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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아프리칸 빌리지 내 공연단원들의 숙소 모습.
 남양주 아프리칸 빌리지 내 공연단원들의 숙소 모습.
ⓒ 공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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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언론을 통해 알려진 포천 아프리카 예술 박물관의 실태는 충격이었다. 그곳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들은 법정 최저임금의 절반도 안 되는 급여를 받으며 2년 넘게 일했고 여권을 압류당한 상태에서 사실상 노예노동을 강요당했다고 한다. 보도를 접한 순간 12년 전에 있었던 남양주 '아프리칸 빌리지' 노예노동 사건이 떠올랐다. 한 마디로 '아프리카'와 '노예노동'이라는 단어가 주는 일종의 데자뷰였다.

12년 전 난 '아프리칸 빌리지' 사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외국인이주노동자 강제추방반대․연수제도철폐 및 인권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아래 공대위) 소속 이주노동자센터에서 일하고 있었다. 당시 공대위가 발표한 여러 자료집들을 토대로 12년 전 아프리칸 빌리지에서 벌어진 일들을 재구성했다.

코트디부아르 전통예술공연단 소속 단원인 노엘, 아마뎅, 조만데, 블레이즈, 프랭키, 루나, 클레마틴, 오떼, 주세, 앙쥬는 한국 입국 전부터 유명 인사였다. 한국에 입국하기 전 이들은 코트디부아르 전통 무용단에서 전문 예술인으로 일했다. 이들의 대표자인 노엘은 세계 각국을 돌며 순회공연을 한 적도 있다. 이들이 한국에 알려지게 된 건 <도전 지구 탐험대>라는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당시 이 방송의 한 출연자가 코트디부아르 전통예술학교에서 일주일간 생활하면서 전통춤을 배웠는데, 그 과정에서 이들의 존재가 한국에 알려지게 됐다. 방송 후 한국의 한 기획사 대표가 2002년 5월 직접 코트디부아르를 방문해 이들에게 '아프리카 전통춤을 한국에서 공연하자'고 제안했다.

한 달 월급 20여만 원... 업주의 공제내역, 황당하네

아프리칸 빌리지 전경
 아프리칸 빌리지 전경
ⓒ 공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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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입국한 단원들이 본국에서 들은 조건과 현실이 많이 다르다는 걸 확인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들이 6월부터 8월 말까지 석 달 동안 쉬는 날 없이 일한 대가로 받은 월 급여는 200달러(한화 20여만 원)였다. 이마저도 사업주 최아무개씨에 의해 부당하게 공제당하기가 일쑤였다. 6월 1일부터 근무를 시작했던 이들이 4개월간 받은 급여 내역을 살펴보면, 노엘 46만800원, 조만데 68만7600원, 블레이즈 68만7600원, 프랭키 71만1700원, 루나 73만5600원, 클레마틴 75만2400원, 오떼 67만2000원, 주세 72만6000원, 앙쥬 66만2400원이었다.

사업주가 밝힌 공제 내역은 황당했다. ▲전화 1분에 3달러 ▲테이블을 치우다가 컵을 두고 갔다고 5달러(앙쥬) ▲청소를 깨끗이 못했다고 5달러(오떼) ▲공연 준비로 시간이 없어서 그날 당번인 화장실 청소를 안 했다는 이유로 5달러(주세) ▲몸이 아파 3일을 쉬었다고 15달러(노엘) ▲사업주가 자신이 시킨 제초작업을 끝내지 않았다고 모든 단원에게 5달러씩 ▲사장이 화초를 정원에 심으라고 했을 때, 잠시 쉬겠다고 한 남자 단원들 전원에게 5달러 등은 그나마 적은 액수의 공제였다.

입국한 지 석 달째였던 8월에는 사업주에 의해 3일간 숙소가 강제 폐쇄돼 공연을 못했다. 그런데 사업주는 그 책임을 공연단원들에게 전가해 약속된 급여의 절반인 100달러를 공제했다. 이렇듯 급여는 툭하면 깎였고 그 내역은 '흑인임금대장'이라고 적힌 급여내역서에 기록되었다.

예술단원들은 9월 들어서야 월요일에 쉬는 것을 허락받았다. 이들은 공연예술비자로 입국했지만, 오전 9시에 아프리칸 빌리지로 가서 씻고 식사를 한 후 공연 전까지 온갖 잡일을 했다. 남성들은 ▲1만여 평 되는 빌리지의 풀 뽑기 ▲뒷산으로 올라가는 계단 만들기 ▲돌로 만든 50~60kg 이상의 아프리카 조각품을 운반하고 설치하기 ▲조각품 운반 포장하는 일 등의 고된 노역을 했다. 여성들은 ▲빌리지 식당에서 관람객에게 파는 코트디부아르 전통 음식 만들기 ▲홀 서빙 ▲식당 청소 등과 기타 빌리지 내에서 풀 뽑기 등도 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관람객이 많을 경우 사장은 하루 2~3번의 공연을 요구했다. 게다가 토요일 밤에는 바비큐 파티라는 특별 프로그램을 만들어 진행했고, 때때로 새벽 1시 넘어서까지 공연을 하라고 요구했다.

당시 아프리칸 빌리지는 1만여 평의 대지에 6천여 점 이상의 조각품을 전시하고 아프리카 전통음식과 공예품을 판매하는 식당과 상점도 함께 운영했다. 그곳에서 근무하는 한국인은 사업주를 제외하고 남자 직원 1명, 아주머니 1명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입장료 받기부터 식당 서빙, 청소, 공원조성 및 관리를 전통공연 예술단원들이 도맡아서 했다.

'냄새 난다'며 식당서 밥도 못 먹게 한 사장

열악한 환경과 처우에 몸살을 앓던 아프리칸 빌리지 소속 공연 단원들이 이에 대해 인권위에 진정했다.
 열악한 환경과 처우에 몸살을 앓던 아프리칸 빌리지 소속 공연 단원들이 이에 대해 인권위에 진정했다.
ⓒ 공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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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단원들은 아프리칸 빌리지에서 식사를 해결해 왔다. 그러나 식당 내부에서는 밥을 먹지 못했고 부엌 뒷문 밖에 짜놓은 허름한 탁자에서 식사를 해야 했다. 사업주가 '냄새가 난다'며 식당 내에서 밥을 먹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빌리지를 나오기 전까지 제공된 음식은 밥과 닭고기를 넣은 음식이 전부였다.

숙소는 폐가를 대충 개조한 집으로 난방, 수도 시설이 전혀 안 돼 있었다. 특히 물이 없어 숙소에서는 물을 마실 수도 없었고 방안에선 곰팡이 냄새가 너무 심하게 나 잠을 자기 어려울 정도였다. 샤워는 걸어서 20분 걸리는 아프리칸 빌리지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고, 용변은 인근 풀밭에서 볼 수밖에 없었다. 사장은 '일주일만 기다리면 새로운 숙소를 마련해 주겠다'고 약속하였으나 같은 해 10월, 예술단원들이 고발 기자회견을 하기 전까지 바뀐 것은 없었다. 당시 예술단원들은 자신들의 숙소는 "개, 돼지가 사는 축사와 다름이 없으며 이곳에서 자신들의 처지는 짐승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옷을 구입할 돈도 없었던 이들은 사측으로부터 아프리칸 빌리지 마크가 새겨진 셔츠 1개와 반바지, 남방 한 벌, 신발 한 켤레를 받았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는 트레이닝복을 받아 그것을 입고 생활했다. 몸이 아파도 제대로 치료를 받아본 적이 거의 없었다. 공연단원이 사업주에게 아프다고 호소하면 "코트디부아르에서부터 아프기 시작한 거니까, 코트디부아르에 가서 치료를 받으라"면서 아스피린으로 추정되는 알약을 줬다고 한다.

거듭된 부당한 대우에 단원들은 집단행동을 시도했다. 8월 18일 사업주에게 계약내용과 다른 고된 노역 동원을 중지해 줄 것을 요구하고 한국 실정에 맞도록 임금을 인상해 줄 것과 휴일을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사장은 이들에게 "당장에 나가라"며 숙소를 폐쇄했다. 단원들은 3일간 밖에서 웅크리고 식빵을 먹으면서 버텼다.

그 후 사장은 이들을 외부 행사에 참여시키기 위해 자신이 폐쇄한 방문을 다시 열어주며 처우개선을 약속했다. 공연단은 사장을 믿고 전주소리축제에 참여했지만, 돌아온 결과는 휴무로 인한 100달러 공제였다. 이에 대해 단원들은 9월말 숙소 개선과 공제 한 임금 100달러를 돌려줄 것을 사업주에게 요구했다. 그러자 사업주는 또 다시 숙소를 폐쇄했다.

입국하기 전부터 유명세를 탔고, 실력이 남달랐던 이들은 입국 이후 외부 공연을 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나 그로 인한 수익은 사장이 독차지했다. 9일간의 전주세계소리축제 공연 뒤 주최측이 1천만 원을 지급했으나, 공연단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9월 말에도 한 은행의 의뢰로 공연을 한 뒤 300만 원을 받았으나, 사장은 이들에게 수당이라며 각각 1달러(1200원)씩만 지급했다. 얼마 뒤 열린 강동구 암사동 선사 유적지 통과의례 페스티발에서는 4일 동안 공연을 했고, 주최측에서 공연료 480만 원과 공연단의 숙박비·식비를 줬으나, 공연단에게 지급된 수당은 전혀 없었다.

'인종차별' 시각 가진 사장의 말로는 결국...

2003년 코트디부아르 예술단원 귀국 지원을 위한 공연 포스터
 2003년 코트디부아르 예술단원 귀국 지원을 위한 공연 포스터
ⓒ 코트디부아르 민속예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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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이 알려지자, 전국 167개 시민단체는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고 같은 해 10월 21일 '아프리카 빌리지 예술단원의 노예노동에 대한 보고회와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아프리칸 빌리지 예술단원들은 ▲임금체불 ▲최저임금에 훨씬 못 미치는 월 20여만 원의 저임금 ▲부당 공제 ▲물도 나오지 않고 화장실도 사용할 수 없는 숙소 ▲계약에 없었던 외부공연과 공연수익금의 사업주 독식 등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이 사실은 언론에 크게 보도돼 이주노동자들의 인권 상황과 무분별한 예술흥행비자(E-6) 발급에 대한 시정여론을 불러 일으켰다.

논란이 일자 사장은 "먼저 있었던 아프리칸 예술단원들은 열심히 절약하고 저축해서 1년 동안 450만 원을 벌어서 돌아갔다", "한 달 월급으로 책정된 20만원도 이 사람들에게는 큰돈이다, 충분하다"는 등의 말을 서슴지 않았다. 또 문제를 제기한 시민단체들을 명예훼손과 업무방해로 형사고발하고, 아프리칸 공연단을 절도혐의로 고소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프랑스어 통역 자원봉사자까지 명예훼손으로 몰아갔고, 해당 사실을 보도한 언론사, TV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까지 제기하며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려 했다.

하지만 아프리칸 빌리지 사장은 출입국관리법,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위반했다. 게다가 아프리칸 빌리지 조성 과정에서 산림법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울러 아프리칸 빌리지 공연추천 시 허위신고 등으로 영상물 등급위원회에서 공연추천취소조치를 받았다. 결국 사장 최아무개씨는 이 사건과 관련 벌금형을 받았고 그가 운영하던 아프리칸 빌리지는 폐쇄됐다.

사장이 만든 '흑인임금대장'은 이 사건의 본질을 말해 준다. 아프리카에 대한 사장의 기본적인 인식은 '아프리카는 가난한 대륙'이고, 그곳에서 온 '흑인'은 무시해도 된다는 인종차별적인 것이었다. 사건이 터진 후 사장이 보인 일상적인 언행에는 아프리카에 대한 무시와 편견이 배어 있었다. 그래서 시정을 요구하는 아프리칸 예술단원들을 인격적으로 매도하면서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반복하였던 것이다.

포천 아프리카예술박물관 노예노동 논란은 12년 전 남양주 아프리칸 빌리지 이주노동자 노예노동 논란과 꼭 닮았다. 물론 12년 전과 달리 실상이 공개된 후 아프리카 박물관장이 교체되고 이주노동자들과 환경과 처우 개선을 위한 합의문을 작성하기도 했지만, '아프리카의 눈물'은 변함이 없었다. 왜일까?

입국 전부터 유명세를 타고, 유명 연예 프로 출연으로 유명세를 누렸음에도 지금까지 인권침해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던 데에는 사장의 감언이설과 협박, 회유가 한 몫 했다. 특히 예술단원들의 입국 시스템, 즉 E-6(예술흥행비자) 비자 발급 시스템이 가장 근본적 원인이다.

해외 전통예술 공연인들은 대개 국내 초청 소속사가 문화체육관광부에 비자를 신청해서 2년 체류자격으로 입국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측 소속사는 송출국 소속사와 계약을 맺는다. 즉 E-6 입국자들은 송출국과 한국, 양측과 이중으로 계약을 맺어야 입국이 가능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양측에 수수료를 떼이고, 열악한 조건에 근로계약을 체결한다.

또 '체류 기간 연장' 카드는 사업주의 임금체불과 신분증 압류, 열악한 기숙사와 인권침해, 근로계약과 근로기준법 위반 등을 가능케 하는 도구로 작용한다. 이런 문제는 E-6 비자 소지자뿐 아니라 모든 이주노동자에 해당하는 문제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의 관리감독이 소홀하다 보니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크고 작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예술흥행비자 전반에 대한 실태조사가 필요한 시점이다. 


태그:#아프리칸 빌리지, #아프리카예술박물관, #인종차별, #코트디부아르, #노예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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