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LPG E1의 김연아 응원 광고의 한 장면.

LPG E1의 김연아 응원 광고의 한 장면. ⓒ LPG E1


국가주의의 블랙홀에 '피겨여왕' 김연아가 어김없이 호출됐다. 소치 동계올림픽을 겨냥한 한 상업 TV광고에서다.

'너는 김연아가 아니다'라며 대한민국을 짐 지우는 이 광고의 불온함  

 LPG E1 김연아 광고의 한 장면.

LPG E1 김연아 광고의 한 장면. ⓒ LPG E1


이 광고는 태극기를 두른 김연아에게 "너는 1명의 대한민국이다"라고 단언한다. 대표선수 개인에게 '대한민국'과의 동일시를 강요하는 이 패기가 소름끼친다. 앞서, 흑백화면을 배경으로 빙판을 가로 지르는 김연아의 모습 위로 "너는 김연아가 아니다"라고 선언한 터다. 이렇게 국가의 부름을 전면에 내세운 상업광고의 카피 안에서 아무리 "너는 11번 뛰어오르는 대한민국"이고, "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한민국"이라 헌사를 바쳐 봐야 소용없다.

요즘 SNS 상에서 "잘 생겼다"를 무한 반복하는 배우 이정재, 전지현이 출연하는 통신사 광고와 "팔로 팔로 미"를 외치는 지드래곤 출연하는 광고와 더불어 3대 '병맛(맥락 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음)' 광고로 꼽히는 LPG E1 김연아 응원광고 내용이다. 카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다.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을 응원합니다'라니.  

"너는 김연아가 아니다 / 너는 4분 8초 동안 숨죽인 대한민국이다 / 너는 11번을 뛰어오르는 대한민국이고 / 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한민국이다 / 너는 1명의 대한민국이다 /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을 응원합니다 / 대한민국 LPG E1"

아무리 동하계 올림픽이 국가들간 무한 경쟁의 장으로 변질됐다고 해도, 초국가 기업들의 광고의 장이라고 해도, 김연아를 내세운 이 광고야말로 국가주의 상업광고의 결정판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것도 전세계가 아끼는 '피겨요정' 김연아를 전면에 내세운. 이 같은 광고에 저주에 가까운 비난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김연아 E1광고. 2009년 세계피겨선수권에서 김연아 선수 우승한 걸 두고 고려대가 광고 카피로 '고려대가 낳은 김연아' 이딴 식으로 숟가락 얹은 것의 대한민국 버전이니. 솔까말 대한민국이 김연아 선수 덕을 봤지. 김연아 선수가 우리나라 덕본 게 뭐?" (@suXXXXXXXXXXX)  

"최근 이정재와 전지현이 나오는 SK 광고 보면서 병맛광고의 대표주자라고 낄낄 거렸는데 오늘 본 E1의 김연아 광고는 병맛을 뛰어 넘는다. 완전 충격과 공포다. 처음 보는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오르게 하는 광고를 보게 되다니. 아직도 오그라든 손 펴고 있다." (@hyXXXX)

"‏무엇보다 '너는 김연아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다' 라는 광고 카피 자체가 애국심 마케팅을 넘어 매우 국수주의적으로 들리고 김연아 개인의 노력의 성과를 국가의 이름으로 뜯어먹으려 달려드는 태극기 두른 승냥이 떼 마냥 섬뜩해." (@thXXXXXX)

"김연아가 이번에 금메달 못 따면 언론에서 난리 날 거고 광고 다 떨어져 나가고 아마 김연아 푸대접 할 겁니다. 그러기 전에 국적 바꿔서 편하게 대접받으며 잘 살았으면 좋겠네요." (‏@naXXXXXXXX)

박근혜 대통령과 김연아 선수가 '여왕의 귀환'이라 닮았다?

 김연아 선수와 박근혜 대통령을 닮은 꼴로 꼽은 <TV조선> '정치옥타곤'

김연아 선수와 박근혜 대통령을 닮은 꼴로 꼽은 '정치옥타곤' ⓒ TV조선


광고주는 몰라도 그 '국민'들은 안다. 국가주의에 편승한 이러한 광고가 얼마나 거부감을 일으키는지. 2002년 한일월드컵을 시작으로 4년 만에 돌아오는 올림픽과 월드컵 때 마주해야 하는 이러한 광고들이 '국가'과 '애국'을 호명할 때, 도리어 그 국민들 중 다수는 가슴이 뜨거워지기는커녕 그 기업에 안티로 돌아설 정도다.

이에 아랑곳 않는 기업이나 방송국들, 꼭 있다. 이 '너는 김연아가 아니다'라는 광고의 주체인 E1 측은 '김연아 효과'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중이다. 이미 "2월 브랜드가치 평가지수(BSTI·Brand Stock Top Index) 분석 결과 정유·LPG 부문에서 E1이 브랜드가치 1위에 올랐다"는 보도자료를 내고 희희낙락하는 중이다.

멋모르고 언론플레이를 하는 방송도 물론 있다. 이미 짐작했을지 모르겠지만, 역시나 <TV조선>이다. 최근 안현수 선수를 '안철수'로 표기한 '박 대통령, "안철수 귀화 부조리 탓인지 되돌아 봐야'란 자막 사고로 맹비난을 받았던 <TV조선>. 이 종편의 무리수는 박근혜 대통령과 김연아 선수를 '여왕의 귀환'으로 엮는 데까지 나아갔다.

지난 15일 <이봉규의 정치옥타곤>은 '朴 대통령-김연아 선수의 공통점은?'이란 리포트를 통해, '대통령들의 스포츠 선수 사랑'을 언급하며 사망일이 같은 프로레슬러 김일과 박정희 전 대통령, 서울시청 소속이었던 박종환 감독과 전두환 전 대통령, IMF 외환위기 때 감동을 줬다는 이유로 골퍼 박세리 선수와 김대중 대통령을 어설프게 엮었다.

그리고선 박근혜 대통령과 김연아 선수를 연결 짓는 무리수가 실로 가관이다. <겨울왕국>의 주인공 엘사와 박근혜 대통령을 연결지으며 '용비어천가'를 불렀던 <채널A>와 난형난제, 막상막하 수준이다.

"얼마 전 글을 하나 봤는데. 박근혜 대통령과 김연아 선수의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글쎄요. 바로 여왕의 화려한 복귀라는 점입니다."

"당신은 대한민국이 아닙니다"라는 영상이 등장하는 시대 

 한 팬이 만든 '김연아는 대한민국 아니다' 영상의 한 장면.

한 팬이 만든 '김연아는 대한민국 아니다' 영상의 한 장면. ⓒ Olive Oh


광고계와 방송을 비롯한 언론들의 숟가락 얹기가 이해 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올림픽이란 블랙홀에 너도나도 동참해 '국가'를 호명해야만 '장사가 된다'고 여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간 배출해낸 올림픽과 월드컵의 깜작 스타들의 숫자를 떠올려 보라.

그러나 '너는 김연아가 아니다'라는 광고가 불편하고 불온하게 여겨지는 것은 단순히 '국가주의'에 편승해 '국민요정'을 상업적으로 과하게 이용했다는 비판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빅토르 안(안현수) 선수에 대한 관심과 후폭풍에서 드러났듯이, 세계 일류 선수를 간단히 내치는 한국, 한국 스포츠계, 그리고 때만 되면 유효기간이 지난 맹목적인 국가주의를 들이미는 일부 광고계에 대한 염증이 최고조에 달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마이클 조던 같은 선수를 한국이 버린 꼴"이라는 외신의 비판이 달갑지 않지만 뭐라 반박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국적과는 상관없이 빅토르 '안'현수 선수에 대한 국민들 다수의 응원이 한 방향으로 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노력과 재능이 우선인 운동선수, 그것도 세계 정상급 선수에 대한 제도적인 지원과 뒷받침 없이 내부 결속과 잡음 막기에만 열을 올린 빙상연맹은 맹비난을 받아도 유구무언일 터다. 미비한 협회 지원으로 인해 김연아 선수가 그리도 열심히 광고를 찍는다는 속내가 알려진 뒤 분통을 터트린 이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김연아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빅토르 안은 러시아 국민이다. 그렇지만 '국민'이라는 이름에 앞서 그들은 김연아고 빅토르 안이다. 그들의 영광이 국가를 위한 맹목적인 봉사로 환원되어서도, 국가주의의 기수로 이용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은메달을 따고선 서러운 눈물을 흘린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를 응원하고 눈물을 닦아 주는 것도 그 '대한민국 국민'들이 되어줬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너는 김연아가 아니다' 광고에 질린 독자들에게 동영상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광고를 보고서 분노한 한 팬이 만들었다는 전언이 들리는'당신은 대한민국이 아닙니다' 영상이 그것이다. 심지어 상업광고보다 퀄리티도 높은 이 영상 속 주옥같은 카피를 읽으며, 다시 한 번 김연아 선수의 선전을 기원한다.

'당신은 대한민국이 아닙니다 / 당신은 피겨약소국의 한 운동선수입니다 / 당신은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챔피언이고 / 당신은 어린 후배를 위해 기꺼이 다시 뛰어오르는 선구자입니다 / 당신은 김연아입니다 / 당신이어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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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소치동계올림픽 안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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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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