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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존스 칼리지에서 1학년을 보내던 어느 겨울날, 밤새 눈이 펑펑 내린 적이 있다. 도로 사정이 안 좋아 교수님이 수업에 못 오시는 불상사(?)가 발생해 속으로 "아싸라비요, 휴강이다!"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친구가 교수님으로부터 연락을 받고는 우리에게 말했다.

"우리끼리 수업하래(웃음)."

그날, 우리는 교수님 없이도 아주 유익하고 즐거운 수업을 하는 비극(?)을 맞이했다. 그렇다…. 여기는 세인트 존스였다.

세인트 존스 대학 수업에는 다른 대학들과 다르게, 없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강의, 두 번째는 교수다. 헉! 그게 대학이야? 그게 수업이야? 강의가 없고 교수가 없는데 그걸 어떻게 대학 수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가? 대신 수업이 수업이 되게 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바로 토론과 튜터다.

강의가 없고 토론이 있는 수업

성숙한 토론을 위해 4년간 기술을 갈고 닦지요.
▲ 100% 토론 수업! 성숙한 토론을 위해 4년간 기술을 갈고 닦지요.
ⓒ St.John's Col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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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관련 기사 : 말 안하면 '쫓겨나는' 대학, 진짜 있습니다)에서도 언급했지만 세인트 존스의 수업은 100% 토론 수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포의 직사각형 테이블에 학생들이 둘러 앉아야만 한다고 얘기했다. 노트와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코를 책상에 박고 하는 공부를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 토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토론 수업은 어떻게 진행이 되는가? 간단하다. 그날 수업에 읽어 와야 하는 책을 읽고 와서, 서로 화목~하게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 문제는 그 읽어와야 하는 책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셜록홈즈> 같은 추리 소설도 아니고, 읽고 있으면 눈에서 하트가 뿅뿅 가슴이 콩닥콩닥 뛰게 만드는 <트와일라잇> 같은 연애 소설도 아니라는 거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세인트 존스에서 읽는 책은 (이미) 많이들 알고 계시지만 고전이다. 내가 이 학교에 오지 않았다면 '나와는 한 평생 관련 없을' 리스트에 넣어 놨을 법한 분들과 책들!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Physics)>, 플라톤의 <국가론(Republic)>, 칸트의 <순수이성비판(Critique of pure reason)>, 뉴턴의 <프린키피아(Principia)>,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The principle of relativity)> 그 외 등등. 여기서 수업을 위해 읽어가야 하는 책들은 그 난이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뭔가 책 이름을 열거해 놓으니 "칸트? 헤겔? 뉴턴? 저렇게 어려운 원서들을 읽고 토론을 하려면 학생들이 얼마나 똑똑해야 하는 것일까"하는 의문과 좌절을 가지실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여기에 바로 세인트 존스 수업, 즉 토론 수업의 핵심이 있다. 똑똑해야 어려운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것이 아니다. 똑똑하지 않기 때문에 토론 방식의 수업을 하는 것이다. 책이 너무 어려워 다들 모르는 것 투성이니 강의 형식이 아닌,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토론'식 수업이 우리의 유일한 배움의 길인 것이다. '진리'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다면, 더 이상 '진리'에 대해 토론을 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은 논리다.

교수가 없고 튜터가 있는 수업

기숙사 앞 뜰입니다
▲ 1학년 가을 기숙사 앞 뜰입니다
ⓒ 조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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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교수가 없고 튜터가 있다는 말은 무슨 소린가?"하는 궁금증이 드실 것 같다. 튜터는 말 그대로 'Tutor'다. 'Tutor'라는 단어는 보통 개인 지도 교사, 과외 선생님 정도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대학 수업에 개인 지도 교사라. 뭔가 미심쩍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세인트 존스에서 말하는 튜터는 정말 말 그대로 개인 지도 교사를 말하는 게 아니다. 세인트 존스의 튜터들 역시 다른 대학들의 교수님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다른 대학에서 '교수님'으로서 수업을 가르치다 오신 분들도 계시고 다들 그만큼의 학위를 가지고 계신다.

그렇다면 왜 교수님을 교수님이라고 하지 않고 튜터라고 하나? 그 이유는 이렇다. 우리가 교수님을 튜터라고 부르는 이유는 세인트 존스에서는 교수님의 역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강의를 해 주시지만 튜터는 학생과 함께 공부하신다. 학생들을 리드하는 위치에 있기는 하지만 학생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주제, 책에 대해 좀 더 많은 시간 동안 고민을 해 온 '선배'의 느낌으로 함께 의견을 공유하는 사람이 세인트 존스의 튜터다(그래서 심지어 많은 학생들이 교수님으로 다른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가 오신 튜터들보다 곧장 세인트 존스에서 교수의 직업을 시작하신 튜터들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강의 대신 토론 수업인 데다 교수가 아닌 튜터의 역할이 이렇다 보니 수업 시간에 심지어 튜터가 오지 못해도 우리 학생들끼리만으로도 수업이 가능해지는 슬픔(?)이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튜터의 역할이 그저 학생들보다 좀 더 많은 시간 동안 고전을 읽고 고민해 온 선배의 역할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그 외에 아주 중요한 튜터의 역할이 있는데 그건 바로 수업 시간 동안 학생들로부터 좋은 토론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좋은 토론의 힘은 막강하다. 토론의 성숙도와 수준에 따라 수업의 수준이 결정되고, 학생들의 배움의 크기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토론을 하는 게 아주 중요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토론이라는 공부 방식은 참 특이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토론하는 책의 종류와 난이도에 따라 토론의 종류, 난이도는 물론 토론이 진행되는 방식, 방법까지도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는 좋은 토론을 하기 위해선, 이 토론 기술을 제대로 익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세인트 존스 학생들이 배움을 얻기 위해 수업 시간에 갈고 닦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얼마나 가지고 있냐에 따라서 좋은 토론을 할 수 있게 되면 진짜 신나는 수업을 할 수 있다. 수업 시간 내내 새로운 깨달음과 배움으로 마치 내 뇌 속의 전구에 불이 1초 간격으로 빤짝빤짝 들어오는 듯한 느낌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이건 정말 신나는 경험이다(한번은 친구들이 너무 좋은 토론을 해서 화장실에 가고 싶었지만 흐름을 놓치고 싶지 않아 2시간 내내 참느라고 정말 혼났다).

하지만 별로 좋지 못한 토론을 하게 되면 우왕좌왕하고 정처 없이 떠도는 느낌을 받기 쉽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지금 무슨 말들을 하고 있는 거지? 여긴 어디? 나는 누구?"하는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이런 토론을 하게 되면 너무 지루해서 그냥 화장실에서 살고 싶어진다).

1학년은 원석, 4학년은 보석

눈 온 다음날!
▲ 눈 눈 온 다음날!
ⓒ 조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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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이 이런 특징이 있다 보니 세인트 존스에는 이런 말도 나돈다. "1학년 토론은 원석이고, 4학년 토론은 보석이다." 즉, 막 입학한 1학년은 아직 토론의 기술이 갈고 닦여 있지 않기 때문에 (좋게 말해서) 원석이고, 4학년은 많은 토론 기술들을 익혔기 때문에 좋은 토론이 가능하므로 (과장해서) 보석이라는 거다. 그럼 여기서 잠깐 1학년과 4학년을 비교해 보자. 다 장단점이 있다.

입학을 막 한 1학년의 에너지는 엄청나다. 열정 폭풍에 휩싸여 있다(1학년에 비하면 4학년은 인생 다 살아서 더 이상 신기한 게 없는 노인들 같다). 하지만 이미 언급했듯이 1학년의 문제점은 아직 좋은 토론을 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거다.

그래서 1학년 수업에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 같은 학생들이 많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뽐내고 싶어 하는 학생, 튜터의 질문에 먼저 대답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학생, 자기 생각이 정답이라고 굳게 믿고 그것만을 주장하는 학생, 다른 친구의 이야기를 끊어 버리는 학생, 그 외 등등. 이런 학생들이 길들여지지 않은 채 다 섞여 있다 보니 1학년 때는 종종 내가 수업에 온 건지, 도떼기 시장에 온 건지 혼돈을 느끼기도 한다.

특히 수없이 충돌하고 서로가 서로를 밟고 일어서려고 하는 1학년 수업에서, 튜터의 역할은 더욱더 커진다. 너무 토론을 주도하고 있는 학생이 있으면 그 학생에게 과감히 무안을 주기도, 다른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기도 하고, 토론이 너무 산으로 가고 있으면 그 방향을 다시 바로 잡기도 하는 게 튜터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럼 이제 4학년을 살펴보자. 1학년에 비해 4학년은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처럼 갈고 닦인 내공이 있어 책을 통해 좋은 생각을 이끌어 낼 줄 알고, 성숙한 토론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많은 배움을 얻는 수업을 할 수 있다…는 게 학교의 말이다(나도 4학년이지만 내가 정말 이 단계에 도달했는지 잘 모르겠네?(웃음)).

4학년 수업은 좀 더 차분하고 자아가 좀 더 숨어 있다(이 부분이 배움의 핵심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배움은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걸 인정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귀가 쫑긋 열린다. 남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는 거다. 남의 말이라고 다 정답이고 교훈이라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다른 이의 말을 듣고, 자신의 생각도 얘기하면서 서로 다른 의견을 공유할 수 있게 되면 나로만 제한되어 있던 지식의 폭이 넓어지게 된다. 그동안의 경험과 지식만을 가지고 나 혼자 해석한 책이 다른 사람의 해석까지 받아들이게 되면서 더 풍부해질 수 있는 것이다. 배움에는 많은 종류가 있겠지만 이것 역시 진정한 배움의 한 종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배움은 좋은 토론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세인트 존스의 수업은 그 자체가 100% 토론 수업인 데다 자기주도적으로 학생들이 서로 '대화'를 통해 배움을 얻는 수업이다. 때문에 수업에서 말을 안 한다는 것은 전쟁터에서 군인이 칼을 가지고는 왔는데 칼집에서 빼지 못하고 있는 것과 다름 없고, 강의를 들으러 온 학생이 몸은 다 왔는데 머리 속의 뇌를 놓고 온 것과… 다름 없는 것이다.

그러니 학교가 말 안 하는 학생을 쫓아낸다면 어쩔 수 없구나…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또 아니다(반전의 묘미). 내가 그런 학생이거든!(웃음) 나는 겸손을 넘어선 자기비하와 수동적 교육을 받아 온 사람이라서 1학년 때부터 아주 조용한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학교에서 안 쫓겨나고 잘 살아남았다(이것만큼은 겸손을 넘어선 자기비하적 성격인 내가 자랑할 수 있을 만큼 뿌듯하다).

"오~ 얘는 말을 안 하는데 어떻게 안 쫓겨나고 살아 남았나?"하는 궁금증이 마구마구 커지실 것이다. 내가 세인트 존스에서 4년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생존 기술을 하나 하나 다 말하고 싶지만, 그러자면 책 한 권은 나올 것이다.

따라서 간단히 핵심만 먼저 말해 보자면, '말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배움의 자세'에 가장 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즉, 말을 안 하더라도 "학생이 세인트 존스의 토론식 교육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나", "더 많은 것들을 배우기 위해 수업 시간에 입을 열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있나" 등을 학교에서 판단한다.

그럼 다음 질문이 나올 것이다. "어떻게 학생 하나하나를 학교에서 다 판단하나?" 그 판단은 바로 또 다른 세인트 존스의 큰 특징이자 자랑, 돈 래그(Don Rag)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이루어진다. "오? 돈 래그는 또 뭐시여?" 그건 이제 다음 편에 설명 드릴 예정이다. 하지만 힌트만 흘려보자면, 돈 래그는 '학기말 학생을 방 안에 앉혀 놓고 그 학생의 수업을 담당한 튜터들이 모여 앉아 그 학생에 대해 뒷담화(?)를 하는 것' 정도로 설명할 수 있겠다.

양파 껍질처럼 까면 깔수록 요상한 얘기들만 나오는 세인트 존스의 매력은 계속된다~

마지막 덧) 세인트 존스 칼리지가 '말 안 하면 쫓겨나는 대학'이라는 무시무시한 첫 인상을 가지게 된 데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 (내가 그렇게 만든 셈이지만)

덧붙이는 글 | 개인 까페 (http://cafe.naver.com/nagnegil)에도 연재중입니다.



태그:#세인트 존스 대학, #ST.JOHN'S COLLEGE, #산타페 캠퍼스, #고전 100권, #리버럴 아츠 칼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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