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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정도전>의 주요 등장인물. 왼쪽부터 정도전(조재현 분), 이성계(유동근 분), 이인임(박영규 분), 최영(서인석 분), 정몽주(임호 분).
 드라마 <정도전>의 주요 등장인물. 왼쪽부터 정도전(조재현 분), 이성계(유동근 분), 이인임(박영규 분), 최영(서인석 분), 정몽주(임호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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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주말 드라마 <정도전>에서 주인공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인물은 이인임(박영규 분)이다. 드라마 속 이인임은 고려 구세력의 구심점으로서 정도전과 정몽주를 비롯한 개혁세력을 탄압하고 있다. 그는 모든 권력을 꽁꽁 틀어쥔 채 일말의 도전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드라마 속 이인임은 꽤 신사적인 인상을 풍기고 있다. 젊은 하급자들에게도 깍듯한 존댓말을 쓰며 온갖 예를 다하고 있다. 오히려 이런 모습이 드라마 속 이인임을 더욱 더 얄미운 존재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도 이인임은 꽤 신사적인 사람이었다. <고려사> '이인임 열전'에서는 "(그가) 유순한 태도와 간교한 말로 남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훗날 이인임을 꺾은 쪽에서 이 기록을 남겼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기록은 그가 그만큼 점잖고 사교적인 사람이란 점을 반증한다. 

역사가 전하는 이인임의 모습

'간교한 말'이란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인임은 남을 끌어들일 만한 화술을 구사했다. '이인임 열전'에는 그가 상대의 기분을 맞춰 가며 상대방의 판단 착오를 꾸짖는 장면이 나온다. 그의 정적들이 기록한 <고려사>에서 '매너남'으로 묘사된 것은 그가 드라마에서처럼 '점잖은 악당'이었음을 의미한다.

이인임이 언제 출생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공민왕(1351년 등극) 시대 초기에도 공직 생활을 했으니 적어도 1330년대에는 출생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주인공인 정도전(1342년 출생)보다 최소한 열 살은 많았을 것이다.

이인임의 학문적 능력은 신통치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공무원 특채인 음서를 통해 관직에 진출했다. 뒤집어 보면, 이는 그가 '출신성분'이 좋았음을 의미한다. 그는 유명한 문신인 이조년의 손자였다. 이조년은 널리 알려진 시조인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냐마난/ 다정(多情)도 병인 양하며 잠 못 드러 하노라"의 작자다.

이인임이 정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고려 말의 혼란 덕분이었다. 세계 최강 몽골제국의 패권이 약화되면서, 몽골의 지배를 받는 중국대륙에서는 중국인 저항단체인 홍건적의 반란이 일어났다. 홍건적은 고려 땅까지 침투했다. 이인임은 홍건적의 침공을 물리치는 데 기여했다. 또 기황후가 공민왕 정권을 전복할 목적으로 고려를 침공했을 때에도 그는 군량미 보급을 담당하여 승리에 기여했다.

 이인임.
 이인임.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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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 시대에 정치적 입지를 공고히 한 이인임은 1374년 공민왕 피살 사건을 계기로 권력의 정점에 진입하게 된다. 공민왕이 피살되자 어머니 명덕태후는 공민왕의 아들인 왕우를 배제하고 왕실의 종친 중에서 차기 임금을 뽑으려 했다.

열한 살인 왕우는 나이도 어렸지만, 무엇보다 공민왕의 친자가 아니라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왕우의 어머니인 반야는 공민왕에 의해 토사구팽 당한 개혁가 신돈의 여종이었다.

반야는 신돈의 소개로 공민왕을 만났다. 이런 인연 때문에, 신돈이 사형을 당한 뒤 '왕우의 진짜 아버지는 임금이 아니라 신돈'이라는 소문이 시중에 퍼졌다. 명덕태후가 왕우 대신 다른 사람을 차기 임금으로 세우려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때 이인임은 왕우에 대한 지지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왕우의 혈통에 관한 논란을 진압하고 왕우를 주상 자리에 앉혔다. 이 임금이 바로 고려 제32대 주상인 우왕이다. 우왕은 조선의 광해군·연산군처럼 자리에서 쫓겨난 임금이다. 그래서 정식 시호도 없이 그냥 자기 이름 그대로 우왕으로 불린다.

오늘날의 국민국가에서는 국민적 지지로 선출된 지도자가 통치자의 정통성을 갖는다. 이에 비해 왕조국가 시대에는 선왕의 혈통을 받은 지도자가 정통성을 가졌다. 그래서 선왕의 혈통이 아니라는 혐의를 받는 것은 왕조시대 통치자에게는 치명적인 일이었다. 이것은 오늘날의 대통령이 부정선거로 당선했다는 혐의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우왕을 적극 이용한 남자

우왕은 진실 여하와 관계없이 공민왕의 아들이 아닐지 모른다는 의심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완벽한 정통성을 갖추지 못했다. 이인임은 그런 우왕을 강력하게 호위했다. 이래서 우왕은 이인임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이인임은 이것을 이용해서 자신의 전성시대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인임 정권은 1388년 최영-이성계 연합세력에 의해 붕괴될 때까지 14년간이나 유지되었다. 독재자 전두환보다 두 배나 더 오래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것이다. 이 시기에 이인임은 우왕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절대권력을 장악했다. 그가 정권을 잡은 기간은 고려왕조의 끝자락이었다. 그가 무너지면서 고려왕조 해체론이 부상하고 4년 만에 고려가 멸망했으니, 이인임 정권은 고려 최후의 장수 정권이었다.

이인임이 집권한 시기는 동아시아 전체에서 구질서와 신질서가 충돌하는 때였다. 명나라의 신(新)패권과 몽골의 구패권이 어느 정도는 공존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이 시기는 모든 게 불안정해서 미래를 장담하기 힘든 때였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이인임은 무려 14년간이나 철권통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불안정한 시대에 그의 권력은 꽤나 안정적이었다. 그가 집권한 14년간은 사실상 '이씨 고려'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인임은 14년간 독재하고 박정희는 18년간 독재했지만, 실질적인 면을 따지면 이인임이 박정희보다 몇 수 위였다. 박정희는 군부를 거느렸지만, 이인임은 그런 것이 없었다. 박정희 시대에는 박정희를 돕는 미국의 패권이 비교적 안정적이었지만, 이인임 시대에는 동아시아 패권이 확실히 정착되지 않은 탓에 고려 정권을 안정적으로 지원할 만한 외세가 존재하지 않았다.

군대와 외세에 의존한 박정희에 비해, 이인임은 상당 부분은 자기 스스로 정권을 지켜내야 했다. 물론 이인임도 몽골에 의존한 적은 있지만, 당시의 몽골은 이미 한 물 간 나라였다. 이런 점들을 보면, 이인임은 박정희보다도 몇 수 위였다. 당연히, 전두환 같은 사람은 근접도 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젊은 개혁파 정도전(왼쪽)에게 자기 뜻을 따를 것을 강요하는 이인임.
 젊은 개혁파 정도전(왼쪽)에게 자기 뜻을 따를 것을 강요하는 이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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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임이 정권을 공고히 한 방법 중 하나는 돈과 사람을 철저히 틀어쥐는 것이었다. 그는 돈 따로 사람 따로 모으지 않았다. 이쪽에서는 돈만 끌어 모으고 저쪽에서는 사람만 끌어 모으는 식이 아니었다.

젠틀한 이인임, 어떻게 고려 좀먹었나

'이인임 열전'에 따르면, 이인임은 자기편이 되려고 찾아오는 사람한테 정치헌금을 강요했다. 그는 마음에 드는 사람을 관직에 추천한 뒤 그 사람이 돈을 들고 찾아올 때까지 수십 일간이나 인사발령을 보류하기도 했다. 이렇게 형성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그는 인적·물적 기반을 계속해서 확충해 나갔다.

이인임은 돈뿐만 아니라 사람도 확실히 챙겼다. 그는 자기한테 몇 번이나 인사하러 오는가를 체크해 두었다가 이것을 인사 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다. 이렇기 때문에 그의 추종자들은 선물하는 것과 인사하는 것만큼은 '프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신, 이인임은 자기한테 복종하는 사람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냈다. 자기한테 뇌물을 주면 관직을 새로 만들어서라도 관직을 줬고, 자기에게 충성하는 사람이 재판에서 패소하면 판사를 협박해서라도 재판 결과를 뒤집었다.

만약 사람과 재물을 모으는 데만 치중했다면, 이인임은 얼마 못 가서 집중 포화를 맞고 무너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반대세력이 형성될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도 보통 이상의 주의를 기울였다. 그는 자기의 곳간을 채우는 데만 신경을 쓴 게 아니라 왕의 곳간이 비도록 만드는 데도 신경을 썼다. 왕실과 국가의 재정이 바닥나게 함으로써 반대세력이 우왕을 이용해서 자신을 견제할 가능성을 막아버린 것이다. 

이인임은 또 다른 방법으로도 왕을 무력화시켰다. 그는 우왕이 자기한테 한층 더 의존하도록 만들 목적으로 이른바 미인계를 동원했다. 그는 자기 집 여종인 봉가이를 우왕에게 소개해주었다. 이것은 우왕이 여자에게 푹 빠지도록 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간신들이 구사하는 전형적인 방법을 썼던 것이다.

아내가 예쁘면 처갓집의 기둥을 보고도 절한다는 말이 있다. 이인임의 미인계는 대단한 효과를 발휘했다. 그의 여종이 어찌나 마음에 들었던지 우왕은 툭하면 그의 집을 방문했다. 심지어 우왕은 이인임 부부를 아버지·어머니라고 불렀다. 우왕이 이인임 집에 가서 사위 노릇을 했던 것이다.

이인임은 왕을 무력화시키는 동시에, 개혁적 선비 그룹인 신진사대부들도 철저히 탄압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젊은 정도전을 과도하게 박해한 일이다. 한편으로는 사람과 돈을 자기 쪽에 집중시키고 또 한편으로는 왕과 사대부 세력을 철저히 마크하는 방법으로, 이인임은 불안정한 시대에 안정적인 독재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인임은 매우 신사적인 매너를 유지했다. 드라마 속의 이인임은 상대방에게 뭔가를 협박할 때도 공소한 말투와 상냥한 미소를 잊지 않는다. 실제의 이인임도 그런 식이었다. 이인임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를 위선자의 전형으로 인식했겠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주 젠틀한 권력자라고 칭송했을 것이다. 이인임의 '이씨 고려'는 그렇게 젠틀한 모습으로 고려 사회를 좀먹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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