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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에서 온 그대>.
 <별에서 온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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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전과 오늘날을 오가는 퓨전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SBS 수목 드라마)에서는 UFO나 외계 생물체에 대한 지구인들의 몇 가지 반응이 나온다. 드라마에서 나타난 기본적인 반응은 당연히 충격과 경악이지만, 인상적인 반응도 있었다.

드라마에 잠깐 등장한 조선시대 명의 허준(박영규 분)은 자기한테 치료받은 도민준(김수현 분)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드라마 속 허준은 도민준과 함께 마루에 걸터앉아 밤하늘을 바라보며 도민준의 고향인 KMT184.05 행성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에 반해, 자신의 살인 행위를 알 가능성이 있는 천송이(전지현 분)를 죽이고자 동분서주하는 이재경(신성록 분)은 외계인 도민준의 초능력을 목격하고도 이것을 지극히 인간적인 수준에서 이해하려고 애쓴다. 이재경은 도민준이 천송이를 구하기 위해 온갖 기적을 다 선보여도 "좀 이상한 놈이야"라고 생각할 뿐, 허준처럼 진지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조선시대에도, '일상 물체' 기록

그렇다면 실제로 옛날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어땠을까? <별에서 온 그대>에서처럼 UFO나 외계 생물체를 목격할 경우, 옛날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전에, 우리가 혹시라도 갖고 있다면 반드시 버려야 할 것이 있다. 우리 중에 어떤 사람은 "현대도 아닌 400년 전에 무슨 UFO가 있었겠느냐?"며 "말도 안 돼!"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400년은 물론이고 4천년이란 시간도 인간에게는 길지만 우주에서는 무척 짧은 시간이다. 21세기에 UFO가 문제가 될 수 있다면, 광해군 시대에도 문제가 될 수 있고 단군왕검 시대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옛날이라고 해서 이런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는 광해군 1년 9월 25일 자(양력 1609년 10월 22일자) <광해군일기>를 근거로 제작됐다. 여기에는 강원도 곳곳에서 이상한 비행물체가 출현했다는 강원도 관찰사 이형욱의 보고서가 실려 있다. 이 보고서는 고성·원주·강릉·춘천·양양의 지방관아에서 보낸 보고서를 종합한 것이다.

이형욱의 보고서에 따르면, 그로부터 1개월 전인 8월 25일(양력 9월 22일) 오전 9시에서 오후 3시 사이에 강원도 내의 다섯 지역에서 이상한 비행물체가 북쪽 혹은 남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최북단인 고성에서만 남쪽으로 이동하고, 나머지 지역에서는 모두 다 북쪽으로 이동했다.

다섯 지역에서 발견된 물체의 모습은 제각각이었다. 고성에서는 연기처럼 생긴 물체, 원주에서는 붉은 옷감처럼 생긴 물체, 강릉에서는 호리병 모양의 물체, 춘천에서는 물동이 모양 물체, 양양에서는 세숫대야 모양 물체가 발견되었다. 이런 물체가 한 곳도 아니고 여러 곳에서 동시에 발견되었으니, 1609년 가을 강원도에는 사람들 사이에 이야깃거리가 풍성했을 것이다.

지구에 도착한 뒤 선비 복장을 갖춘 도민준(김수현 분).
 지구에 도착한 뒤 선비 복장을 갖춘 도민준(김수현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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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9년, 비행물체를 직접 목격한 사람들

1609년 가을에 가장 큰 충격을 받았을 사람은 양양 주민인 김문위다. 그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비행물체를 목격한 사람이다. 그의 목격담에 따르면, 세숫대야 같은 물체가 처음 발견된 장소는 그 집 마당이었다. 잠시 뒤 이 물체는 저절로 공중으로 뜨다가 둥글게 회전하면서 멀리 사라졌다. 비행물체가 뜨면서 회전할 때에 사람이나 물건이 피해를 입지 않은 것을 보면, 그 집 마당이 꽤 넓었으리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김문위처럼 비행물체를 직접 목격한 사람들은 상당히 흥분했겠지만, 사건을 보고 받은 조선 정부의 태도는 담담했던 것 같다. 정부에서는 강원감영(강원도청)의 보고를 허무맹랑하다고 무시해버리지 않았다. 이형욱은 하급 수령들의 보고를 종합해서 중앙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이형욱의 보고서 제출 과정이 합리적이었다고 이해한 듯하다. 

중앙에서 이형욱을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다는 점은 광해군 2년 9월 6일 자(1610년 10월 22일자) <광해군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이형욱은 보고서를 올린 지 1년 뒤에 광해군의 승지(비서관)가 되었다.

관찰사는 종2품이고 승지는 정3품이지만, 승지는 임금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관찰사보다 더 나은 자리다. 만약 광해군이 이형욱을 '미친 사람'이나 '얼빠진 사람'으로 생각했다면, 이런 인사조치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형욱의 보고서를 접한 사관(역사 기록관)들도 그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사관들이 이 보고를 역사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광해군을 실각시킨 인조 정권의 사관들도 광해군 시대 사관들의 기록을 허무맹랑한 것으로 치부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인조시대 사관들이 <광해군일기>를 편찬할 때에 이형욱의 보고서를 수록했던 것이다. 

혹시 당시 사람들이 유성을 비행물체로 착각한 것은 아닐까? 광해군 1년 8월 25일 자(1609년 9월 22일 자) <광해군일기>에 따르면, 강원도에서 비행물체가 발견된 날에 한양에서는 유성이 발견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강원도에서 발견된 것도 유성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옛날 사람들은 유성이나 혜성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신라 첨성대, 고려 첨성대, 창경궁 관천대(첨성대로도 불림), 관상감 관천대의 존재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인간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천체를 관측했다. 그래서 고대인들도 유성이나 혜성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광해군 시대 사람들이 유성을 비행물체로 착각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특히, 비행물체가 땅 위에서 하늘로 솟았다는 김문위의 목격담을 보면, 이것이 유성이 아니었다는 점이 더욱 더 확실해진다. 유성은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1609년에 출현한 물체는, 외계에서 온 것인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상한 비행물체였던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에서 발견된 비행물체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반응이 나타났을 것이다. 신기하게 생각하는 사람, 말도 안 된다며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종합적으로 파악한 조선 정부의 태도는 '이상하고 신비한 일이기는 하지만, 진상을 확인할 수 없으므로 판단을 유보한다'는 정도로 정리될 수 있다.

광해군 시대와 인조 시대의 사관들이 이형욱의 보고서를 역사기록으로 인정하면서 이에 관해 가타부타 이야기하지 않은 점을 볼 때 그렇게 판단할 수 있다. 확실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판단을 보류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UFO 문제에 관한 조선사회 상층부의 대략적인 분위기였다.

조선시대의 관천대. 관천대는 첨성대라고도 불렸다. 관상감에서 천문을 관측하기 위해 사용한 시설이다. 서울시 종로구 원서동 현대건설 사옥 앞에 있다. 창경경에도 별도의 관천대가 있다.
 조선시대의 관천대. 관천대는 첨성대라고도 불렸다. 관상감에서 천문을 관측하기 위해 사용한 시설이다. 서울시 종로구 원서동 현대건설 사옥 앞에 있다. 창경경에도 별도의 관천대가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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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비행물체의 출현, 옛날 사람들의 반응은?

사실, 이상한 비행물체의 출현은 옛날에도 자주 있었다. 중국 역사서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중국 명나라의 역사서인 <명사>에 따르면, 명나라 제3대 태종황제 때인 영락 2년 10월 14일(양력 1404년 11월 16일 자)에는 그릇처럼 생긴 노란 물체가 중국 상공에 나타났다.

<명사>에서는 이 물체를 '노란 별'로 표기했지만, 이것은 실제의 별은 아니었다. 명나라 사람들은 그 물체가 그릇 모양이었다고 묘사했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별로 표기한 것은 달리 표현할 만한 적합한 단어를 생각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물체는 조선 숙종 때도 출현했다. 숙종 27년 11월 3일 자(1701년 12월 2일 자) <숙종실록>에는 붉은 그릇 모양의 물체가 부산 상공에 떴다는 기록이 있다. 이에 따르면, 물체는 잠시 뒤 흰색 옷감 모양으로 변했다가 서쪽 하늘로 사라졌다. 이 물체는 색깔과 형체를 바꾸는 기술을 갖고 있었다. 이 날짜 <숙종실록>은 아무런 논평 없이 사실관계만 전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조선이건 중국이건 간에 옛날 사람들이 이런 현상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허위 보고일 것"이라느니 "헛것을 봤겠지"라는 식으로 단정하지 않았다. 그들의 태도는 '뭔가 신비한 일이기는 하지만, 진상을 확인할 수 없으므로 판단을 유보하자'는 객관적 태도였다. 물론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왔겠지만, 최고의 정보와 판단력을 가진 정부의 공식 반응은 비교적 담담하고 객관적인 것이었다. 

옛날 사람들도 현대인들 못지 않게 미확인 비행물체에 대해 합리적 태도를 취했다. <별에서 온 그대> 속의 허준처럼 외계인과 나란히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며 외계 행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옛날 사람들 역시 신비한 우주현상에 대해 판단을 유보하는 지혜를 갖고 있었다. 


태그:#별에서 온 그대, #미확인 비행물체, #UFO, #외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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