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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모종을 준비하는 때이다. 일을 좀 도우러 오라는 귀농한 친구에게 씨앗값을 물으니 한 숨부터 쉰다. 고추가 많이 달린다는 다수확 품종은 1200립(알) 한 봉지에 4만5000원이고, 병충해에 강하다는 특수 종자는 7만 원이라고 한다. 비싼 종자로 농사를 지어서 제값이라도 받으면 다행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해 농사를 마감하고 결산하여 종자값과 농자재 비용을 빼면 인건비도 안 나온다고 하소연 하는 것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일회용 씨앗으로 농사 짓는다

'농부는 죽어도 씨앗을 베고 죽는다'는 말은 아무리 먹을 것이 없어도 다음 농사에 쓸 종자는 남겨둔다는 뜻이다. 또한 종자를 베개속에 넣기도 했는데, 외세의 침략이 잦았던 과거에는 베개만 들고 피난을 가더라도 그곳에서 농사할 수 있게 준비한 것이다.

씨앗받는 농사매뉴얼
 씨앗받는 농사매뉴얼
ⓒ 들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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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농약을 본격적으로 사용하던 1970년대부터는 독한 농약에 견디지 못하는 토종종자는 점차 사라졌다. 다수확과 병충해에 강하다는 개량종자를 국가에서 보급하기 시작했고, 이 때부터 전통적으로 씨앗을 받아 농사를 짓는 자가채종도 점차 사라졌다.

그렇다면 씨앗을 받는 채종을 왜 하지 않게 된 걸까? 육종(育種)기술이 발전하면서 같은 종(種)의 우수한 형질만을 교배하여 개량한 품종 때문이다. 서로 다른 종의 유전자를 유전공학기술로 배양한 유전자조작(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씨앗과는 다르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농산물이 국제무역으로 거래되고 상품화되면서 종자를 생산하는 기업들이 생겨났다. 우리나라는 IMF위기 때 대부분의 종자회사들은 외국기업들에 넘어가면서 종자주권을 잃어버렸다. 이때부터 F1종자라고 부르는 잡종1세대(first filial generation) 종자가 나오기 시작한다. 특히 고추, 배추처럼 많이 재배되고, 돈이 되는 환금작물로 분류되는 작물들에 F1종자가 많다.

F1종자의 특징은 다음 세대로 우수한 형질이 유전되지 않고 1세대에서 끝난다. 그래서 1회용 종자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F1종자가 다음세대에 수확이 안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1세대보다 수확량이 떨어지고 본래의 모양을 갖추지 못하기 때문에 상품성이 없어서 채종을 안하게 되고, 농부들은 해마다 씨앗을 구입해서 농사를 짓게 된 것이다.

농사에 결정권이 없는 농민들의 삶... 지속가능한 농업 위한 '채종'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의 가격을 결정할 권한이 없는 농민들은 씨앗도 기업이 결정한 가격을 주고 구입할 수 밖에 없다. 해마다 가격이 오르더라도 선택할 수 있는 다른 씨앗이 없기 때문이다. 일부 남아있는 토종 종자의 농산물은 시골장터에서나 간혹 볼 수 있을뿐, 유통시장에는 진입하지도 못한다. 작고 모양새도 투박한 것을 선택하는 소비자가 없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사라져가는 토종 종자를 찾아내고 보급하는 움직임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어서 그나마 앞으로 닥칠 식량위기와 종자 주권을 지킬 수 있다는 위안이 되기는 하지만 큰 동력을 낼 수 있도록 국가와 국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는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전통 토종 종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씨앗을 남기는 채종을 해야 한다. 아울러 본능을 잃어버린 F1종자의 본래 모습을 돌려주기 위해서도 지속적으로 세대를 넘겨가며 채종을 해야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각 작물들마다 다른 생육환경과 채종방법이 다른것을 알아야 하지만 채종이 단절된 지 오래되어서 그것들을 다 알려면 많은 노력과 자료들을 찾아야 하고, 경험이 있는 농촌의 농부들을 찾아가야 한다.

<씨앗 받는 농사매뉴얼>은 10년 간의 씨앗채종에 관한 경험과 방법들을 알기 쉽게 상세하게 기록했다. 저자는 유기농업이 처음 시작되던 때에 부모님으로부터 올바른 농사를 배웠고, 농사학교로 알려진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에서 생태농업 공부를 하였다. 지금은 같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생태농사를 가르치는 교사이자 농부의 삶을 살고 있다.

"분명 인내와 끈기가 필요한 일이다. 가끔은 지쳐서 관심을 소홀히 하다 채종 시기를 놓치기도 한다. 하지만 '씨앗 농사'야 말로 농부들이 해야 할 사명과도 같은 일이기 때문에 다시 채종밭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 본문중에서 -

농사를 짓는 길에 들어선 지 5년이 지나면서 제대로 된 채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쯤이었다. 꼭 있었으면 하는 책을 만나게 되어 무척 반가운 마음에 하룻밤에 다 보고, 또 펼쳐봤다.

초보 농사꾼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쓴 글이며, 사진과 그림까지 넣어준 깊은 배려에서 농사에 대한 애정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10년간 채종에 관한 경험과 기록을 책으로 내준 충남 홍성 농부 오도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덧붙이는 글 | 씨앗받는 농사 매뉴얼 I 글 오도 그림 장은경 I 들녘 I 12,000원



씨앗 받는 농사 매뉴얼 - 내가 직접 키운 작물, 내가 직접 받는 씨앗

오도 글, 장은경 그림, 들녘(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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