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내 조국이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였구나!'를 느끼며 감격의 눈물이 흘렀다."

13일 오후 전쟁사학회(발기인 대표 김정권) 특강 '<태왕의 꿈> 출판 소감'에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광개토호태왕비문 정해본 완역판 '130년만에 풀린 비밀' <태왕의 꿈> 저자 김덕중의 소감을 말하는 첫마디였다.

태왕의 꿈 출판 소감을 말하고 있는 저자 김덕중 2014.2.13 전쟁사학회 특강시간에 출판소감을 열정적으로 밝히고 있다.
▲ 태왕의 꿈 출판 소감을 말하고 있는 저자 김덕중 2014.2.13 전쟁사학회 특강시간에 출판소감을 열정적으로 밝히고 있다.
ⓒ 박정학

관련사진보기


그는 이날 책 내용은 간단히 핵심만 소개하고, 정배본임을 자부하는 이유와 연구과정을 소개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핵심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가 눈물이 난 것은 비문을 제대로 번역하다보니 그 속에 고대조선 때부터 전해져온 우리나라의 민족적인 역사관, 국가관, 인생관 등의 철학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채호 선생을 비롯한 많은 연구자들이 이것을 보지 못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정해본이라고 자신하는 이유는, 1882년 일본이 처음으로 이 비문을 접하고 자기들의 만주침공 의도에 맞추어 변조한 내용을 공작적 차원에서 우리나라 홍문관 찬집청에 전달했고, 그 내용이 그대로 2007년에 발간된 『증보문헌비고』에 실렸는데 그 후부터 현재까지 대부분의 우리나라 제도권 및 재야의 학자들은 260여자가 없어진 이것을 원본으로 알고 해석 등 연구를 하고 있으나 나는 김택영, 조소앙 선생이 복원한 원문을 당시의 고구려 한문으로 해독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본의 공작문서인 가짜 석비문을 정식 사료에 게재했기 때문에 일본은 우리를 얕보고 있는 것이며, 이런 상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게 문제다."

"1904년 출처불명의 비문을 접한 홍문관 찬집청의 정3품 사관 창강 김택영은 이 자료에 문제가 있음을 느끼고 '그냥 실으면 안 된다'고 항의하였으나 찬집책임자가 그대로 강행하므로 사퇴서를 내고 만주로 가서 최초의 해독자인 장백산인 영희(榮喜蓧峰 1854~1908)을 만나 변조되지 않은 원문을 입수하고 상호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면서 연구하여 돌아오다가 을사조약 체결의 소식을 듣고 귀국하지 않고 중국에 남아 연구를 계속하여 1922년 출판한 『한국역대소사』한 책에 게재하여 조국으로 보냈으나 일본인에 의해 압수되었는데, 그 책이 지금도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으나 내가 확인할 때까지 제도권 학자 한 사람도 이 책을 열람한 사람이 없더라."

"이후 김택영의 제자인 단재 신체호와 소앙 조용은이 보완연구를 하였는데 원문을 거의 완벽하게 보완한 것은 조소앙 선생이었고, 신채호 선생의 해석은 정인보-북한으로 이어졌다. 나는 조소앙 선생의 석문을 저본으로 해석했다."

"비문의 핵심적 내용은 단군의 인류보전 철학이 들어 있고, 이를 광개토대왕이 지키려 했다는 것이댜. 많은 사람이 광개토대왕을 땅을 넓힌 정복자로 인식하고 있으나 그는 정복자가 아니라 민족보존을 위한 평화주의자였다는 게 내 생각이다. '廣開'라는 말은 '동족들에게 국경의 문호를 개방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수많은 전쟁은 정복전쟁이 아니라 토벌전쟁이었다. 외부 침략자에 대해선 잔혹하게 했으나 신라와 백제 등 동족이 편안하게 하려는 터전보전주의로서 동족 간의 전쟁을 막기 위해 욕망의 군주(주로 백제)를 제어하는 관군(연합경찰의 위치)을 구성하여 동족을 보호하는 경찰임무를 수행하였다. 세 조선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나 신조선이 전체를 관장했던 것처럼 단군의 유훈을 지킨 이런 도덕성은 세계사적으로 의미있는 철학이 될 수 있다."

"일본 사람들의 잘못된 해석의 출발은 바로 신묘년 기사의 '구시속민(舊是屬民)'을 '백제와 신라가 예부터 속국이었다'라고 해석한 데서 시작된다. 그런 의미라면 屬國이라고 했을 것이다. 屬民은 권속과 동족을 의미한다."

이날 특강을 들은 전쟁사학회 관련자들은 "오늘 내용은 매우 의미 있는 내용이었다. 정복전쟁과 토벌전쟁의 차이를 알 수 있었으며, 단군 때부터 이어져 온 우리 겨레의 철학이 담겨있다는 것은 지금까지 알지 못한 내용이었다." "일본이 공작적으로 변조한 비문과 그 해석문만 가지고 왈가왈부하고 있는 현재의 학자 및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 놓은 독립기념관 등 여러 곳의 모의 호태왕비도 수정되어야 하겠다." "이렇게 의미있는 광개토대왕비가 중국의 문화재로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는 데 우리는 원문조차 밝히지 않고 있다는 건 우리 정부와 학자들이 크게 반성해야 한다." "앞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 더 연구할 수 있는 공부모임을 만들어 전쟁사학회가 창립되면 이런 내용을 중심으로 학술연구 및 발표회도 가져야 한다."면서 저자의 소감에 공감을 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강원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고 강의를 하였으며, 우리나라 정치이념으로 홍익민주주의를 처음으로 제창하였습니다. 우리의 역사, 문화, 정신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가 많이 잘못되어 있는 것 같아 이를 바로잡는 것과 관련된 기사를 많이 쓸 것입니다. 사)한배달이 그런 단체이며, 그런 분야에서의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