이 들어서 남자가 자주 꼬일 수 있다는 점괘가 마음에 들었다. 그렇구나, 조심해야겠구나. 흐뭇.

"시집은 28살에 애가 생겨서 갈 가능성이 높아" 

색깔로 사주를 봐준다는 카페의 특성상 이걸로 봐주는 것 같은데, 그냥 허울뿐인 듯. 색에 대한 설명은 잘 못하고 막말은 잘하더라.
▲ 사기꾼 냄새 나는 아저씨의 보조품(?) 색깔로 사주를 봐준다는 카페의 특성상 이걸로 봐주는 것 같은데, 그냥 허울뿐인 듯. 색에 대한 설명은 잘 못하고 막말은 잘하더라.
ⓒ 남기인

관련사진보기


문제는 건대입구의 '○○사주'라는 사주카페였다. 다른 사람들이 인터넷 블로그에 올린 후기에는 칭찬이 자자했건만,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인터넷에서 유명한 '그분'은 예약이 꽉 차서 도저히 만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시간이 되는 사람에게 점을 보겠다고 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아저씨 점쟁이가 내 자리로 와서 앉았다. 기대도 잠시, 그는 첫 마디부터 내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다.

"불의를 보면 그냥 피하는 타입이죠? 안정적으로 편하게 살고 싶어 하고…. 게을러."
"(이 자식이 뭐라는겨? 그런 건 됐고) 올해 취직을 하고 싶은데요."
(얇은 나무 막대기 여러 개를 흔들더니) "그럼 한 번 뽑아볼래요? 오오 운이 좋아, 괜찮아."
"안 좋게 나오면 안 좋게도 말해주시나요?"
(사기꾼 냄새 솔솔) "어 그럼, 안 좋게도 말해주지. 내가 만약에 어른들 상대하는 거였으면 '내가 이거 붙게 해줄 테니 몇 백만 원 내세요' 할 텐데 학생이니까 뭐. 근데 그럴 필요도 없이 이런 운은 될 운이니까 솔직하게 말하는 거야."

그리고 그의 막말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음, 시집은 늦게 가는 게 좋은데, 28살에 애가 생겨서 갈 가능성이 높아. 특히 올해는 몸이 활기를 띠고 건강해져서 성욕도 더 많이 일어나, 조심해. (기자가 이상한 표정을 짓자) 얘, 여자는 성욕이 없는 줄 아니? 여자가 더 쎄~. 한번 일어나면 오래 가."
"(이미 남친이 있는데 어디 한 번 뭐라 그러나 보자.) 올해 연애운은 어떤가요?"
"꽝인데? 취업할 생각이나 해. 올해 남자 없으니까 취업하고 나서 만나."
"(뭐라고 이 자식아?)"

내 생에 이렇게 기분을 상하게 한 점괘는 처음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복채를 내고 나왔다. 다시는 여기 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28살엔 몸가짐을 조심해야겠군'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종착점은 '다른 곳에 가볼까? 이것보단 좋은 소리를 듣겠지'였다. 마치 좋은 점괘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라고나 할까. 혼자 보러 가기는 심심해서 '절친'한테 얘기했더니, 그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런 걸 너무 자주 보러 다니는 네 모습이 좀 생각 없이 보일 때가 있어. 점괘가 맘에 안 들거나 점쟁이가 별로면 또 다시 보러 가잖아."
"그게 뭐 어쨌다고. 당연한 인간의 심리 아니겠어?"
"특히 복채나 이런 게 제멋대로고, 점쟁이가 너한테 마땅한 상품가치를 제공한 건지 알 수 없는 것 같아. 아까 봤던 아니꼬운 점쟁이한테도 돈은 냈을 거 아니야!"
"그래 그건 맞아. 거의 성희롱도 당했다고."
"뭐 그냥 좋은 소리 들으러 가는 거겠거니 하고 있지만, 좀 그래."

아닌 줄 알면서 자꾸 믿으려 하는 어리석음이여

과연 내가 현대의 20대란 말인가. 효과에 회의를 느낄 때도 있지만 심리적 안정감을 주긴 한다.
▲ 휴대폰 케이스 안쪽에 고이 모셔 지니고 다니는 부적 과연 내가 현대의 20대란 말인가. 효과에 회의를 느낄 때도 있지만 심리적 안정감을 주긴 한다.
ⓒ 남기인

관련사진보기


지난해 9월 KBS <안녕하세요>란 프로그램에 나처럼 점괘를 맹신하는 사람이 나왔다. 점을 보기 위해 막노동 아르바이트를 하고, 점괘 때문에 애인과 헤어지는 등 점괘를 100% 믿고 따르는 모습에 많은 방청객들이 놀라워했다. 친구들이 나를 볼 때 느끼는 심정이 그랬을까? 나 역시 그 사람을 보고 '어머, 아무리 그래도 저건 좀 심했네' 하는 생각을 했다. 결국 따지면 피장파장이겠지만.

사실 여러 곳에 점을 보러 다니다보면 말도 안 되는 복채를 받고 말도 안 되는 소리만 줄줄 늘어놓는 사기꾼 같은 점쟁이도 많다. 기자와 같은 일개 학생이야 솔직히 점괘가 아무렇게나 나와도 상관없지만(전적으로, 정말, 완전, 100% 상관없진 않을 테지만) 정말 절박한 사람들은 돈을 뜯어먹으려는 교묘한 상술에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점은 안 보는 게 최선이겠지만 "살 안 빼도 예뻐" 하는 남친의 거짓말처럼 자꾸 믿게 되는, 이걸 어떡하지?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다가 회복되면, 핸드폰 케이스에 고이 지닌 부적을 보고 감사하게 되는, 이걸 어떡하지? 막말도 점괘라고 계속 신경 쓰는 나를 보면 좀 한심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진 점괘가 나에게 주는 낙이 더 큰가보다. 진짜 사기꾼 같은 점쟁이한테 크~게 뜯겨봐야 정신 차리려나? 피식.

덧붙이는 글 | 남기인 기자는 오마이뉴스 1기 대학통신원입니다.



태그:#사주, #신년운세, #점쟁이, #사주카페, #점
댓글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