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최근 남북한 관계는 서로 상대방에게 '진정성'만 탓하면서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지난해와 달리 한 가지 달라진 상황이 있다면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평소와는 다르게 유화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점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남한 정부는 '한반도 긴장의 책임을 남측에 돌리려는 의도'라며 '진정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북한은 지난 15일 대남 기관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아래 조평통)' 명의로 발표한 성명에서 "앞에서는 북의 신년사를 환영한다고 하면서 뒤에 돌아앉아서는 동족을 반대하는 전쟁 연습 판을 벌여놓으려 하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보아야 하겠는가"라며 "남조선 집권자가 한 말이 가짜이며 속으로 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이어 "오늘의 현실이야말로 조선반도에서 누가 대결과 전쟁을 추구하며 북남관계 개선을 방해하는 위선자, 도발자는 누구인가 하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고 남한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러한 성명이 발표된 지 하루 만에 조평통보다 상급 기관이자 실질적인 북한 권력 기관인 국방위원회 명의의 성명을 발표하고 "1월 30일부터 상호 비방을 중지하는 실제적인 조치를 취하자"며 '이달 30일부터 상호 비방·중상을 중지' '군사적 적대 행위 전면중지' '핵 재난을 막기 위한 호상(상호)간의 현실적인 조치'들을 취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북한의 이러한 이른바 '중대 제안'은 만 하루가 지나지 않아 박근혜 정부로부터 거부되었다. 박근혜 정부는 "남북 간 '비방·중상 중지' 합의를 위반하면서, 그동안 비방·중상을 지속해 온 것은 바로 북한"이라며 "정당한 군사훈련을 시비할 것이 아니라, 과거 도발행위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를 먼저 취하고 지금 당장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 행동을 보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즉시 아무 조건 없이 이산가족 상봉 실현하라"고 밝히면서 사실상 북한의 '중대 제안'을 거부했다.

남북관계의 상호 기본적인 신뢰가 거의 땅바닥에 떨어진 현실에서 북한이 군사적인 적대행위를 중단하자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현실적으로 한미 군사합동 훈련의 중지와 연계하고 있는 이번 제안을 박근혜 정부가 선뜻 받아들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이번 '중대 제안'을 단지 '책임 전가용'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아쉬운 몇 가지 주목할 만한 변화가 눈에 띄고 있다.

북 '중대 제안'을 단지 '책임 전가용'으로만 볼 것인가

우선 북한은 "핵 재난을 막기 위한 현실적인 조치"라는 표현을 썼지만 이른바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 관해서도 상호 간에 현실적인 조치를 취하자고 제안했다. 북한은 국방위원회의 이번 성명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그동안 북핵 문제는 미국을 상대로 한 것이며 한국 정부가 나설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줄기차게 일관해왔다. 관련국이 참여하는 6자회담이라면 몰라도 한국 정부와는 북한 핵문제에 관해서는 논의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북한은 이 제안에서 "우리는 이 기회에 남조선당국이 더 이상 미국의 위험천만한 핵타격 수단들을 남조선과 그 주변 지역에 끌어들이는 무모한 행위에 매달리지 마는데 대하여 정중히 제안한다"며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는 않았지만, '정중히 제안'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이는 확대하여 해석하자면 핵 재난 방지의 명분이든 남북 협상에서 핵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눈에 띄는 변화다.

두 번째는 한미 군사 합동훈련에 관한 부분이다. 이 부분 역시 북한은 이전부터 초지 일관되게 북침용 도발 훈련이라며 즉각적인 중지를 주장했고 극렬한 용어를 사용해가며 '보복' 등 군사적 대응을 천명해왔다. 하지만 남한은 이번 북한의 제안에 대한 거부 성명에서도 나타나듯이 주권 행사에 따른 방어적 훈련이라며 이를 반박했다.

북한도 이러한 측면을 고려한 듯 이번 '중대 제안' 성명에서 "미국과의 '합동'과 '협동'이 그처럼 버릴 수 없는 소중한 것이라면 그것을 조선반도의 영토와 영해·영공을 멀리 벗어난 한적한 곳이나 미국에 건너가 벌려 놓으라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 부분 역시 그동안 비난 일색에서 다소 유연한 태도를 보인 측면으로 분석된다. 다시 확대해 해석하자면 북한에 심각한 위협을 주지 않은 범위에서는 이를 문제 삼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북한은 "특히 총부리를 맞대고 있는 서해 5개 섬 열점 지역을 포함하여 지상, 해상, 공중에서 상대방을 자극하는 모든 행위를 전면 중지"하자며 "이 제안의 실현을 위하여 우리는 실천적인 행동을 먼저 보여주게 될 것"이라고 밝힌 부분이다. 이 역시 그동안 상호주의를 철저히 주장해온 북한의 입장에서 다소 변화된 모습으로 읽힌다. 이 역시 확대해 해석하자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자신(북한)들이 먼저 군사 전력의 후방 이동 등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박근혜 정부는 왜 통 큰 대응을 못 하나

이렇게 북한이 제안한 '중대 제안'의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다소 변화된 내용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북한의 이러한 제안이 박근혜 정부의 주장처럼 수용할 수 없음을 뻔히 알면서 내던지는 '명분용'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서로 상대방의 '진정성'을 의심하면서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진정성을 확인해 볼 기회도 없을 것이다.

또한, 박근혜 정부가 주장하듯이 북한이 이러한 주장을 통해 명분을 쌓기 위함이 목적이라면 박근혜 정부는 오히려 이러한 제안을 일거에 거부할 것이 아니라 역으로 이 문제를 토의할 회담을 하자고 역으로 제안하는 통 큰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우리 정부는 매년 실시되는 한미 합동 군사훈련이 한반도에서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우리의 주권을 방어하고 위한 연례적인 훈련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상대방인 북한은 자신들에 대한 침략을 기도하는 군사 연습이라면서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형국이 매년 다람쥐 쳇바퀴처럼 지속하고 있다.

올해에도 2월 말부터 예년보다도 훨씬 많은 미군 병력과 군사 장비들이 총동원되어 군사훈련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국제 관계에 있어서도 '공짜는 없다'는 것은 정설이다. 최근 1조 원 가까이 증액된 미군 주둔 부담금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안보를 위한 비용은 점점 우리 국민들이 물어야 하는 상황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더 나아가 남북관계의 기본적인 개선도 없이 유라시아 철도를 비롯한 박근혜 정부의 장밋빛 청사진은 한낮 공염불로 끝날 공산이 크다. 쉽게 말해 남북관계 갈등의 지속보다는 남북관계의 개선이 가져다주는 이익이 점점 켜져 가는 현실이 되고 있다. 다시 한 번 박근혜 정부의 통 큰 결단을 촉구한다.


태그:#남북관계, #박근혜 정부, #한미 합동군사 훈련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