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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옥(왼쪽), 김복동 할머니가 8일  오전 서울 중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22주년 '수요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이 집회는 1992년 1월 8일 시작되 1108차를 맞고 있다.
▲ "60대 아줌마 때 시작했는데, 벌써 22년" 길원옥(왼쪽), 김복동 할머니가 8일 오전 서울 중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22주년 '수요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이 집회는 1992년 1월 8일 시작되 1108차를 맞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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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낮 12시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108번째 수요집회가 시작됐다. 매주 수요일마다 참석자들 앞에 서서 '진상규명', '공식 사죄·배상' 등을 외쳐온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상임대표는 이날도 어김없이 마이크를 잡았다.

윤 대표는 2명의 여성에게 본인의 옆에 서달라고 요청했다. 신미숙(이미경 의원실 보좌관)씨과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88) 할머니였다. 세 사람은 22년 전 수요일인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전 일본 총리 방한을 맞아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하기 위해 집회를 열었다. 그렇게 시작한 위안부 피해자들의 수요집회는 역대 최장 집회 기록을 세웠고, 지금도 세우고 있다.

"우리가 그때 같이 시위를 시작한 사람들인데요, 아직도 이렇게 살아있어요!"

김 할머니의 어깨를 감싼 윤 대표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윤 대표는 22년 전 수요집회가 마치 '잿빛'과도 같았다고 털어놨다. 매주 수십·수백 명이 모이는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6~10명 정도밖에 모이질 않았다고 한다. 윤 대표는 "그때는 '뭐가 자랑이라고 시위를 하냐'는 주변 시선 때문에 가슴 아플 때가 많았다"며 "그래도 지금은 많은 사람이 응원을 해주셔서 힘이 난다"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 얼굴에 주름 늘어가지만... 이뤄진 것 하나 없어

윤 대표와 할머니의 얼굴에 주름이 늘어가는 동안, 이들에게 힘을 보내는 참석자들도 점점 늘어났다. 청소년·대학생·외국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집회에 참석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힘내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날도 한파를 앞두고 기온이 급격히 하락했지만, 200여 명(경찰 추산)이 두터운 외투 차림으로 자리를 지켰다. 엄마와 손잡고 나온 초등학생, 손 피켓을 직접 만들어 들고 온 중·고등학생들도 보였다.

그러나 긴 시간 동안 외쳐온 이들의 바람은 여전히 공허하게 메아리 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고, 한국 정부 역시 또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윤 대표는 "변하지 않는 건 국가들의 태도"라며 "오랫동안 시위를 했는데도 여전히 일본의 망언은 계속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우리 정부를 향해서도 "할머니들이 나날이 연세가 드는데도 아무런 대책 없이 계속 묵묵부답"이라고 토로했다.

게다가 역사 교과서 왜곡 논란까지 벌어지면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는 "한국인 위안부가 전선의 변경으로 일본군 부대가 이동할 때마다 따라다니는 경우가 많았다"고 기술, 왜곡된 사실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달 26일 위안부 피해자 등 9명은 교학사가 발행하는 <한국사> 교과서를 고교에 배포해서는 안 된다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했다.

길원옥(왼쪽), 김복동 할머니가 8일 오전 서울 중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22주년 '수요집회'에 참석해 수요집회 22주년 기념 케익의 불을 끄고 있다. . 이 집회는 1992년 1월 8일 시작되 1108차를 맞고 있다.
▲ 촛불끄는 수요집회 할머니들 길원옥(왼쪽), 김복동 할머니가 8일 오전 서울 중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22주년 '수요집회'에 참석해 수요집회 22주년 기념 케익의 불을 끄고 있다. . 이 집회는 1992년 1월 8일 시작되 1108차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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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모시 한복 차림으로, 겨울에는 두터운 외투에 벙거지모자 차림으로 수요집회를 이어온 김 할머니도 윤 대표를 바라보며 지난 22년을 돌아봤다. 김 할머니를 비롯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1차 집회 때는 주변 시선을 의식해 참석하지 못했다가 7차 집회인 1992년 2월 26일부터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 일제 식민지 시대의 만행을 몸소 고발했다.

"우리 대표님은 그때 20대 새파란 아가씨였고, 나는 60대 아줌마였지요. 지금은 대표랑 나랑 같이 늙어가요(웃음). 대표님은 학부모가 됐고, 나는 90대를 바라보는 할망구가 됐으니까요. 그런데 아직까지도 일본 정부나 우리나라나 말 한 마디 없어요."

김 할머니는 "아베 총리가 자기 조상들이 잘못했다고 사죄하면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않겠지만, 아직 사죄 한마디가 없다"며 "나라가 힘이 없어 억울하게 끌려가 수년간 고생하다 해방이 됐어도 우리는 아직 해방이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같은 여성으로서 (위안부 피해 문제를) 해결지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힘주어 말했다.

아흔을 바라보고 있는 김 할머니는 "이제 우리는 세상을 떠날 때가 다 됐다"며 "다시는 우리같은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실제로 위안부 피해 할머니 생존자 수는 해가 갈수록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만 4명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237명의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56명만 남아 있는 상태다. 이날도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85)할머니만 자리를 지켰다.

처음 수요집회에 와봤다는 김혜영(40)씨는 기자와 만나 "연세가 많이 드신 할머니들을 직접 뵈니 뭐라 말을 못할 정도로 가슴이 먹먹해졌다"며 "할머니들이 날이 갈수록 노쇠해지는데 정부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는 "많이 힘드시겠지만 할머니들이 조금만 더 힘을 내주셨으면 한다"며 "일반 시민으로서 응원한다"고 전했다.

학생·수녀·등 응원 위해 참석... 미국 대학생들 바다 건너 찾아오기도

8일 오전 서울 중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22주년 '수요집회'에 전국 각지에서 모인 참가자들로 가득 차 있다.
▲ 22주년 맞은 수요집회 8일 오전 서울 중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22주년 '수요집회'에 전국 각지에서 모인 참가자들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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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집회에는 정대협 회원과 더불어 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소속 수녀, 인일여고 등 전국 각지 초·중·고등학생들이 참가해 할머니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15년째 수요집회에 참석해온 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수녀들은 "안녕하지 못한 요즘, 할머니들에게 안녕한 소식이 들리기를 바라며 오늘도 참석했다"고 밝혔다.

인일여고 교지편집부 학생들은 "친구에게 욕 한 마디만 들어도 가슴이 아픈데 할머니들은 우리 나이 그런 모진 고통을 어떻게 견디셨는지 상상이 안 된다"며 "앞으로도 계속 힘을 보태겠다"고 다짐했다. 인천효성남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은 이날 참석한 김복동·길원옥(85) 할머니에게 손 편지와 선물을 전달했다.

바다 건너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캐서린대학교에서 온 학생 10여 명도 함께했다. 이 학교 학생인 이브 발레(22)씨는 "정의와 평화를 위해 싸워주시는 할머니들과 함께 하겠다"며 "할머니들의 용기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정대협은 성명서를 통해 "또 한 번의 수요일이 지날 때마다 부끄러운 것은 바로 일본 정부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며 "일본 정부는 지난 22년 간 외쳐온 우리의 요구를 이행하지 않은 채 역사왜곡과 군사대국화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위안부 피해 사실을 왜곡한 교과서 채택이 버젓이 이루어지는 등 박근혜 정부 들어 더 깜깜한 밤이 오고 있다"며 "한국 역시 책임과 부끄러움이 커져가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피해자들의 명예가 회복될 때까지 수요집회를 계속 하겠다"며 ▲전쟁범죄 인정 ▲진상 규명 ▲공식사죄·배상 ▲전범자 처벌 ▲역사교과서에 위안부 문제 기록 ▲추모비 건립 등을 요구했다.

정대협은 성명서를 낭독한 후 22살만큼의 촛불이 꽂힌 케이크를 들고 할머니들 앞에 섰다. 할머니들과 참석자는 다 같이 촛불을 불었다. 사회자는 참석자들을 향해 "위안부 문제 해결될 때까지, 수요집회 끝날 때까지 계속 함께 해주실 거죠?"라고 물었다. 참석자들은 한 목소리로 "네"라고 답했다.


태그:#위안부, #일본, #정대협, #김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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