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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설날이 되면 대인관계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명분이 생긴다. 누군가에게 인사를 건넬 명분도 생기고, 누군가를 찾아갈 명분도 생기고, 누군가에게 선물을 제공할 명분도 생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설날은 사회통합에 기여한다. 하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설날을 빙자한 인사나 방문 혹은 선물 제공은 부정부패를 합리화하는 명분이 될 수도 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바로 이 점에 주목했다. 그들은 설날을 빙자해서 인사청탁이나 뇌물수수가 공공연히 벌어지지 않을까 우려했다. 이런 염려가 낳은 설날 풍습이 바로 세함(歲銜) 전달이다.

세함을 오늘날의 감각에 맞게 굳이 번역하면 '연하 명함'이 될 것이다. 물론 이런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연하장이란 표현을 응용해서 세함에 가장 가까운 현대적 언어를 만들어냈을 뿐이다. 세함이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는 1819년에 김매순이 지은 민속학 서적인 <열양세시기>에 확인할 수 있다.

"설날부터 초사흘까지 승정원에서는 각 부서의 공무를 처리하지 않고 서울과 지방의 관청에서도 근무를 하지 않고 시전도 문을 닫으며 … 지체 높은 관리들은 집에 손님을 들이지 않고 명함만 받아둔다."

관리들이 대문은 열어두되, 손님 받지 않은 이유

조선시대 관청의 모습. 경기도 용인시 한국민속촌에서 찍은 사진. 사극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소다.
 조선시대 관청의 모습. 경기도 용인시 한국민속촌에서 찍은 사진. 사극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소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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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양세시기>에 따르면, 음력 정월 1일부터 3일까지는 승정원 즉 임금 비서실을 포함해서 모든 관청과 시장이 문을 닫았으며, 지체 높은 관리들의 집에서는 대문은 열어두되 손님은 받지 않았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지체 높은 관리들은' 이하의 부분이다. 고위 관리들은 설날 기간에 세배 손님을 맞지 않고 명함만 받아둔다고 했다. 세배 손님을 받을 수 없으니 손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을 수도 없었다.

조선시대에 '지체가 높다'는 말을 들으려면, 정3품 이상인 당상관은 되어야 했다. 정3품은 지금의 중앙부처 국장급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국장급에 준하거나 그 이상인 고위 공무원들은 설날 기간에 손님을 받지 않고 명함만 받았다고 보면 된다. 물론 모두 다 그렇게 하지는 않았겠지만, 이것이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그럼, 손님도 받지 않으면서 어떤 식으로 명함을 받았을까? 1849년에 홍석모가 쓴 민속학 서적인 <동국세시기>에서는 "대문 안쪽에 옻칠한 쟁반을 놓아두고 (세함을) 받는다"고 했다. 세배 손님이 대문 안쪽의 쟁반에 명함을 놓고 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오늘날 식당의 카운터에 놓인 명함 그릇에 명함을 넣고 가듯이, 고관의 대문 안쪽에 있는 쟁반에 명함을 넣고 갔던 것이다. 당시의 명함은 종이에 붓으로 자기 이름을 적는 정도였다.

관청서 실무 담당한 건 노비 출신의 구실아치

조선시대 관료나 고위층의 집. 경기도 남양주시 남양주종합촬영소에서 찍은 사진.
 조선시대 관료나 고위층의 집. 경기도 남양주시 남양주종합촬영소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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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고위층 집에 명함만 놓고 가도록 하는 사회적 규제는,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주로 구실아치나 하급 군인들을 겨냥한 조치였다. 관리(官吏)란 말에서 官은 벼슬아치, 吏는 구실아치를 가리켰다. 벼슬아치는 과거시험이나 음서(특채)를 통해 관료가 된 공무원을 가리킨다. 구실아치는 벼슬아치를 보좌하는 공무원을 가리킨다. 서리나 아전이 구실아치의 대표적인 예다.

구실아치는 종9품보다도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설날에 고위직 공무원을 방문한다면, 그 방문 목적은 아무래도 인사청탁이나 뇌물수수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구살아치들이 세배를 빙자해서 간부급 공무원을 방문하는 것을 관습상 금했던 것이다.

구실아치의 부정부패보다는 벼슬아치의 부정부패가 훨씬 더 심하지 않았을까? 구실아치들을 이렇게 새해 벽두부터 견제할 필요가 있었을까?

사극이나 소설에서 벼슬아치의 부정부패가 주로 강조되다 보니, 많은 한국인들은 벼슬아치의 비리 행위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탐관오리(貪官汚吏)는 벼슬아치였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냥 '탐관'이라 하지 않고 '오리'란 말을 덧붙인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부패 공무원은 벼슬아치인 관(官)뿐만 아니라 구실아치인 리(吏)에서도 많이 배출되었다. 액수로 따지면 벼슬아치의 부정부패가 더 심했겠지만, 전체적 규모로 따지면 구실아치 쪽이 훨씬 더 심했다.

벼슬아치들은 유교 철학을 배운 선비들인데다가 국가에서 보수를 받기 때문에, 웬만한 경우가 아니면 부정부패에 휘말릴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구실아치들은 달랐다. 구실아치 중에는 양인(자유인)도 있었지만 공노비(관노비)가 훨씬 더 많았다. 사극·소설에서는 노비들이 글도 제대로 못 읽었던 것처럼 묘사되지만, 실제로 관청에서 실무를 담당한 것은 주로 노비 출신의 구실아치들이었다.

국가가 구실아치를 선발할 때 양인보다는 공노비를 선호한 것은 공노비에게는 보수를 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공노비는 국가에 종속된 몸이기 때문에 국가의 명령을 무조건 따라야 했다. 그래서 그들의 근무는 무보수였다. 

공노비들은 한양에서는 2교대, 지방에서는 7교대로 근무했다. 이들은 근무 외의 시간을 활용해서 생계를 유지했다. 관청에서 근무하는 동안은 무보수였기 때문에 이들은 생계의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다 보니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하여 부정부패를 범할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벼슬아치보다는 이들의 부정부패가 훨씬 더 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명 조식이 올린 상소문에 담긴 내용은...

수령과 회의 중인 구실아치들. 한국민속촌에서 찍은 사진.
 수령과 회의 중인 구실아치들. 한국민속촌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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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을 지지한 북인당의 정신적 지주는 남명 조식이다. 그 남명 조식이 광해군 등극 훨씬 전에 선조 임금에게 상소를 올린 적이 있다. 선조 1년 5월 26일자(양력 1568년 6월 21일자) <선조실록>에 수록된 상소문에는 구실아치의 일종인 서리들로 인한 국가 행정상의 부작용이 강조되어 있다.

"지금 시대처럼 서리가 나라를 마음대로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정권이 사대부에게 있어도 아니 될 판국에, 서리에게 있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 정치를 하인들에게 맡길 수 있겠습니까?"

조식이 이런 상소문을 올린 것은, 주로 노비 출신인 구실아치들이 관청 실무를 장악하고 각종 부패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국가의 근간이 흔들릴 정도였던 것이다. 국가가 공노비들에게 무보수로 관청 실무를 맡겼으니, 어찌 보면 처음부터 이런 양상이 예상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부정부패가 심한 구실아치들이 설날 세배를 명목으로 간부급 벼슬아치들과 친분을 쌓고 뇌물을 제공한다면 이들의 비리가 한층 더 조장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특히 이들의 세배를 금지하고 명함만 놓고 가도록 한 것이다.

오늘날에는 설날 집 현관에 구두가 몇 켤레나 놓여 있는가를 기준으로 그 집의 권력을 가늠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설날에 대문 앞에 명함이 몇 장이나 놓여 있는가를 기준으로 위세를 헤아릴 수 있었다. 명함을 놓고 가도록 하는 것은 부정부패를 막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것은 집주인의 위세를 과시하는 방편으로도 활용되었을 것이다.

만약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하급 공무원이 문자 메시지를 통해 설날 인사를 한다면, 상급자 중에는 언짢은 기분을 느끼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조선시대에 대문 앞에 놓인 세함을 받아든 고위 관료 중에도 그런 기분을 느끼는 이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명함을 놓고 가는 하위직 공무원 중에도 마음이 편치 않은 이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부정부패를 막는 길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런 대로 스스로를 달랠 수 있었을 것이다. 


태그:#설날, #부정부패, #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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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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