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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 악역은 늘 존재한다. 그리고 그의 역할은 꽤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악한 캐릭터의 강도가 얼마나 센지에 따라서 주인공의 존재감은 더욱 두드러지게 조명된다. 그러면서 악역 스스로도 존재감을 발휘하게 된다. 극이 클라이맥스로 다다를 시점에서는 오히려 악역이 주인공이 될 때가 많다. 이는 드라마에 악역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악역, 한 마디로 악한 인물이다. 처음부터 악한 마음을 드러내는 캐릭터도 있고, 극의 전개에 따라 악하게 변하는 캐릭터도 있다. 온갖 나쁜 짓은 다 하고 돌아다니며, 언제나 착한 주인공의 삶을 이리저리 훼방 놓는다. 설사 그 끝이 처참하다 할지라도, 악역은 막바지에 이를 때까지 자신의 악한 행보를 늦추는 법이 절대로 없다.

드라마에는 악한 여자도 있고 악한 남자도 있다. 악한 시어머니가 있기도 하고, 악한 아버지가 등장하기도 한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악한 캐릭터들의 일거수일투족은 기막히기만 하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는 악역에 일말의 동정심을 갖게 하는 장치를 심어 놓는다. 예컨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나 심리상태를 미리 설명해주는 것이다.

그래야만 드라마에 현실감이 살아나게 되며, 스토리가 설득력을 지니게 된다. 이제 무작정 악하기만 한 캐릭터는 요즘 드라마에서 그리 흔하지가 않다. 시청자들의 원성을 듣는 것은 둘째 치고서라도, 극이 매끄럽게 흘러가는 것을 방해하는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시작한 드라마 <천상여자>에 근래 들어 보기 드문 악역이 나타났다. 그야말로 역대 최고의 악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태정(박정철 분) 바로 그 주인공이다.

돈 앞에 사랑하는 여자를 죽음으로 내몬 남자

 KBS 2TV 일일드라마 <천상여자>의 장태정(박정철 분).

KBS 2TV 일일드라마 <천상여자>의 장태정(박정철 분). ⓒ KBS


사실 장태정은 다른 드라마에서도 흔하게 등장했던 '배신남' 부류의 한 명일 뿐이다. 사랑하던 여자를 버리고 출세를 위해 부잣집 딸을 선택하는 나쁜 남자. 만약 사랑하는 마음이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옮겨간 것일 뿐이었다면, 나쁜 남자라고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남녀가 만나 사랑하다 헤어지는 일이야 다반사이지 않은가. 문제는 돈 앞에서 사랑이 무릎을 꿇게 되었다는 것인데, '돈이냐 사랑이냐'라는 명제 앞에서 우리는 당연히 사랑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말해 현실 속에서는 꽤나 갈등이 되는 것이 사실이긴 하다. 그렇기에 배신남 캐릭터를 마냥 욕할 수만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장태정은 단순한 배신남이 아니다. 그는 배신남의 수위를 훨씬 넘어 인면수심의 살인자라 칭할 수도 있는 인물이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 그가 하는 짓은 잔혹한 패악이며, 비정한 악행이다.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잔인함을 지닌 최악의 캐릭터라고 말할 수 있다.

장태정과 이진유(이세은 분)는 오랫동안 사랑해온 사이다. 결혼을 약속했고, 서로의 사랑이 변함없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장태정 앞에 그룹 회장의 손녀딸인 서지희(문보령 분)가 나타나는 순간, 그들의 사랑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언제 사랑했냐는 듯, 이진유를 나 몰라라 하는 장태정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장태정은 고양이가 생선을 꽉 움켜쥐듯 서지희를 덥석 잡아버렸고, 멍청해 보이기까지 한 서지희는 그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는 하루라도 빨리 이진유와의 관계를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서둘러 그녀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이진유가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그를 역대 최악의 배신남이라고 칭하는 건, 이진유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에 그가 저지른 만행 때문이다. 장태정은 이진유가 만삭이 되어서야 임신 사실을 알게 되고, 그녀를 찾아가 온갖 협박을 일삼는다. 장태정에게 이진유는 더 이상 사랑했던 여자가 아니다. 그저 자신의 창창한 앞날에 걸림돌이 되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장태정은 이진유는 물론이고 자신의 아이에게도 애정이 없다. 혹시 아이를 낳다가 자신이 잘못되면 아이를 잘 돌봐달라는 이진유의 부탁에도 눈 하나 꿈쩍 하지 않는 그다. 흔들리기는커녕 그의 눈빛은 오히려 분노와 살기로 가득해진다. 결국 그는 만삭이 된 이진유를 집에서 끌어내 차에 태우고 한참을 달리다가 어딘지도 모르는 도로 한 복판에 그녀를 팽개쳐 놓고 달아난다. 차라리 죽어버리라는 잔혹한 한 마디를 침을 뱉듯 내뱉고는 말이다.

 <천상여자>의 이진유(이세은 분).

<천상여자>의 이진유(이세은 분). ⓒ KBS


차디 찬 아스팔트 위에 버려진 만삭의 이진유는 하혈을 하기 시작하고, 그런 몸으로 절뚝거리며 길을 건너다가 졸음운전을 하며 달려오는 트럭에 치이고 만다. 그것을 목격하고 황급히 달려온 장태정. 그는 자신을 잡는 그녀를 뿌리치고 다시 차를 몰아 줄행랑을 친다. 마치 잘 됐다는 표정으로, 이제야 얹힌 속이 시원해진 것 같다는 얼굴을 하고서.

결국 이진유는 길바닥에서 아이를 낳다가 사망을 하게 되고, 그녀의 몸은 사고 난 차량에서 흘러나온 석유의 불길 속으로 빨려 들어가 까맣게 타 들어가 버린다. 마지막까지 처절하게 죽어가야 했던 이진유였고, 최후까지 그녀를 철저하게 무시한 채 뒤를 돌아서버린 장태정이었다. 그가 직접적으로 이진유를 죽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장면은 직접 살인을 한 장면보다 훨씬 끔찍스러웠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마음이 돌아설 수는 있다. 그러나 자신의 아이까지 가진 여자를 이렇게 잔인하게 내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 짐승도 제 새끼는 거두기 마련인데, 장태정은 짐승이 갖는 부성애마저 상실한 채, 인간이기를 거부한 악한 인물이 되고 말았다. 역대 최악의 배신남 등극이다. 또한 너무 비정해서 현실감 제로의 캐릭터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블로그(DUAI의 연예토픽),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천상여자 박정철 이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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