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전> 의 한 장면

▲ <행복한 사전> 의 한 장면 ⓒ 씨네그루㈜다우기술


미안한 이야기지만, 사전을 만든다는 건 21세기에는 사양 산업에 뛰어든다는 거나 다름없는 모험으로 들린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스마트폰에서 얼마든지 단어의 뜻을 검색할 수 있는데, 굳이 펄프를 만드느라 나무를 희생해가면서까지 사전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영화 <행복한 사전>은 그런 사전 만들기에 십 년 이상의 시간을 바친 출판사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사전을 만들며 순탄한 과정만 있는 건 아니다. 출판사 사장부터 사전 만들기가 출판사 영업 이익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안다. 그래서 중간에 뒤엎어질 뻔했다. 그래서 사전을 만드는 직원들은 중간 중간 돈일 될 만한 패션 단어나 요리 단어집을 출간한다.

살아 있는 사전을 만들 수 있었던 비결, '체험'

사전이 세상에서 빛을 보기까지에는 마사시(오다기리 조 분)와 언어학을 전공한 마지메(마츠다 류헤이 분) 두 남자의 공이 크다. 두 남자는 각각 외향적인 성격과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물과 기름 같아 보인다. 하지만 똑같은 일에는 쉽게 싫증을 내도 영업에는 발군의 재능을 보이는 마사시와, 마사시가 쉽게 질리는 일에는 지독하리만치 끈기를 보이는 마지메의 집념이 뭉쳐 사전 만들기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전에 들어가는 '단어'라는 건 옛 고어처럼 죽은 말이 아니다. 어떤 말은 사용하는 횟수가 줄어드는 반면, '울트라캡숑'처럼 마지메가 입사할 당시에는 없던 새로운 단어가 새롭게 만들어진다. 신조어나 외래어를 등한시한다면 살아있는 사전이 아니라 기성품 사전이 된다. 사전을 만들면서 새로운 단어가 생기면 그때마다 사전에 추가로 넣어야 한다.

파닥파닥 살아 숨 쉬는 사전을 만들기 위해 패스트푸드점에서 10대 여학생들이 어떤 말을 쓰는지 알아보는 마지메는 오타쿠, 혹은 변태로 의심받아가면서까지 단어를 찾고 또 찾는다. 어떡하면 살아있는 말을 한 글자라도 사전에 더 집어넣을 수 있을까 애쓰는 장면이다.

<행복한 사전> 의 한 장면

▲ <행복한 사전> 의 한 장면 ⓒ 씨네그루㈜다우기술


마지메가 만드는 사전이 살아 숨 쉴 수 있었던 비결로, 신조어를 등한시하지 않았다는 것 외에도 책상머리에서만 만들지 않았다는 점을 손꼽을 수 있다. 마지메는 집주인의 손녀 카구야(미야자키 아오이 분)에게 한 눈에 반하는데, 이는 그저 주인공의 사생활을 담고자 하는 게 아니다. 마지메가 사전에 집어넣을 단어 하나가 생명력을 얻는 중요한 순간이기도 하다.

그 단어는 바로 '사랑'이다. 만일 마지메가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그가 만든 사랑의 사전적 정의는 책상머리에서 나온 이성적인 단어가 될 게 뻔했다. 하지만 직접 사랑이라는 경험을 통해 얻은 사랑의 정의는 달랐다. 사랑이라는 교통사고를 당하는 건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심장이 방망이질치는 경험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마지메 자신이 잘 알기에, 자신의 체험적인 정의가 녹아들어갈 수 있었다.

<행복한 사전>이라는 영화 제목은 사전을 만드는 사람의 열정만 담지 않았다. 신조어를 향한 치밀한 조사 외에도, 이성적인 사전의 정의를 넘어서는 '체험'적인 정의가 있었기에 살아 있는 사전을 만들 수 있었다는 의미가 있다. 카구야를 향한 마지메의 사랑은 사전 안에서 체험이라는 심장을 갖도록 만들어줬고, 비로소 사전이 '행복'할 수 있게 됐다.

행복한 사전 오다기리 조 마츠다 류헤이 미야자키 아오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