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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은 엉터리? 부림사건 당시 수사검사였던 고영주 씨가 <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부림사건과 영화에 대해 말하고 있다. 12일 <조선닷컴> 머리기사
▲ 변호인은 엉터리? 부림사건 당시 수사검사였던 고영주 씨가 <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부림사건과 영화에 대해 말하고 있다. 12일 <조선닷컴> 머리기사
ⓒ 조선닷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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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왜 이런 영화가 만들어졌다고 보시나요."

고영주 변호사 "한마디로 대한민국에 대한 적대감을 고취하고, 친노 세력의 결집을 위한 목적이겠죠… (중략) 우리나라는 완전히 국가 자체를 부정하는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 위한 목적으로 영화를 만듭니다. 정말 악랄하죠."

영화 안 본 사람에게 영화를 묻는 조선

영화 <변호인>이 최단 기간 9백만 관객을 돌파한 12일, <조선닷컴>의 머리기사 역시 이 영화에 대한 것이었다. 개봉 25일 만에 9백만을 돌파한 <아바타>의 기록보다 7일 빠른 속도다. 2014년 첫 천만 돌파는 거의 확실해 보이고, 이 추세대로라면 영화사를 새롭게 쓸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관객의 힘'으로 입증받은 영화인데 이를 다루는 <조선닷컴>의 보도 내용이 이상하다.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부림사건'의 수사검사였던 고영주씨와 가진 인터뷰를 게재했다. <조선>은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영화의 '제작 목적'을 묻고 있다. 감독도 아니고 평론가도 아니고 심지어는 영화를 보지도 않았다고 답변한 사람에게 묻는 질문치고는 어색하다.

질문을 받은 과거의 검사는 영화가 "친노 세력의 결집과 국가 자체를 부정할" 목적으로 제작됐다고 답했다. 나아가 고씨는 "영화는 엉터리"이며 "노 대통령은 공산주의를 변호한 것 밖에 안 된다"고 주장했다. '영화는 봤느냐'는 질문에 고씨는 "어차피 자기들 입맛대로 짜깁기 해서 만든 영화인데 내가 봐서 관람객 숫자를 늘려줄 필요가 있느냐"고 답했다.

<조선> 기자는 당시 검사에게 <변호인> 장면에 대해 꼬치꼬치 물었다. 영화와 같이 판사가 변호사를 윽박지르는 게 가능한지, 실제 노무현 변호사가 재판 시작 전 피고인들의 포승줄을 풀어달라고 했는지, 변호인 아들에게 국가기관이 전화로 신변을 협박했는지, 차 경감이 증인으로 나와 변호인에게 큰 소리치는 장면과 영화 초반 판사가 검찰과 변호인에게 형량 합의를 권유하는 장면 등에 대해 물었다.

영화를 보지 않았다고 하지 않은가! 영화를 본 사람이 9백만 명이고 그 중 법조인도 많을 텐데 보지 않은 사람을 상대로 영화 속 장면을 설명해 가면서까지 관련 내용을 질문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안타까움 함께 인터뷰의 의도성까지 생각하게 된다.

피해자에겐 30년 동안 잊지 못한 고통, 주임검사의 대답은...

 지난해 12월 26일 서울 마포구 누리꿈스퀘어 롯데씨네마에서 열린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초청 '영화 <변호인> 상영회'에서 영화를 관람한 회원들이 상영관을 나서고 있다.
 지난해 12월 26일 서울 마포구 누리꿈스퀘어 롯데씨네마에서 열린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초청 '영화 <변호인> 상영회'에서 영화를 관람한 회원들이 상영관을 나서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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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서 기자는 '부림사건'의 실체에 대해 물었다. 당시 검사는 "의식화 사건으로 뿌리내린 좌경사상이 결국 전 대학가를 점령하였고, 오늘날 종북(從北) 세력의 뿌리도 거기에서 출발한다"고 대답했다.

이어 <조선> 측은 "영화에서는 시종일관 부림사건이 경찰과 검찰의 고문 수사로 조작된 것이라고 나온다"며 고문에 대해 물었다. 당시를 잘 기억한다고 대답한 고씨는 "(부림사건 피의자들은) 검사와 변호사에게 자신들의 생각을 전파하려고 했던 사람들"이라며 "이것이 고문을 받고 겁에 질린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이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특이하게도 인터뷰에서 기자는 부림사건 당시의 '고문'에 대해 집요할 정도로 질문을 던진다. '고문을 당했다'는 주장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물었다. 실제 조사과정에서 고문이 있었을 경우 재판에 미치는 영향을 물었다. 영화처럼 한 달 동안 감금된 채 고문 받는 관행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조선>은 고문과 관련해 비슷한 질문을 반복해서 던졌고, 다양한 질문에 당시 검사는 "그런 사실이 없었다"고 답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시계를 3년 전으로 돌려 2011년 4월로 돌아가면 '30년 만에 고문 경찰관 2명 고소한 부림사건 피해자 14명' 뉴스가 기다리고 있다(관련기사 보기). 1981년에 겪었던 두 달 간의 끔찍했던 사건을 잊지 못하던, 이제는 피해자가 된 당시의 피의자들은 30년이 지난 시점에 '차동영(고문경찰)'을 찾아 고소한 것이다. 그들은 "공소시효가 지나 피고소인들이 처벌받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고문사실만큼은 밝혀 달라"고 평생 잊지 못한 억울함을 호소했다.

<조선>의 질문, 부림은 용공조작인가?

인터뷰가 마무리되어갈 무렵 나온 <조선>의 질문. 이 질문이 정말 묻고 싶었던 본질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조선> "부림사건이 '용공조작'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고영주 변호사 "(전략) 부림사건이 용공조작이라면 어떻게 그 후 전 대학이 주체사상으로 붉게 물들 수 있었겠는가. 오늘날 종북세력이 하늘에서 떨어졌겠냐, 땅에서 솟아났겠는가."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당시 검사는 용공조작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단호함까지 느껴졌다. 그는 대학생 등이 김일성을 존경하고, 공산주의를 동경하는 발언과 모임을 한 것이 사건의 실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것이 현 종북세력의 뿌리라고도 해석했다. 이 발언에 대해 질문을 던진 <조선> 기자는 추가 질문이나 반론을 펴지 않았다.

부림사건은 용공조작 사건  부림사건을 용공조작 사건으로 보도한 2009년 8월 15일 조선일보
▲ 부림사건은 용공조작 사건 부림사건을 용공조작 사건으로 보도한 2009년 8월 15일 조선일보
ⓒ 조선일보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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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계를 4년 반으로 돌려 2009년 8월의 <조선일보>를 찾아보면, 전혀 다른 내용이 보도됐다. 재심을 청구한 부림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부산지법의 판결을 보도한 5문단의 기사다. 이 기사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신군부가 5·18 민주항쟁 이후 용공사건으로 조작한 부림사건에 대한 재심에서 법원이 일부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 <조선일보> 2009년 8월 15일자 10면

<변호인>은 실재했던 인물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영화는 매일매일 흥행 신기록을 돌파하며 한국 영화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이 신문과 대립 관계였던 노무현 대통령이다. 그렇다고 해도 3년 반 전에 '용공조작' 사건이라고 스스로 보도했으면서, 사건의 주임검사에게 '용공조작으로 보는가'를 묻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허구입니다'

영화를 관람한 9백만 명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허구'라고 못 박고 시작한다. 관객들은 영화 속 모든 내용을 '다큐멘터리'라고 믿지 않는다. 같은 공간에서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정말 저러한 고문을 당했을까'라고 놀라워했다. 일부는 '현재와 무관한 일들일까'라고도 걱정했다. 그러나 영화와 실재를 분간하려 애쓰는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2009년 8월 <조선일보>는 부림사건을 '용공조작 사건'으로 보도했다. 12일 게재된 인터뷰를 진행한 <조선> 기자와 당시 검사였던 고영주씨는 해당 <조선일보> 기사를 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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