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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기 힘들지만 일단 오르면 보이는 산과 같은 시와 철학 

 

뜬금없이 시(詩)가 읽고 싶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내 속에 어떤 욕망이 똬리를 틀고 있는 듯 했다. 계속 이대로 살 수만은 없다는 생각. 누가 살짝만 건드려도 확 바람이라도 필 것 같았다. 소심한 성격이니 바람보다는 시집이 낫겠지.

 

내 책장을 살펴봤다. 꽂혀있는 시집은 <김수영 전집 1>밖에 없었다. 그나마 이것도 강신주가 쓴 <김수영을 위하여>를 읽고 김수영에 매료돼 충동구매를 했던 것이다. 책장을 펼쳤다. 이 책을 처음 샀던 2년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바로 책장을 덮었다. 역시 시는 나에게 너무도 낯설다. 시를 이해하기에는 내 수준이 턱없이 모자랐다.

 

시를 읽어줄 남자가 필요했다. 남편은 세상에 시라는 것이 있는 줄도 모를 것 같은 사람이니 다른 남자를 찾아야 했다. 너무도 쉽게 너무도 친절하게 시를 읽어줄 사람. 김수영이라는 시인을 뜨겁게 읽게 해주었던 강신주가 떠올랐다.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과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이 있었다. 나의 현재 상황은 괴롭지만 그래도 즐겁게 시를 읽어야겠다는 순전한 의무감으로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을 펼쳤다.

 

사실에서 느낌으로, 안전에서 위험으로

 

강신주는 시와 철학을 험준하고 높은 산에 비유했다. 오르기 힘들지만 일단 오르기만 하면 우리 삶을 조망할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같단다. 그는 좋은 전망을 얻기 위해, 좋은 전망을 마음껏 즐기기 위해 높은 곳에 오르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말라고 한다.

 

내가 시와 철학을 소 닭 보듯 외면했던 이유, 산에 오르는 일을 끔찍이도 싫어했던 이유를 적나라하게 들켜버린 것 같아 뜨끔했다. 그의 말마따나 시는 너무도 주관적이고 낯선 이미지들이, 철학은 이해하기 힘든 추상적인 용어들이 산재해 있어서 내가 감히 넘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산에 오르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숨을 헐떡거리며 무거워진 다리를 끌어올리는 일이 나에게는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기에 산은 그저 쳐다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어렵고 힘든 일은 피하고 싶었고, 쉽고 편안하게만 살려고 했던 지금까지의 나의 삶에, 왜 이제 와서 딴지를 걸고 싶어졌을까?

 

"일상적 삶은 '느낌'에서 '사실'로, '위험'에서 '안전'으로의 끊임없는 이행이다. 예술이 진정한 삶을 복원하기 위한 시도라면, 예술은 일상적인 삶과는 반대 방향으로 진행할 것이다. 즉 사실에서 느낌으로, 안전에서 위험으로."

 

강신주를 멍하게 만들었다는 이성복 시인의 말이다. 이 말은 나에게도 작은 울림을 줬다. '안전'한 일상적인 삶. 지금껏 나의 삶이 안전하고 편안한 삶만은 아니었지만 이것이 내 삶의 목표쯤 되었던 것 같다.

 

삶을 제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에게 묻고 싶어졌다. 강신주는 "인문학적 성찰이 진정한 삶을 복원하기 위한 시도"라고 했다. 그가 말한 '인문학적 성찰'은 삶을 낯설게 보는 것이다. 친숙한 삶을 '느낌'과 '위험'이 충만한 낯선 세계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시와 철학이라고 했다. 내가 뜬금없이 시가 읽고 싶었던 이유가 이것이었을까? 내 삶을 낯설게 만들고 싶은 욕구, '느낌'과 '위험'이 좀 더 나다운 삶을 찾아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본능적으로 작용한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를 본격적으로 읽기도 전에 강신주는 이미 나를 설레게 했다. 나의 고민을, 나의 방황을 어쩜 이리도 잘 짚어내는지. 기대가 더 커졌다. 그와 함께 시를 읽으면 내 삶이 위험과 느낌으로 충만해질까?

 

# 기쁨의 연대

 

섬세한 목소리로 그가 읽어준 첫 번째 시는 박노해의 <인다라의 구슬>이다.

 

"지구 마을 저편에서 그대가 울면 내가 웁니다 / 누군가 등불 켜면 내 앞길도 환해집니다 / 내가 많이 갖고 쓰면 저리 굶주려 쓰러지고 / 나 하나 바로 살면 시든 희망이 살아납니다"

 

인다라의 하늘에 걸려 있다는 구슬로 된 그물, 구슬 하나가 소리를 내면 그물에 달려 있는 무한히 많은 구슬들이 모두 울린다고 한다. 구슬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고압 송전탑을 둘러싼 밀양 할아버지·할머니들의 눈물겨운 투쟁, 이분들과 함께 하기위해 희망버스에 몸을 실은 많은 인다라의 구슬들. '또 하나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빠의 울음에 공명하는 무수한 인다라의 구슬들.

 

"고통과 비참에 사로잡힌 방울 하나가 운다면, 그것은 곧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가슴을 통째로 흔들어 댈 것"이고 이것이 사랑과 연대를 만들어낸다고 말하는 강신주. 나도 무한히 많은 인다라의 구슬 중 하나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 삶의 우발성

 

"가만히 눈을 감고 귀에 손을 대고 있으면 들린다. 물끼리 몸을 비비는 소리가. 물끼리 가슴을 흔들며 비비는 소리가. 몸이 젖는 것도 모르고 뛰어오르는 물고기들의 비늘 비비는 소리가... // 심장에서 심장으로 길을 이루어 흐르는 소리가. 물길의 소리가."

 

산을 천천히 오르다 보면 물소리가 들린다. 물소리는 물이 내는 소리가 아니라고 한다. 물방울 하나가 다른 물방울 하나와 마주치면서 소리가 나는 것이란다. 아~ 그렇구나!

 

강신주는 강은교의 <물길의 소리>에서 클리나멘의 철학, 즉 마주침의 철학을 말한다. 평행으로 떨어지던 무수히 많은 원자들 중 하나가 아주 미세한 각도로 방향을 틀어버린다. 이것이 클리나멘이다. 클리나멘이 생기면 원자는 다른 원자와 우연히 마주치게 되고, 이러한 마주침이 계속적으로 일어나면서 이 세계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우리는 매일매일 많은 사람들을 무심히 만난다. 원자들이 그저 평행으로 계속 떨어지듯이. 그러다가도 우연히 무심하지 않은 마주침이 일어난다. 이러한 우발적인 마주침으로 삶이 완전히 바뀌기도 한다. 누군가는 깨달음을 얻기도 할 것이고, 누군가는 폐인이 되기도 할 것이다. 물방울들은 서로의 마주침으로 예쁘기도 한 소리를 낸다. 지금까지 있어왔던 나와 타자의 우발적인 마주침들은 과연 어떤 소리를 냈을까 돌아보게 된다.

 

# 무한으로서의 타자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 그대를 기다리다보면 / 내 삶은 내가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 은행나무 잎이 떨어지고 / 떨어지고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면 /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그대 / 그대 안의 더 작은 그대"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그리운 102>라는 원재훈의 시로 강신주는 '타자(他者)', 그리고 타자를 가장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랑'을 이야기 한다.

 

"우리는 언제, 어떤 사람을 다르거나 낯설게 바라보게 될까요? 아마도 매력적인 사람을 만나 사랑의 감정을 느낄 때 우리는 타자를 가장 강하게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사랑의 신비는 우리가 처음 만난 사람을, 그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데도 사랑하게 된다는 사실에서 드러납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알아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점차 알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러고 보니 정말 신기하다.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데 첫눈에 반하고 사랑의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 낯설게 느껴지는 타자는 여럿인데 왜 유독 특정 누군가에게만 사랑의 감정을 느낄까? 도대체 어떤 힘이 작용했기에. 에로스의 장난 때문일까? 인간의 능력으로 알 수 없거나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을 신들의 장난으로 그 책임을 떠넘겨버린 그리스 사람들이 참 훌륭하다. 그래, 에로스의 장난 때문일 거야.

 

에드문트 후설은 "과거는 우리에게 기억능력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고, 미래도 기대능력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 물론 현재도 기억과 기대에 물들어 있는 지각능력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고 보았단다.

 

이 말을 강신주의 친절한 설명으로 다시 들어보자.

 

"어제 본 애인을 오늘의 애인으로 '기억하고' 그리고 그녀와 오늘 오후에 만나기로 한 약속을 '기억하고' 있어야만, 우리는 약속 장소로 나가서 동일한 애인이 오기를 '기대할' 수 있고 또한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애인을 내가 어제 만난 바로 그 애인이라고도 '지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묻는다.

 

"여러분들은 기대 혹은 기억에 물들어 있는 현재라는 것과, 예측할 수 없는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열리는 현재라는 두 가지 맥락을 구분할 수 있나요?"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는 오늘,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은 내일, 기억과 기대에 물들어 있는 현재의 삶이 어느 날 문득 나를 숨 막히게 했던 것 같다. 강신주는 "타자 혹은 타자적인 사건과 마주치는 경험은 우리에게 다람쥐 쳇바퀴처럼 흘러가던 시간을 와해"시켜버린다고 했다.

 

어떤 타자적인 사건이 나를 다람쥐 쳇바퀴에서 튀어나오게 해주길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실제로 이런 우발적인 마주침이 일어난다면 나는 과연 쳇바퀴에서 뛰쳐나올 용기를 갖고는 있나?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진정한 삶에 대한 욕망이 나에게 있는 한 그게 비록 당혹스럽고 고통스러울지라도 한번쯤 용기를 낼 수 있을 것도 같다.

 

# 사랑의 존재론적 숙명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 너였다가 /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을 한번쯤 해본 사람이라면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위의 시에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공감할 것이다.

 

'사랑'이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설레는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과는 늘 같이 있고 싶고 떨어지기 싫어한다. 둘이 아니고 늘 '하나'이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신주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 꿈꾸어 온 '하나'라는 이상은 사랑의 종말"이라고 했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둘 중 누군가가 자신의 자유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프랑스 철학자 바디우도 "사랑은 결코 '하나'가 아니라 '둘'의 사건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둘'이라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상대방도 자유를 가진 존재라는 것이다. 나를 사랑할 자유, 나의 사랑을 언제라도 거부할 자유 말이다. 이런 자유 때문에 사랑이라는 감정에는 항상 고통이 따른다. 그렇다고 자유를 가지지 않은 대상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내가 사랑하기만 하면 조건반사처럼 나를 사랑하는 대상이라면, 과연 그 대상에게 설렘과 환희, 갖고 싶은 욕망을 느낄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강신주가 말하는 사랑의 존재론적 숙명이다.

 

"창조의 놀이를 위해서는 거룩한 긍정이 필요하다. 정신은 이제 자기 자신의 의지를 원하며, 세계를 상실한 자는 자신의 세계를 획득한다."

 

강신주가 인용한 니체의 말이다. 이 말이 내 폐부에 꽂혔다. 이뿐만 아니라 이 책의 모든 말들이 나를 위해 준비된 것처럼 들렸다. 내 머릿속을 어지럽게 채우고 있던 생각들이 명쾌한 말이 되어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신기했다. 모든 마주침들은 우연적이고 우발적이라고 했다. 정말 그럴까? 살짝 의심이 갔다. 내가 이 책을 만난 건 또 다른 어떤 힘이 작용한 건 아닌지.

 

들뢰즈에 따르면 우리는 과거에 만들어진 주름을 갖고 있고 현재에도 주름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타자와의 마주침으로 이전과는 또 다른 주름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낯선 존재인 타자, 이런 타자와의 낯선 마주침이 나 자신을 낯설게 만든다고 한다. 나의 주름이, 나의 상처와 굴곡이 어느 날 낯설게 느껴진다면 아마도 새로운 주름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뭔가를 시도할 것이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누구의 딸. 이러한 세계를 상실하면 나만의 세계를 획득할 수 있단다. 과거에 만들어진 주름대로, 그래서 깊게 파인 홈을 벗어나지 않고 살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주름을 만들기 위해 기꺼이 낯선 마주침을 수용할 것인지, 이 책이 많은 힌트를 줬다. 친절하고 섬세한 목소리의 강신주를 선택한 건 정말 잘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 -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동녘  2010.02.05)
- '아이쿱 생협 협동으로 랄랄라' http://blog.naver.com/icoopkorea 블로그 동시 송고합니다.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

강신주 지음, 동녘(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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