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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주 후 일찍 자는 습관은, 가능성 제로였던 아침형 인간을 실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일찍 일어나는 새는 벌레 한마리라도 더 잡아먹는게다.
▲ 새벽을 여는 사람 단주 후 일찍 자는 습관은, 가능성 제로였던 아침형 인간을 실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일찍 일어나는 새는 벌레 한마리라도 더 잡아먹는게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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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넌 멀어지나봐 웃고 있는 날 봐, 때론 며칠씩 편하게 지내, 점점 널 잊는 것 같아 먼 일처럼... 어쩌다 또 생각나, 너를 그릴 때가 오면 숨막히게 지쳐, 애써 참아 낼 수 있겠지..."

왕년의 나의 애창곡, 브라운 아이즈의 '점점'이라는 노래의 가사다. 단주 시작하고 3개월의 고개를 넘어섰다. 지금 이 순간, 내 심경을 이보다 명확히 표현할 수 있을까? 20년 지기 절친과의 이별 후에 나는 그럭저럭, 아니 매우 잘 살고 있다(고 스스로를 세뇌 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솔직히). 어쩌다 생각 날 때도 있지만, 점점... 잊고 있는 중이니까.

어느 알코올 중독자의 고백. 첫 기사가 나가고 두달여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그 막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

프롤로그에서, 알코올 탈출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낚시성 문구로 지나치게 과장되게 소개한 감이 있다. 단주와 관련된 일련의 과정들이 독자들에게 잘 전달되었는지, 아니면 지루하기 그지없는 문자 공해였는지 궁금하다. 그저 알코올 중독이라는 질병에 대한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 조금 희석되기를, 그리고 알코올 중독자를 바라보던 사회의 시선이 다소 말랑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마지막 맺음의 글로 지난 3개월간 나에게 일어난 변화와 용기 내어 단주를 시작하려는 분들께 드리는 작은 조언 몇 가지를 적어보고자 한다. 먼저 나에게 일어난 변화. 크게 육체적인 부분과 정서적 부분으로 나누어 본다.

육체적 변화

일요일 오전, 알코올기 없는 상쾌한 기분으로 가족과 직지사에서.
 일요일 오전, 알코올기 없는 상쾌한 기분으로 가족과 직지사에서.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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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끊고 딱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신체적 변화는 뱃살이 빠진 것이다. 젊은 시절, 깡술로 버린 오장육부를 조금이라도 보호하기 위해 어느 순간 안주를 많이 먹는 버릇이 생겼다. 거기에다 대학 때 한 선배가 진리처럼 일깨워준, '맥주는 소변으로 나온 양만큼 다시 마실 수 있다'라는 인풋-아웃풋의 법칙을 지금껏 충실히 실천했다.

그 결과는 볼링핀 형 몸매, 즉 새가슴에 34인치의 기형구조가 되어 있었다(일반인의 34인치와 가슴이 좁은 남자의 그것은 확실히 비주얼적 느낌이 다르다). 단주 후 실제로 석달 만에 34인치에서 31인치로 급감했다.

혹자는 술 끊고 술 대신 달고 사는 과자나 과일 등이 살을 더 찌우게 만든다고 항변할지 모른다. 물론 맞는 말이다. 술 마시는 습관과 체질이 전부 다르니까. 하지만 술자리에서 안주를 즐겨먹는 분들이나 입가심으로 500CC 세 잔 정도 마셔줘야 잠이 잘 오는 사람의 경우는 단주와 동시에 틀림없이 술살이 빠질 것이다. 

술 마신 다음날, 소위 그부분이 헐때까지 화장실을 들락거리던 기억들이여, 안녕히!
▲ 단주 후 사라진 과민성 대장 증후군 술 마신 다음날, 소위 그부분이 헐때까지 화장실을 들락거리던 기억들이여, 안녕히!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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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살이 빠져나감과 동시에 과민성 대장 또한 평온함을 찾았다. 술 마신 다음날, 오전의 대부분은 변기 위에서 괴로워하지 않았던가? 어디 가서 하소연하기 힘든 배꼽 아래 부위 통증과 다리 후들거림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심지어 수술로 이어지는 사람도 여럿 지켜봤다. 단주 후 한 달쯤 지나자 잘 먹고 잘 싸는 평범한 사람들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피를 역류 시키던 작열감은 이제 타인의 고통, 즉 나의 즐거움(?)일 뿐이다.

마지막 신체의 변화는 피부의 변화다. 대학 신입생 때부터 40대로 보이던 세파에 찌든 피부가 단주와 동시에 아기 피부로 재생되고 있다. 자려고 불 끄고 누워서 여섯 살 난 큰 아이의 얼굴과 내 얼굴을 번갈아 만져보면, 별반 다르지 않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애들 엄마는 굉장히 싫어 할 말이다, 애한테 저주를 내리는 거냐고). 지난 이십 년간 단 한 번도 느낄 수 없던 매끈한 피부. 단주 결심 후 가장 뿌듯한 부분이다.

이상의 신체적 변화들에 대한 의학적 근거를 요구하지는 말아주시라. 각각의 생리학적 기전(현상)은 설명가능한 것이지만, 논문 몇 개의 분량일 뿐더러 사실 그런 머리 아픈 얘기를 원치는 않으리라. 그냥 내가 느끼는 거고 내가 원해서 시작한 단주니까 본인만 느끼면 되는거다. 이렇게 좋게 변화된 모습을 찾는게 중요한 거니까.

이외에도 만성 피로와의 결별이나 업무 집중도 향상 등 상투적으로 표현되는 결과도 물론 있다. 상투적인 말들은 그만큼 확률이 높다는 말을 의미하니까. 나 또한 그 확률에서 벗어날 이유는 없으니까.

정서적 변화

다음으로 단주 후 일어난 정서적 변화. 술을 끊고 가장 좋은 점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시간을 말한다. 애초에 술을 끊으려던 목적이 부족한 시간을 되찾기 위함이었기에, 매우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손에 넣게 된 것이다.

일단 술자리에 참석하지 않으니까 일찍 귀가하게 된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기 전 구연동화까지 서슴지 않는 아빠의 귀감으로 탈바꿈중이다. 슈퍼맨이 돌아오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일찍 자면 새벽녘에 눈이 떠진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건 꼭 새나라의 어린이만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그 시간을 활용해서 기사를 쓰거나 책을 읽는다. 단주 시작하고 3개월간 쓴 기사가 스무개쯤 되고, 2014년 새해 목표를 소설 한 편 쓰기로 잡았을 만큼 새벽과 오전 시간이 자유롭다. 행여 시간이 없어서 책 한 줄 못 읽는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에게 단주는 반드시 권하고 싶은 시간 활용(절약) 방법이다.

'불금'을 달리고 토요일 내내 침대를 벗어나지 못했던 과거의 무책임한 아빠로부터 탈출이다.
 '불금'을 달리고 토요일 내내 침대를 벗어나지 못했던 과거의 무책임한 아빠로부터 탈출이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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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주와 함께 찾아온 심정의 두 번째 변화는, 평상심을 회복하는 중이라는 점이다. 한창 술을 마실 때면 그 날의 기분에 따라, 술 마신 다음날의 컨디션에 따라, 조증과 울증 사이를 왕복하곤 했다.

스트레스에 따라 분노 게이지가 상승하면 자동으로 술 생각이 났고, 그렇게 한바탕 마시고 난 다음날이면 축 처진 상태로 좀비처럼 살았다. 흔히 말하는 기분파? 막상 겪어보면 다중성격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요즘은 감정의 기복이 그리 심하지 않다. 무슨 해탈의 경지에 오른 것도 아닌데, 단지 술을 끊었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을 보는 시각이 한층 부드러워졌다. 분노와 자학의 연결 매개체였던 술이 빠짐으로 인해 분노 전 안정이라는 선순환 구조로 체질 개선 중이기 때문이리라. 이제 겨우 3개월 단주한 놈이 지나치게 허세를 부리는지도 모른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남 탓을 많이 한다. 술 한잔 마시고 세상 욕 하다 보면 또 그렇게 사그라들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이 반복되면, 매사를 타인의 잘못으로 바라보는 비뚤어진 시각이 자리잡게 되고 그릇된 성격 형성과 대인 관계의 파탄을 초래할 수 있다. 내 탓이 결국은 네 탓으로 굳어지게끔 생각의 회로가 형성되는 거다. 알코올 중독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그리고 서서히 진행된다. 하루라도 빨리 발을 빼는 것이 정답인 것이다.

이상으로 술 끊고 3개월이 지나서 나에게 일어난 변화에 대해 적어보았다. 다음 시간에, 용기 내어 단주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몇 마디를 끝으로 연재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태그:#단주 후 변화, #아침형 인간, #구연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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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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