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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얼굴을 보니 담배 피우게 생겼구나. 따라와 흡연 검사 해보게...' 그러면서 제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로 흡연검사를 하게 했습니다. 더구나 검사 결과 흡연하지 않은 것으로 나왔음에도 아무런 사과도 없고... 제가 조금 얼굴이 까맣다는 이유로 담배 피울 것이라 여겨 검사까지 시키는 것은 인권침해 아닌가요?"

지난 26일 학생인권조례 2주년 기념식에서 학생들의 눈물겨운 생생한 증언이 있었습니다. 위는 그 사례 중 하나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담배 피울 것 같지 않은 예쁘장한 여학생이었는데, 왜 그 학교에서는 흡연학생으로 단정하고 검사까지 시키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감행했을까요? 이런 인권침해가 비단 그 학교 하나뿐일까요?

문용린 교육감 취임 이후, 서울시교육청이 학생인권 보호 및 증진의 책무를 다하지 않으면서 그 피해는 오롯이 학생들의 몫이 되고 있습니다. 엄연히 법적 효력을 갖고 시행 중인 조례에 의해 주어진 법적의무마저 외면한 채,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이유로 집행하지 않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기고 있는 것입니다.

학생인권조례 2주년 기념행사
 학생인권조례 2주년 기념행사
ⓒ 김형태 교육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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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서울시의회 의원회관에서 학생인권조례 시행 2주년 행사를 했습니다. 아프고 쓰라린 생일잔치이기도 했지만, 그러나 또한 참으로 뜻 깊은 자축연이기도 했습니다.

겨울보리처럼 매서운 추위 속에서 힘겹게 태어난 서울학생인권조례가 어느덧 두 번째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서울시민과 서울시의회 그리고 서울시교육청이 함께 노력하여 인권·평화·행복교육의 씨앗을 뿌린지 2년이 지난 것입니다. 서울학생인권조례는 서울시민들의 자발적 서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학생들도 엄연히 한 인간이고 국민이기에 차별받지 않고 인권을 존중받아야 하는 인격체임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한 어린이가 학생인권조례 2주년을 맞이하여 축하 연주를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 학생들도 유럽의 교육선진국 학생들처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요?
 한 어린이가 학생인권조례 2주년을 맞이하여 축하 연주를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 학생들도 유럽의 교육선진국 학생들처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요?
ⓒ 김형태 교육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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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하게 "학생 중심"으로 돌아가는 유럽 학교들

핀란드·스웨덴·독일·오스트리아 등 소위 교육선진국인 유럽에서는 "학생인권"이라는 말을 꺼낼 필요가 없는 나라들입니다. 두발 복장이 자유로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흡연조차도 학교 안에서만 하지 않으면 거의 문제삼지 않습니다. 체벌이나 소지품 검사는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학생들에게 거의 무제한의 자유를 주는데도 우리나라와 같은 학교 폭력이 거의 없고, 학교를 중간에 그만 두는 경우도 거의 없습니다.  

간혹 집단따돌림과 같은 학생사안이 발생하면, 가급적 학생들 스스로 진지한 토론과 대화, 상담교사의 도움, 그리고 교내 자치법정을 통해 해결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교육선진국들은 하나같이 학생을 통제하고 간섭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타고난 소질과 재능을 계발하고 키워주고, 부족하고 더딘 것을 채워줄까 고민하고 도와주려 애씁니다. 학교와 교육당국이 철저하게 학생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독일의 경우, 학생 사안이 발생했을 때 '일반법원'이 아닌 2000년부터 학생 스스로 문제 학생을 선도하고 지도할 수 있는 '학생법원'을 도입, 현재 바이에른과 헤센, 노드라인베스트팔렌, 함부르크, 베를린 등지의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시행하고 있으며 점차 각 지자체로 확대일로에 있다고 합니다. 이미 어떤 학교에서는 특별활동으로 '판사반'을 만들어 5학년 때부터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갖춘 교사의 지도 아래, 지속적이고 구체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학생인권조례 2주년 기념행사 펼침막
 학생인권조례 2주년 기념행사 펼침막
ⓒ 김형태 교육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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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하게 "교육당국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 학교들

유럽의 교육선진국들의 교육을 들여다보면, 겉보기에는 다소 어수선하고 무질서하고 자유분방해 보여도, 본질에 충실한 교육, 속이 꽉 찬 실속형 교육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학생들이 학교 오는 것을 즐거워하고 행복해 하고 만족도도 높고 표정이 살아있고 활기가 넘칩니다. 경쟁교육 체제가 아니기 때문에 성적스트레스나 입시스트레스도 거의 받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꿈과 끼와 뜻을 키워주는 진짜 교육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유교적 구습과 일제시대 교육의 영향 그리고 군사독재 문화의 영향으로 학생을 피교육자로 단정, 학생 입장보다는 교육공급자 입장에서 어느 정도 함부로 다뤄도 된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학생들을 통제와 규제와 간섭의 대상으로 보고, 어른들의 일방적인 눈높이와 잣대를 기준으로 이른바 '학생다움이라는 틀에 박힌 교육'을 요구합니다.

대체 학생다움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요. 경찰이나 군인처럼 통일된 교복을 입히고 짧은 머리에 단정한 복장 그리고 고분고분함과 순종을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걸까요. 억울하고 부당해서 "왜"라는 질문을 하면 바로 버릇없는 아이가 됩니다. 개성이 강하거나 자기 철학이 뚜렷한 학생이나 말이 많은 학생은 환영받지 못합니다. 교육 내용이나 본질보다 우선 학생다움이라는 미명 아래, 두발, 복장, 자세 등 형식과 체면과 예의 등 보이는 겉모습에 치중한 교육을 해왔습니다.

학력 신장과 입시교육 등 어른들이 설정한 목표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경직되고 수동적인, 사실상 체제순응적인 인간은 키워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더구나 '학습노동, 집단사육, 죽음의 입시교육'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살인적인 주입식 경쟁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학생들이 "학교는 교도소이고 학생들은 죄수냐"고 하겠습니까?  

유럽의 한 학교를 방문했을 때, 이곳에도 체벌과 교권침해가 있느냐고 묻자, 통역하는 사람이 아주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제발 그 질문은 생략해달라. 그 질문을 하는 순간, 이분들이 대한민국에는 아직도 체벌과 교권침해가 있는 아주 후진적이고 야만적인 국가로 기억할 것이다. 이곳에서 살고 있는 내가 맹세코 말하건대, 이 나라에서는 체벌이나 교권침해는 없다."    

어쩌면 같은 지구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요? 학생들의 천국인 유럽과 학생들의 지옥인 한국. 핀란드·스웨덴·독일·오스트리아의 학교들을 둘러보면서 별천지, 딴 세상 같은 유럽의 교육이 한없이 부러웠고, 이런 행복한 교육시스템을 만들어주지 못해, 한국 학생들을 생각하면서 너무 미안하고 답답하고 마음이 무거워 속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학생인권조례 2주년 기념행사 : 토크 콘서트
 학생인권조례 2주년 기념행사 : 토크 콘서트
ⓒ 김형태 교육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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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도 인간이다"... 이게 학생인권조례입니다

유럽의 학교들은 저렇게 자유롭게 비상하고 있는데,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는 말처럼, 21세기임에도 우리 교육은 아직도 학생들의 '머릿속보다 머리길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가슴이 답답합니다. 

문용린 교육감 등 교육당국과 정부와 국회에서도 구미 선진국의 이러한 현실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학생인권의 신장과 확대 노력은 고사하고, 천신만고 끝에 어렵게 제정된 학생인권조례가 마치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침소봉대하고 이제는 아예 개정, 또는 폐기해야 한다고 왜 핏대를 높이는 것일까요?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부끄럽고 미안하지도 않은가요? 언제까지 학생인권의 시계를 거꾸로 돌릴 것이며, 퇴행을 반복하고, 역주행할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학생도 인간이다"라는 선언이 바로 학생인권조례입니다. 그래도 학생인권조례 덕분에 이제 학교현장에서 학생인권이라는 말은 생소한 단어가 아닙니다. 학교에서 인권을 이야기할 때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 온도를 느낄 수 있어 다행입니다. 인권이라는 가치는 학교의 평화와 행복을 이루는 데 있어 중요한 초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은 미약하고 학생인권조례가 이루어야 할 목표는 산적하지만, 서서히 변화하는 가능성에서 학생인권이 희망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눈보라가 휘몰아쳐도 푸른 보리와 마늘싹이 넉넉하게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것처럼, 학생인권조례도 아무리 흔들고 짓밟은 사람들이 있어도, 이미 강물이 되어 흐르고 있기에 누구도 그 거대한 흐름을 막지는 못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김형태 시민기자는 현재 서울시 교육의원입니다



태그:#학생인권조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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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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