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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태일의 영정을 붙잡고 오열하는 이소선을 그림
 전태일의 영정을 붙잡고 오열하는 이소선을 그림
ⓒ 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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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유

이소선은 새벽에야 눈을 떴다. 사람들이 부산스럽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병원의 아들 곁이 아니라 그의 집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어젯밤에 그가 기절한 사이에 그를 이리로 데리고 온 것이다. 자신이 어떤 처지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그는 벌떡 일어났다.

"왜 태일이 옆에 놔두지 않고 이리로 데려왔어?"

이소선은 소리를 버럭 질렀다.

"태일이는 이제 숨도 쉬고 괜찮아졌으니까 걱정 말고 숨이나 돌려요."

사람들이 그를 안정시키려는지 차분하게 말했다.

"무슨 소리를 해! 태일이는 그때 죽었는데!"

그의 눈으로 목격한 태일이의 죽음을 속이려는 그들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교회 사람들도 기관에서 나온 사람들한테 압력을 받았는지 자신을 끌어다 앉히기에 급급했다. 태일이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이소선이 교회 사람들 어깨 너머로 바깥을 내다보니 양복을 차려 입은 낯선 사람 셋이 그의 집 문을 들락날락하면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그를 두고 물을 떠먹인다, 팔다리를 주무른다고 야단법석이지만 정작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밖에서 움직이고 있는 양복쟁이들이 자신을 진정시키라고 당부한 것이라고 그는 짐작했다. 이대로 집에 누워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소선은 부엌에 물을 마시러 간다고 사람들을 일단 안심시켰다.

"나를 태일이가 있는 병원으로 못 가게 하는 놈이 있으면 아무 놈이라도 쑤셔버릴 테야!"

이소선은 순식간에 부엌칼을 든 채 방안에 뛰어 들어와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칼을 휘둘러 그들을 위협하면서 마구 밖으로 뛰어 나갔다. 이소선은 동네 입구에 있는 파출소 앞까지 치마가 벗겨진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달렸다. 대로에까지 나와서 버스나 택시를 잡는다고 설쳤다. 그 뒤를 따라온 사람들도 어쩔 수 없었는지 두 손을 들었다.

"우리는 막을 수가 없다. 병원으로 데려다줘야지."

이소선은 그렇게 해서 겨우 택시를 잡아타고 아들이 있는 성모병원으로 갈 수 있었다. 성모병원에 도착하니 아들은 벌써 냉동실에 들어가서 꽁꽁 얼어 있었다. 흘려야 할 눈물조차도 메말라 버렸는지 그는 울지도 않았다. 시체는 요셉이라는 이름으로 안치되어 있었는데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얼굴을 안 보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들은 분명히 죽었다. 자신이 보는 앞에서 죽어갔지 않았던가. 지금부터 중요한 것은 시체를 다시 보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시간을 두고 생각하자.

전태일 남동생인 태삼이가 대구 큰집에 전보를 쳤다.

이소선은 생각에 잠겼다. 아들 전태일의 뜻을 이룰 기회는 지금이다. 이 기회를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 태일이의 뜻을 이룰 수 있다는 보장을 받을 때까지 장례식도 시체인수도 하지 말아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신문기자들이 찾아왔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묻는다. 그는 분명히 잘라 말했다.

"우리 아들의 뜻인 근로조건 개선이 이루어질 때까지 사체를 여기에 둘 겁니다. 우리 아들은 3년 전부터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불철주야 정당한 노력을 해왔어요. 나는 압니다. 우리 아들은 노동청의 기만과 배신 때문에 죽어 갔어요. 하지만 내가 살아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태일이의 뜻을 이룰 겁니다."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하나님, 나의 행동과 입까지 주관해서 나를 어떻게 해주십시오.'

이소선은 쉬지 않고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다. 찾아오는 사람들을 이끌고 "기도합시다"를 되풀이하면서 기도를 바쳤다. 그러는 사이에도 신문이나 라디오에서는 시간마다 전태일과 평화시장에 관한 보도가 끊이지 않고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라디오를 가지고 오더니 그에게 들어보라고 했다.

"라디오를 들으면 뭐합니까?"

이소선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라디오를 들으면 뭘 한단 말인가, 오로지 생각나는 것은 '앞으로 내가 뭘 해야 할 것인가'하는 문제뿐이었다.

사흘째였다. 평화시장의 업주들과 기관에서는 장례식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관은 얼마짜리로 하고, 상복은 어떻게 하고, 꽃차를 만들어서 차는 몇 대를 준비하고, 장지는 어디로 할 것인가 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기도를 드리면서도 그들이 하는 모양을 보고 있으려니 화가 복받쳐 올라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소선은 그들이 얘기하는 곳으로 갔다.

"내가 언제 당신들한테 장례식 해달라고 했소? 그런 거 다 필요 없어 나는 내 아들 태일이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절대로 장례식을 치르지 않을 거야!"

이소선은 사람들이 장례준비를 하느라고 이것저것 써 놓은 종이를 빼앗아 짓밟아 버렸다. 그리고 나서 그는 8개항의 요구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주일 휴가(유급휴일)제 실시. 둘째, 법으로 임금인상(월급공). 셋째, 8시간 근로제 실시(오버타임 수당제). 넷째, 정규 임금인상. 다섯째, 정기적인 건강진단 실시. 여섯째, 여성 생리휴가 실시. 일곱째, 이중 다락방 철폐. 여덟째, 노조결성 지원.

이러한 요구조건은 10월 8일 전태일을 비롯한 삼동회 회원들이 평화시장주식회사에 건의한 내용들이었다. 그야말로 근로기준법에 명시되어있는 사항이 대부분으로서 최소한의 요구조건이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요구조건을 외면하고 노동자의 가장 절실하고 절박한 요구를 기만한 기업주와 정부당국이 결국 아들을 죽인 것이라고 이소선은 생각하고 있었다.

"일단 장례를 치러놓고 그런 것들을 해결합시다."

이소선이 제시한 요구조건을 보더니 당국자들은 뻔뻔스럽게 장례식 문제를 들고 나왔다.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어차피 육신에서 영혼은 떠났는데, 그것은 중요하지 않고 태일이가 원하는 그 뜻이 중요하다. 태일이의 장례는 나 혼자서라도 치를 수가 있다. 시체가 크고 무거워서 나 혼자 못 들고 가겠으면 내가 태일이를 썰어서 목은 목대로 내 치마 폭에 싸가지고 이산 저산에다 하나 묻고, 다리는 다리대로 저 산에다 묻고 해서 장례를 치를 테다. 내가 동강내서 이산 저산에다 묻는 한이 있더라도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장례식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내 아들 내 맘대로 하는데, 왜 너희들이 장례식을 하자 말자 하느냐? 너희가 죽여 놓고 너희가 장례식 하도록 기다린 줄 아느냐!"

이소선이 이렇게 완강하게 버티고 있을 때 옛날 대학을 다녔다는 이웃 동네에 사는 아저씨가 찾아왔다. 그 아저씨는 전태일이 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소선은 그 아저씨한테 지금 자신이 하는 행동이 맞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렇게 하면 돼요."

그 아저씨는 그 말을 하고 앉아 있더니 갑자기 자기가 합의를 본다고 난리를 쳤다. 이소선은 그 사람의 태도에 말문이 막혔다.

이윽고 밤이 되었다. 이소선은 기자하고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방명록을 담당하고 있던 그 아저씨에게 누가 찾아오더니 인사를 나누고 방명록에 서명을 하였다. 서명을 마친 그 사내는 신문지에 싼 덩어리를 책상 위에 얹어놓고 그 아저씨하고 얘기를 주고받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소선이 누군가 하고 보고 있으니까 이소선이 가까이 왔으면 하는 눈치를 보내왔다.

"이게 뭡니까?"

이소선은 다가가서 그 사내한테 물었다.

"이것은 다른 게 아니라 평화시장 업주들이 거둔 것인데 장례식에 쓸 돈을 가져왔습니다."

그 사내는 평화시장주식회사 경비대장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이소선은 온몸에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그 알량한 돈으로 얼버무리려고 하다니......"

"이놈의 새끼들아! 사람을 새까맣게 그슬려 죽여 놓고 너희들한테 장례식해 달라고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아!"

이소선은 돈뭉치를 싼 신문지를 쫙쫙 찢었다. 묶어놓은 돈다발을 풀어 헤쳐서 사방에 돈을 뿌려버렸다. 지폐가 사방으로 흩뿌려졌고 돈 다발째 내동댕이쳐지는 것도 있었다. 경비대장은 급작스럽게 당한 일이어서 어쩔 줄 모르며 허둥지둥 돈을 쓸어 담느라 법석을 피웠다. 바닥에 널려진 돈을 손으로 주을 수가 없었던지 아예 잠바를 벗어서 쓸어담는 것이었다. 이소선은 어찌나 분하고 억울한지 돈을 줍고 있는 경비대장의 잠바를 발로 걷어 차버렸다.

"어떤 놈이든지 이 돈을 줍는 놈이 있으면 내가 칼로 죽여 버릴 테니까 절대로 손대지 마!"

이소선이 발악적으로 소리를 지르니까 동네 그 아저씨는 말리지도 못하고 멍청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경황 중에도 청소하는 아저씨가 들락날락하는 것이 이소선의 눈에 보였다.

"청소하는 아저씨! 이 돈 주워 가요!"

이소선이 다급하게 외치자 청소하는 아저씨는 어리둥절해서 멀거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왜 못 주워요? 돈 주워 가라는데 왜 못 주워 가는 거예요?"

이소선은 돈뭉치를 다시 풀어서 던져 버렸다.

"개놈의 새끼! 어디 와서 돈 가지고 해결하려고 그래!"

옆에 서 있던 젊은 사람이 불쑥 나서서 경비대장에게 소리쳤다. 그 젊은이는 노총에서 나온 사람이었는데 나중에 청계피복노조 초대지부장이 된 김성길이었다. 이소선은 그 젊은이의 말을 듣자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이 옆에 있구나 싶어서 더더욱 힘이 났다. 이소선은 그 돈을 입으로 물어뜯었다.

"여러분, 이 돈은 임자 없는 돈이니까 맘대로 주워가요. 누가 돈 주웠다고 시비하거나 고발도 안 할 테니까 빨리 주워가요. 나는 이 돈 필요 없습니다!"
"이 쌍놈의 새끼! 어디서 왔냐!"

그 젊은이가 설쳐대면서 경비대장의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새까맣게 그슬려서 돈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는 줄 아냐! 이런 도둑놈들아!"

이소선은 분하고 억울해서 소리를 지르다가 쓰러져 버려 응급실로 옮겨졌다.

이소선이 막무가내로 나오니까 안 되겠다 싶었는지 이번에는 교회 목사를 앞세워 이소선을 설득 시키려고 했다. 이소선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목사의 말이라면 거의 절대적으로 순응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소선의 그러한 점까지 이용하려고 들었다. 그러나 이소선의 귀에는 목사의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교회 목사로도 설득이 불가능해지니까 다음에는 교단의 높은 직책을 가진 목사가 찾아왔다.

"이제는 합의금도 오를 만큼 올라갔으니 웬만하면 합의를 보고 장례식을 치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직책이 높다는 그 목사는 '안됐다, 어쨌다'라고 위로의 인사를 한답시고 한참 늘어놓더니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노동청에서는 이소선의 식구들, 친척들을 데려다가 노동청 산재보험, 평화시장의 업주들의 모금 그리고 장례비, 조의금 등을 모아 3천만 원을 줄 테니 합의를 보자고 설득을 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온갖 협박과 회유에 가족들과 친척들이 넘어갔지만 이소선이 완강하게 버티고 있으니까 장례를 치르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돈은 절대로 받을 수 없습니다."

이소선은 목사에게 잘라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근로자 한 사람이 죽는데, 이만한 액수의 위자료는 지금까지 있어본 적이 없는 어마어마한 액수입니다."

그 목사는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소선을 설득하고 있었다.

"그것 재미있구먼......"

이소선은 그 한마디를 던지고 그 목사 앞을 나와 버렸다.

다음날 그 높은 목사와 또 다른 목사들이 찾아와서 이소선을 둘러쌌다.

"집사님, 우리가 집사님 나쁘게 하겠습니까? 돈 액수도 더 올릴 수 있대요. 이만한 돈을 받기는 역사상 처음이니까 이제 더 이상 하지 말고 합의를 봐서 장례를 치릅시다. 어차피 장례는 치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이소선을 설득하는 게 먹혀들지 않자 나중에는 말투가 거친 명령조로 바뀌었다.

이소선의 친척들은 이미 합의를 한 상태였다. 그 합의된 액수보다도 더 많아지니까 그들은 몸이 달아올랐다. 돈 액수가 그만큼 올라갔으니까 오늘 하지 않는다면 자신들은 모르겠다는 식으로 배짱까지 내밀며 합의를 보자고 성화였다.

"목사님, 오늘 할 얘기가 있으면 해보세요. 들어 볼 테니까."

이소선은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들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그 목사는 여러 말을 길게 늘어놓았다.

"돈 액수를 합치면 4천 7백만 원 정도 되니까 이 액수면 유례가 없는 것이고, 또 집사님은 남편도 없고 아이들도 어리니까 돈이 있어야 남은 네 식구를 먹여 살리고 가정을 이끌어 갈 수 있을 것 아닙니까?"

그 목사는 침을 튀겨가며 장황하게 설교하듯이 말했다.

"그렇게 해야 하는 겁니까?"

이소선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야지요."

목사는 심경의 변화가 있는 것처럼 느꼈는지 들뜬 목소리였다.

"목사님 이제 더 이상 나한테 말 안 해도 됩니다."

이소선은 더 이상 그들과 얘기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럼 이제 합의 보는 거지요?"

그 목사는 아직도 이소선을 붙들고 있었다.

"합의 보면 어떡합니까?"

이소선은 한심하다는 눈길로 그 목사를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 하는 거요?"

그 목사가 "무슨 소리하는 거냐"는 소리에 옆에 있던 다른 목사가 귀를 쫑긋 하길래 이소선은 참고 있던 화를 터뜨리고 말았다. 이소선은 재빨리 신발까지 벗어서 어깨 높이로 쳐들었다.

"야! 이 나쁘고 양심 없는 목사야! 너도 목사냐? 연약한 여자가 자식 잃고 남편도 없어 가지고 돈을 받고 죽은 자식 시체 값 받고 팔려고 하면, 너는 자식 뜻을 이루어야 한다고 나한테 확실하고 구체적으로 말해주어야 옳지! 개놈의 새끼! 모가지를 빼기 전에 절대로 내 앞에 보이지 마라, 내가 이 고무신짝으로 너를 때리고도 남지만은 그래도 하나님의 종이라니까 하나님의 입장을 봐서 참아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모가지를 빼서 죽여 버린다. 이 돼먹지 못한 놈의 새끼, 지금 어디다 대고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소선이 악착같이 덤비니까 그 목사들이 질렸는지 표정이 새파랗게 굳어버렸다.

"다시는 우리를 부르지 마시오!"

목사들은 이소선의 친척들한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나가버렸다.

"그래 안 불러! 너 없어도 예수 실컷 믿을 수 있어. 가! 다시는 안 부른다. 한 번만 더 오기만 하면 나한테 칼 맞아 죽을 줄 알아!"

이소선은 그들의 등짝에 내뱉고는 영안실로 갔다. 회유를 이겨내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전태일 친척들은 전태일이 죽고 나면 이소선은 정신병자가 되든지 아니면 스스로 죽을 것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아들하고 살아생전에 너무도 가깝고 모정이 유난히 돈독해 하루도 안 보면 못살 정도로 다정한 사이였는데, 이제 남편도 없는 처지에 세 아이를 데리고는 더욱더 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까 친척들이 나서서 돈을 받아가지고, 세 식구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돈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기관에 있는 사람들은 이소선은 어찌 되었든지 간에 제쳐 놓고 친척들을 공략하는 것이었다.

영안실로 들어가니 영안실을 지키고 있던 전태일 이모부가 일어섰다.

"처형, 저기서 누가 처형을 만나자고 하는데 한번 가서 만나보고 오시오."

"만나자고 하면 돈이나 받으라는 그 따위 개소리나 하는데 뭐 하러 만나요? 앞으로 절대 누구든 만나지 않을 거요. 이 시체 옆에서 떠나지 않을 거요."

이소선은 돈을 가지고 합의를 보자는 데 신물이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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