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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23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추석 이산가족 상봉을 논의하기 위한 적십자 실무회담이 열렸다.
▲ 이산가족 상봉 적십자 실무회담 개최 지난해 8월 23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추석 이산가족 상봉을 논의하기 위한 적십자 실무회담이 열렸다.
ⓒ 통일부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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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공세가 뜨겁다. 그런데 이제까지와는 다른 공세다. 최근 북한은 적대행위를 중단하고 남북 간 화해조치를 취하자고 제안하면서, 스스로 먼저 일련의 군사적 선행조치들을 취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 16일에는 '상대방에 대한 모든 군사적 적대조치'를 중단하자고 제안하기도 했으며, 구정 이후에는 이산가족 상봉까지 제안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말과 행동이 다를 지를 지켜보겠다"면서 "한 번의 말로 못 믿겠으니 행동으로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 짧은 국면만 보면 남한정부가 수세적으로 말하고, 북한이 공세적으로 평화를 말하니, 남북한의 '공수(攻守)가 바뀐 느낌이 들 정도다.

적대적 공생과 공인된 악마

사실 동북아에서 일본이나 한국의 보수세력들에게 북한은 '공인된 악마'와 같았다. 이런 점 때문에 자기 나라의 군사력을 강화하고 보수적 질서를 유지하는데 북한의 공세를 명분으로 삼기도 한다. 특히 일본과 한국에서 북한은 절대적인 '악마'로 이미지화 되어 있고, 이는 2차 대전 이후 동북아에서 진행된 일련의 냉전과정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였다. 즉, 일본과 한국에게 북한은 '본질'적으로 나쁜 국가로 간주된다.

이런 조건에서 북한이 평화공세를 취하면 나쁜 본질을 감추는 '위장'이 되고, 연평도 폭격사건과 같이 직접적인 충돌이 일어나면 나쁜 본질이 적나라하게 표출된 것으로 인식된다. 이런 관계는 적대관계가 극단화되거나 지배이데올로기가 대중적 기반을 갖추게 될 때 나타나게 되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북한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다양하게 '악마화'가 시도된 고 김대중 대통령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1987년~1988년 이후 지역주의 이데올로기가 마치 고유한 실체를 갖춘 것 마냥 부상했다. 보수언론은 김대중 대통령이 '스마일정책'을 취하면 그 악마성을 '위장'한 것으로, 정계은퇴를 번복하거나 분당을 감행하면 원래 있던 '나쁜 본성'이 드러난 것으로 비판했다. 악마는 뭘 해도 악마였던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북한이라는 존재는 이런 악마다. 물론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남의 행동 역시 유사할 것이다. 키 리졸브 훈련과 같은 한미공동 군사훈련은 우리정부의 시각에서는 '방어'훈련이겠지만, 북한의 입장에서는 '북한을 위협하는 공세적 훈련'으로 인식될 수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이것을 '악마의 공세'라고 주장하면서 남한과의 적대를 더욱 강화하여 체제를 안정화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한양대 임지현 교수가 남한과 북한 사이에는 서로를 위협하면서 자기 체제를 유지하는 '적대적 공생'관계에 있다고 분석한 것이 무리는 아니다. 적대적 공생이라는 표현처럼 6~70년대 남한과 북한은 서로 극단적인 적대성으로 각각의 권위주의 체제를 정당화 했던 악순환 구조 속에 있었다. 각자의 체제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못할 악마화된 적대 세력을 필요로 했다.

역발상의 전략, 북한판 햇볕정책

이런 악순환 구조를 깨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북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역발상의 전략이 절실한 것 같다. 이를테면, '북한판 햇볕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즉 북한 스스로가 더욱 강하게 평화 공세를 펴는 전략이 필요하다. 물론 이것은 북한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남한이든 북한이든, 누구든지 간에 먼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으로 상대방의 악마적 이미지에 편승한 '적대적 공생'구조를 깨뜨리려는 선제적 노력이 나와야 한다.

한때 정태춘은 '386선은 우리 마음 속에 있다'라고 노래했다. 사실 분단이라는 것은 모든 사회 속에 존재하며, 전지구적으로도 존재한다. 어느 사회에나 특정한 분할선에 의해 주어지는 경계를 가지고 있다. 분단은 사회적 분할선을 경계로 하는 갈등이 '적대적'인 상태에 놓이고, 분할선을 경계로 한 양쪽 공동체의 성원들이 이 관계를 적대적 의식의 형태로 가지고 있는 경우다. 이처럼 '적대적 관계로 고착화되어 있는 사회적 분할선'이 바로 분단이다.

우리 사회에서 남북 관계에 대한 인식은 계속 변해 왔다. 흥미롭게도 1990년 초반 백낙청 교수는 남북 간의 이질성으로 인해 "단일 인종이 이미 두 '원형적 민족'으로까지 분립되어 나가고 있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경쟁자(남과 북)에 대한 악마화된 이미지를 반복 재생산함으로써, 더 이상 좁힐 수 없을 것만 같은 거리감을 갖게 된 현실을 개탄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판 햇볕정책'은 '악마로서의 북한'의 이미지가 존재하는 분단 현실에서, 특히 한국과 일본의 냉전보수에 대한 '고도의 전략'이자 역발상의 전략일 수 있다. 북한이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에서 합리적 핵심을 배운다면 바로 이 점일 것이다.

'북한 악마화'로 정당화 된 아베의 '신군국주의'

만일 북이 햇볕 정책을 일관되게 펼친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결과는 '집단적 자위권'을 주장하면서 일본 평화헌법의 해석변화를 통해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진입하려는 아베정부의 신군국주의적 시도가 중요한 명분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이 악순환되면서 격화되는 이유에는 북한이 '자구적 노력'이라고 주장하는 군사력 강화와 핵개발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은 그것을 충분히 악용하고 있다. 일본의 신군국주의적 전환은 '악마로서의 북한'이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상황에서만 가능하다.

'북한판 햇볕정책'은 이러한 흐름에 중요한 평화의 쐐기를 놓을 수 있다. 지금까지 북한은 미국과 남한, 일본의 반북 세력들의 봉쇄와 공격에 대항해 스스로의 체제를 자위(自衛)하기 위해 군사력을 강화하고 핵개발을 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렇지만 무장력 확대라는 방어적 경로 말고, 공세적 평화정책이라는 공세적 경로도 가능하다. 오히려 이미 스스로가 '악마화된 존재'가 되면서, 이제 어떤 행동을 해도 그것의 '효과'는 고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역발상을 통한 효과가 더 클 수 있는 시점이다.

물론 이런 역발상에 기초한 평화공세는 몇 마디 말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북한의 평화 언사가 얼마나 갈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의심을 떨쳐 버리고 적대적인 감정을 거두게 만들기 위해서는 북의 평화에 대한 의사 표명이 '지속적'이어야 하며, 상대방이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실제적 조치가 동반되어야 한다. 지속적으로 진정성을 확인시켜 주는 실제적 조치야 말로 북한판 햇볕정책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북한 스스로 '내부의 시각'으로만 현실을 파악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경로에서 벗어나야 한다. '북한 외부의 눈'으로 자신과 현실을 파악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성찰적 접근법이 필요하며, 또 충분히 가능하다. 최근의 일련의 평화언사를 그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그럴 때만이 '난마'처럼 얽혀 있는 남북한, 동북아의 적대적 대립관계-공생관계가 균열될 수 있는 단초를 찾을 수 있다.

북한판 햇볕정책, 신뢰 프로세스와의 접점 찾아야 

북한판 햇볕정책이 가능하다면, 박근혜 정부가 주장하는 '신뢰프로세스'와의 접점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 역시 최근 북한의 전향적인 태도를 '위장 평화공세'라고만 치부하고 진정성을 보이라는 공세만 취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권장하고 촉진해야 한다.

설령 평화공세 뒤에 핵실험 등의 '새로운 공세를 위한 명분 쌓기' 의도가 있다고 보더라도 이것이 현실화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국가안위를 책임지는 정부의 중요한 책임이다. 정부는 평화공세가 위장공세가 되지 않고 '북한판 햇볕정책'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촉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 '무력으로 달성하지 못한 평화'를 '남북한 상호 햇볕정책'을 통해서 달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반도, 더 나아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두 정권의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조희연 기자는 성공회대학교 교수이자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민교협) 공동대표입니다.



태그:#햇볕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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