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레이, 혹은 라파와 플레이 하는 것은 낮과 밤처럼 다르다(Playing Murray or Rafa is day and night)."

24일 페더러는 올해 호주오픈 준결승에서 나달에 패한 뒤,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페더러는 이 자리에서 이렇게 덧붙였다.

"나달과의 경기는 다른 어떤 선수와 전적으로 다르며, 매 포인트 게임이 완전히 다른 형태로 이뤄진다."

나달은 현재 랭킹 1위 선수이고, 머레이는 지난해 윔블던 우승자로, 호주오픈에서 3차례나 결승전 오른 최정상급 선수이다. 페더러는 17번의 그랜드 슬램 대회 우승을 차지해, 이 부문 최고 기록을 갖고 있다.

페더러의 이번 기자회견 발언은 '사실'에 근접한 자체 분석이자 평가지만, 상당한 객관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물론 아마추어 테니스 동호인들도 두 사람의 경기를 지켜보면, 여느 테니스 경기와는 다르게 게임이 진행되는 걸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페더러의 자체 분석에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경기 스타일과 장단점을 고려하면, 최소한 나달에 대해서만은 페더러의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향후 경기에서 페더러 자신이 나달을 이길 가능성이 이전보다 훨씬 줄어들었음을 고백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페더러와 나달 경기의 특징을 딱 한 마디로 요약하면, 나달의 포핸드 톱스핀과 페더러의 한 손 백핸드 대결이다. 나달은 왼손으로 테니스를 친다. 그의 포핸드 톱스핀은 테니스 역사상 최강으로 볼의 회전이 분당 5000회에 이를 정도로 '무시무시' 하다. 테니스에서 볼 회전량은 많은 선수도 보통은 분당 3000회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다. 더구나 그의 볼 궤적은 공중으로 높게 떠올랐다가 땅바닥을 치고 급격한 각도로 튀어 오른다.

페더러의 한 손 백핸드는 높은 볼을 치기에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요즘 프로 선수들은 10명 가운데 8~9명이 두 손 백핸드를 구사한다. 한 손 백핸드는 높이 튀어 오른 볼을 때려 내는데, 양 손 백핸드보다 훨씬 불리하다. 신체 구조상 누구든 예외가 없다. 하지만 한 손 백핸드라도 스타일에 따라서는 상대적으로 애를 덜 먹을 수 있는 형태가 있긴 하다.

한 손 백핸드를 구사하면서도 좋은 성적을 내는 대표적인 선수를 꼽으라면 26일 열리는 호주오픈 결승에 진출한 스탠 바브링카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페더러와 같은 스위스 출신인데, 백핸드를 구사할 때 상체가 페더러보다 전반적으로 뒤쪽으로 눕는 경향이 있다. 몸이 뒤쪽으로 누우면 팔이 더 위로 치켜올라갈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나달과 같은 선수가 구사하는 높게 튀어 오르는 볼을 치기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것이다. 이는 나달이 바브링카를 이긴다 가정할 때, 페더러에 비해 힘을 더 쏟아야 부어야 한다는 의미기이도 하다.

페더러와 나달만의 독특한 게임 양상을 고려하면, 페더러가 나달과 대등한 경기를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헌데, 문제는 사실상 이런 전제 조건의 대부분이 충족되기 어렵거나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향후 페더러와 나달의 경기는 십중팔구 나달의 우세로 결정될 수밖에 없다.

이뤄질 수 없거나, 이뤄지기 힘든 전제 조건을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나달이 왼손잡이가 아니거나, 역사상 최고의 톱스핀을 주무기로 하지 않는 선수여야 한다. 둘째 페더러가 한 손이 아닌 두 손 백핸드로 스타일을 바꾼다. 셋째, 페더러의 키가 지금보다 적어도 5센티쯤 더 커서 높게 떠오르는 볼을 보다 쉽게 받아 칠 수 있어야 한다(나달은 두 손 백핸드를 구사하는 키 큰 선수들을 만나면 항상 게임을 푸는데 어려움을 겪곤 한다). 넷째, 바브링카나 그와 비슷하게 한 손 백핸드를 구사하는 필립 콜슈라이버와 같은 스타일로 백핸드 자세를 바꾼다.  

페더러와 나달의 독특한 게임 양상은 역대 전적이 잘 말해준다. 23승 10패로 나달의 절대 우위이다. 반면 나달은 현재 세계랭킹 2위인 노박 조코비치에게는 22승 17패로 상대적으로 근소하게 앞서고 있다. 이에 비해 페더러는 조코비치에게 16승 15패로 승률에서 앞선다. 페더러는 올해 우리 나이로 34살이다. 나달보다 5살 많은데, 앞으로 체력의 향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페더러로서는 갈수록 나달을 꺾기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페더러에게도 물론 실낱 같은 희망은 있다. 나달의 톱스핀 위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잔디 코트에서 대결이 그 것이다. 그랜드 슬램 대회로는 6월에 열리는 윔블던 대회가 유일하게 잔디 바닥에서 치러진다. 바닥이 잔디인 대회는 윔블던을 제외하고는 연중 두어 개에 불과할 정도로 숫자가 적다. 따라서 페더러와 나달의 맞대결이 있다 해도, 페더러로서는 승수를 쌓기보다는 패배 숫자를 늘릴 가능성이 훨씬 큰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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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더러 나달 호주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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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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