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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급변 사태에 관해 보도하는 한국 언론들 .
ⓒ '구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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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나라 언론들을 보면 온통 이른바 '북한 급변 사태'에 대한 보도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특히, 보수 언론들은 북한의 장성택 처형 사건에서 불거졌던 '북한 불안정설'을 근거 없는 대북 소식통을 인용한 보도로 뻥튀기하더니 이제는 제법 그럴싸하게 '북한 급변 사태 임박설'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그 단적인 예가 지난 13일, 보수나 진보 언론을 불문하고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미국과 중국이 북한의 급변 사태에 대해 논의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는 보도를 쏟아 낸 것입니다.

<연합뉴스>를 비롯해 거의 한국의 모든 언론들은 이 보고서를 증거(?)로 하여 "지난 2009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난 다음 미국이 중국과 북한 급변 사태를 논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보도 내용은 이 보고서에서 "'북·중 군사 관계' 항목을 보면 커트 캠벨 당시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는 2009년 10월 14일 미·중이 북한에서의 비상사태에 대해 논의했느냐는 물음에 "모든" 측면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대답한 것으로 돼 있다"였습니다. 그런데 이 보도 내용만 놓고 보더라도 모든 측면을 논의했다고 했는데 유독 "북한 급변 사태가 논의되었다"라는 부분이 강조되어 점점 확산되어 나갔습니다.

이러한 보도는 지난 3일 자로 발표된 전체 76페이지로 이루어진 이 보고서에서 28쪽에 있는 내용 중 그것도 한 부분만을 따서 '북한 급변 사태'를 부각하는 증거로 활용되었습니다.

더구나 이 문장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그렇지만' 베이징대학 중국 분야 전문 교수는 '중국은 북한의 붕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고 중국이 비핵화는 추구하고 있지만 일부 중국 지도자는 한반도 긴장이 북한보다는 미국의 책임이 크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경고했다"는 내용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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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회조사국 보고서 중 한국 언론이 인용한 부분 .
ⓒ 미 의회조사국 보고서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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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선 이 보고서가 무슨 내용이었는지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이 보고서는 '중국과 대량살상무기 및 미사일 확산(China and Proliferation of Weapons of Mass Destruction and Missiles: Policy Issues)'이라는 제목으로 미국 의회조사국의 아시아 안보담당 전문위원인 셜리 칸이 지난 3일 자로 작성한 것입니다.

"중국 대북 정책 변화 없다"가 "북한 급변 사태 논의'로 슬쩍 둔갑

이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작성자가 '요약(summary)'에서 밝히고 있듯이 중국이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대북 제재에 동참하는 등 북한의 비핵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으며 "중국의 대북 정책에 관해서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이 보고서의 핵심 요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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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회조사국 저자가 보고서 '요지'에서 밝힌 핵심 내용 .
ⓒ 미 의회조사국 보고서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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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자 <미국의 소리(VOA)> 방송도 '미 의회보고서, 중국 대북정책, 북한 3차 핵실험 후에도 큰 변화 없어'라는 제목으로 이 보고서의 이 같은 핵심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VOA'도 지적했듯이 이 보고서는 "지난해 1~3월 중국의 대북 원유 수출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6.7% 늘었고 무역과 투자, 철도와 도로, 공원 건립 등 여러 방면에서 북-중 간 경제협력이 계속 확대되고 있는 사실을 근거"로 제시하는 등 중국의 대북 정책이 변화가 없다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또한, 북한의 붕괴 사태 등에 관해서도 중국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가 의문이라며 "중국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비상사태 발생 시) 북한의 핵무기와 핵물질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미국과 그 동맹국들과 (이러한) 정보를 공유할 것인지, 그리고 미군과 한국군의 작전을 방해할 의도가 있는지 등이 의문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VOA'는 해당 보도에서 "미 의회조사국의 한 관계자도 지난 13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다음 달로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한 지 1년이 되지만 중국의 대북 정책과 태도는 국제사회의 기대만큼 낙관적이지 않다'고 밝혔다고 전했습니다. 즉 다시 말해 이 보고서는 북한에 대한 중국의 정책이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는 것을 강조한 보고서였습니다.

그런데 보고서의 이러한 핵심적인 결론 내용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한국 언론에서는 마치 미국과 중국이 북한 급변 사태에 관해서 꾸준히 논의해온 것처럼 둔갑하고 만 것입니다. 보고서의 핵심 취지에도 맞지 않는 한 부분을 따서 그것도 작성자가 말하려고 하는 내용과는 전혀 상반되는 뉘앙스로 보도를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례는 비일비재합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한국 일부 언론들은 지난 13일, "중국이 10만 명의 군인을 동원해 북한 급변 사태에 대비해 백두산 근처에서 훈련을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보도 역시 근거는 하나도 제시하지 않은 채 이 훈련이 북한 급변 사태를 대비한 훈련이라고 단정 지으며 "탱크로 평양까지는 6시간이면 도착한다" 는 등 대대적으로 '북한 급변 사태' 발생 가능성의 확산에 치중했습니다.

한국 일부 언론 연일 '북한 급변 사태' 관련 보도...외신은 무관심

이렇게 한국의 일부 언론은 무엇이든 어떠한 내용이든 이를 북한의 급변 사태와 연결시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입니다. 예를 들어 최근 전 미 국방장관이었던 로버츠 게이츠가 발간한 회고록에서도 북한 급변 사태에 관한 짤막한 언급이 나옵니다.

그 내용은 지난 2009년 10월 26일 워싱턴을 방문한 중국의 쉬차이호우 중앙군사위 부주석에게 게이츠 당시 미 국방장관이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생각을 말했다는 것입니다. 결론은 "북한의 불안정한 상황과 정권 붕괴로 인한 위험성에 대해 의견을 개진했으나 별다른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임무(duty)'라는 제목으로 발간된 이 회고록에서 게이츠 전 국방장관은 근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당시 상관이던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중동 전쟁에 회의적이었다는 이유로 신랄하게 비판해 오히려 여론의 비난을 받은 바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근거 제시도 없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반미적이고 약간 미친(crazy) 사람"으로 묘사해 비난이 일고 있습니다. 이렇게 미국에서도 진실성에 관해 논란이 되고 있는 회고록에서 유독 '북한 급변 사태'에 관한 내용을 찾아내어 이를 보도하는 한국 언론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할 뿐입니다.

한국의 일부 언론들은 주로 북한 붕괴 가능성을 높이 보는 미국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앞세우며 '북한 급변 사태' 만들기(?)에 온 열정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언론들은 이렇게 연일 '북한 급변 사태'에 대한 보도를 이어가고 있지만, 북한에 대해서는 과도하리만큼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많은 외신들은 전혀 북한의 '급변 사태' 가능성에 대해서는 보도를 하고 있지 않거나 무관심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 무수단 미사일을 장착한 차량이 잠깐 딴 곳으로 이동만 해도 긴급 보도를 하며 데니스 로드먼의 방북 활동 일거수일투족에도 관심을 보이는 외신인데 왜 북한의 급변 사태 임박(?)에 관한 보도는 거의 없다시피 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실(fact)에 근거하지 않고 오히려 사실을 왜곡하는 한국 언론의 보도를 그대로 받아 쓸 외신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근거 없이 확산하는 '북한 붕괴설'... 왜

연초부터 '통일은 대박'이라는 박 대통령의 뜬금없는 발언이 이어지고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언론들은 갑자기 '통일'을 화두로 꺼냈습니다. 그리고 연일 '북한 급변 사태'에 관한 작문 보도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통일에 대한 과정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통일 이후를 언급하는 속내에서 북한의 이른바 '급변 사태'로 인한 통일을 바라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일부는 현실적으로 김정은 체제의 붕괴, 즉 김정은 제1비서의 암살 등 유고 사태이고 이에 따라 북한핵 등이 통제 불능 사태에 빠지는 것을 '북한 급변 사태'라고 주장합니다.

현재로서는 가능성도 희박한 김정은의 유고 사태가 북한 급변 사태를 불러올지도 미지수입니다. 김일성 주석 사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을 전후한 시기에도 엄청난 '북한 급변 사태설'이 쏟아졌지만, 북한에서는 아무런 급변 사태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장성택이라는 이미 2013년 초부터 북한 권력에서는 멀어져 갔던 사람의 처형 사실을 둘러싸고 이렇게 다시 북한 급변 사태 임박설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백번을 양보해 북한에서 이러한 '급변 사태'가 일어난다 할지라도 이것이 어떻게 통일과 연결될 수 있는지도 미지수입니다. 북한에서 김정은 유고 등 급변 사태가 발생하면 바로 한·미 양국 군대가 평양으로 진격하고 북한을 장악해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라도 논리는 굳이 중국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국제 관계의 기본도 모르는 허무맹랑한 일부의 희망 사항(?)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시점에 한국에서 특히 언론들이 이렇게 '북한 급변 사태' 가능성을 급속하게 부각시키는 것인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필자는 이러한 '북한 급변 사태' 뻥튀기가 또 다른 '북풍' 유도나 '안보 장사'가 아니기를 희망할 뿐입니다. 깨어나지 않는 국민과 국가에 미래는 없을 것입니다.


태그:#북한 급변 사태, #미디어 비평, #안보 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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