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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느 날, 큰 아이가 다섯 살 되던 해에 아파트에 사는 이웃집 친구집에 놀러 갔다 오더니 갑자기 여동생 한 명 낳아 달라고 조른다.

"엄마 저 여자 동생 한 명 낳아줘요. 잉잉~ "

이유인 즉, 친구집 놀러 갔는데 친구가 아랫동생이랑 소꿉놀이 하는 걸 보고 너무 부러웠나보다.

"그래. 그럼 동생 한 명 달라고 기도하렴~"

아이는 엄마 말을 믿었던지 냉큼 십자가 앞에 꿇어 앉더니 촛불까지 켜 놓고 중얼거리며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하느님, 엄마가 제 여동생 한 명 낳게 해주세요."

큰 아이의 간절한 염원도 있고 해서 한의원에가서 맥을 짚고 몸을 보하는 한약을 한 첩 다려 먹었다. 동생을 낳아 달라는 아이를 위해 생전 처음으로 한약 한 첩을 다려 먹었다.

보약을 먹고 둘째 아기를 기다리던 중에 다행히 건강이 좋아졌는지 아님 아이의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병원에서 임신 2개월이라는 의사의 축하 인사말을 들었다. 병원문을 나서며 곧바로 역전 지하상가에 있는 레코드점으로 갔다.

지갑에 있는 현금을 몽땅 털어서 모짜르트, 바하, 헨델 등 클레식 CD를 한아름 안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 머리맡에 전축을 놓고 아침부터 저녁에 잠들기 전까지 태중의 아기를 위해 잔잔한 음악을 들었다. 아기는 입덧도 별로 안하고 음식도 잘 먹고 엄마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정기적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순천향 산부인과에 가서 태중의 아기 진찰을 했다. 아기는 별탈 없이 잘 자라고 있었다. 임신 5개월이 되어 태반이 안정 될 때까지 격한 운동을 삼가하고 집안에서만 살살 걸어 다녔다.

그 당시 집안에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었던 일이 있었지만 뱃속의 아기가 걱정되어 힘들때마다 배 위에 손을 얹고 태중의 아기와 대화를 했다.

"아가~ 엄마가 무척 힘들구나. 아기도 힘들지? 우리 서로 힘들지만 꿋꿋하게 잘 견디어 5개월 후에 꼭 만나자."

   둘째 아기 업고 아파트내 산책하기
 둘째 아기 업고 아파트내 산책하기
ⓒ 강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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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8개월 됐을때, 배가 제법 불렀다. 병원에 정기검진을 갔더니 의사가 태중의 아기 무게가 3kg가 조금 넘어 섰다고 했다. 그 당시 내 나이가 35살이라 둘째 아이지만 노산인 데다가 이대로 가다가는 출산 예정시에는 아이가 너무 커서 자연분만은 힘들고 수술분만을 준비해야 될 것 같다고 했다. 여자가 자연분만을 하는 고통은 지옥문을 넘나드는 극심한 훈련이다. 하지만 나는 꼭 자연분만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8개월도 넘었고 아이도 건강하다고 하니 조금 일찍 낳아도 아이 건강에는 이상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믿음에 확신이 서는 순간부터  열심히 걸어 다녔다. 그리고 태중의 아가랑 열심히 대화했다.

"아가, 우리 자연분만이라는 고통의 문을 지나 서로 행복한 상봉을 하자. 아가는 할 수 있지? 힘내, 화이팅!"

산골마을까지 십리를 걸어가서 포도 한 박스을 사서 이고 오는 등 걷기 운동을 열심히 한결과, 아니나 다를까 임신 9개월에 접어드는데 갑자기 배가 아래로 처지며 아랫배에 간헐적인 통증이 온다. 규칙적으로 배가 아프고 점점 시간이 좁혀지며 불그스레한 이슬이 비친다. 병원에 전화했더니 15분 간격으로 통증이 오면 입원하란다. 출산일 한 달 전인데도 입가엔 흐뭇한 미소가 돌기 시작한다. 옳거니, 얼른 출산물품을 준비하자.

그런데 왜 이리 기쁜지. 생각대로 아기가 한 달 일찍 태어나면 자연분만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래도 정말 예정분만 한달 전인데 아기와 내가 괜찮을까 하는 걱정도 조금 들었지만 출산용품을 챙겨 병원으로 갔다.

의사가 진찰하더니 분만고통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자연분만 가능하다고 해서 안심이 들었다. 분만 대기실에서 다른 여성들과 함께 출산의 고통을 겪기 시작했다. 분만 대기실에 들어서는 순간, 붉은 실핏줄이 터질 듯한 그녀들의 고통에 찬 충혈된 눈빛을 보며 한 생명을 탄생하기 위한 숭고한 행렬에 나도 동참하게 되었다.

    공주처럼 분홍 드래스 입히고 토끼랑 놀던 아이들
 공주처럼 분홍 드래스 입히고 토끼랑 놀던 아이들
ⓒ 강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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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칼로 도려내는 듯한 간헐적인 고통의 시간 간격이 점점 좁혀오는데 통증도 점점 더 깊어진다. 남산만큼 부른 배를 움켜쥐고 화장실을 들락달락하는 산모도 있다. 분만실에 여러 명의 산모들이 쉼호흡을 하며 오직 아이의 새생명을 위해 소리조차 지르지 못한다. 병원 드라마에서 나오는 소리지르는 그런 풍경은 찾을 수가 없다. 배를 칼로 난도질하는 통증과 내장을 헤집어 놓는 듯한 극한 상황 속에서도 '끙끙~ 음~' 뱃속의 아이가 다칠세라 조심조심 몸만 뒤척이며 아기의 상봉을 기다린다.

15분 간격으로 의사가 분만 대기실을 돌며 내진을 하고 자궁이 10cm 이상 열린 산모는 분만실로 데리고 간다. 나도 분만실로 가기를 학수 고대하며 지독한 통증을 참고 기다리는 시간이 억만 년같이 길었다. 10분 간격으로 참을 수 없이 방광을 누르는 듯한 오줌이 마려운 느낌에 화장실에 들락거린다.

극심한 통증을 참으며 분만실로 들어가기를 기다리는 중에 하얀 가운 입은 실습생 한무리와 의사가 오더니 갑자기 손을 푹 찔러 자궁 속으로 푹 집어 넣어보고는 어쩌구 한다. 따라온 실습생들이 들여다 보며 받아 적고 견학을 한다. 세상에 이런 수치감이 어디 있으랴. 당장 일어나서 호통을 치고 싶지만, 힘든 통증 중에 일어날수도 없고 기운도 없다.

의사와 간호사 몇 번의 내진 후에 자궁문이 많이 열렸는지 분만실로 들어 가란다. 분만실로 들어가는 두려움보다는 이제 아기를 만난다는 기쁨에 통증보다는 입가엔 미소를 짓는다. 여인은 분만실에서 죽기까지 온 힘을 쏟으며 생명을 데리고 나오기 위한 지옥같은 관문을 통과 해야만 한다.

분만실 침대 위에 눕자 간호사가 움직이면 아기가 위험하다고 겁을 주며 가만히 누워 있으라고 한다. 그리고 간호사가 면도칼로 아기가 나오는 입구의 체모를 모두 제거한다. 여자가 아기를 낳기 위해 느껴야하는 두 번째 수치감이다. 첫 번째 수치감은 아기 잉태 초기부터 병원에 정기검진 받으러 가면 병원 침대위에 올라가 누워 의사의 두 손가락을 자궁속으로 넣어 내진을 하는것이다. 그래서 둘째 아이는 일부러 여의사를 선택했다.

자궁 입구의 체모를 다 제거한 후에는 관장을 하고 그리고 소독 거즈를 닦은 후에 의사가 아래를 메스로 쭉 긋는 듯한 느낌이다. 아기가 잘 나오기 위해 회음부를 적당히 절개하는것 같다. 그리고 아랫배에 힘이 주어진다. 옆에서 간호사가 보조를 맞추며 힘을 주라 할때 힘껏 힘을 주라고 한다.

"조금만 더 힘을 주세요. (네, 끄응~) 조금만 더 힘을 줘요. (끄응~~~응) 옳지, 좋아요. 조금더, 더~~ (으으으~~~~~ 끙~)"

온 힘을 다 줬는데도 조금만 더 힘을 주라고 한다.

오, 하늘이여, 저 살려 주세요. 우리 아기 살려줘요. 속으로 외치며 나는 마지막 죽을 힘을 온 몸으로 가했다.

"아~~~~~ 끄응~~~~~~."
"더, 더더 힘줘요."

몇 번을 '더더 힘줘'라는 말에 '더 이상 줄 힘이 없으므로 나는 이렇게 죽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실낱같은 마지막 힘을 주었다. 갑자기 무엇인가 쑥 빠져나가는 느낌이 드는 순간,

"오~~ 됐어요. 이제 힘을 안주셔도 됩니다. 잘 하셨어요."  
"앙~~"

드디어 아이가 을음을 터뜨리다.

"축하해요. 딸입니다."

드디어 아이의 가느다란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누운 채로 고개를 돌려 시계를 쳐다보니 오전 11시 21분이다. 전날 저녁에 병원에 들어 갔다가 밤을 새우고 아침을 거르고 점심 전에 아기를 만났다. 간호사가 아기 얼굴을 보여 주는데 고통은 잠시 잊고 미소를 지었다.

필자는 생각하기를, 여성이 아기를 낳는 일은 우주를 들었다 놓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죽음의 아득한 문턱을 넘는 순간까지 닿아야 새 생명이 울음을 터뜨린다.

보통 아이는 모태에서 10개월을 지내다가 세상에 태어나는데 우리 작은 아이는 9개월 만에 한 달 일찍 태어났다. 항간에 이런 아이를 팔삭둥이라고 하는데 우리아기는 태어날 당시에 몸무게는 3.6kg 키 50.5cm 로 건강하게 태어났다. 클래식 태교와 태중의 대화 때문인지 손재주가 있고 효심이 깊은 심성이 고운 아이로 자라고 있다.


태그:#자연분만, #고통을 지불하는 어머니의 사랑 실천, #팔삭둥이, #출산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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