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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되게 희한한 조건이네요?"

상담을 해주던 은행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모니터를 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어 "금리나 한도 면에서 그런 측면이 있다"고 답했다.

국토부와 대한주택보증, 우리은행은 지난 2일 '전세금안심대출'을 출시했다. 우리은행은 최저 연 3.49% 금리에 대출을 제공하고 대한주택보증은 연 0.197%의 보증료율을 받고 전세 보증금 반환에 대한 보증을 서는 상품이다.

기존 전세자금 대출 한도의 4배까지 대출이 가능한 파격적인 조건이지만 막상 출시일 영업점에는 이 상품 관련 내방객이 많지 않았다. 우리은행 측은 "전세계약을 맺은 상태에서 신청해야 하는 상품이라 정확한 수요는 며칠 지나봐야 알 것 같다"면서 전화 문의는 많이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수입 1000만 원으로 1억 2500만 원 전셋집 입주?

전세금안심대출, 정말 괜찮을까?
 전세금안심대출, 정말 괜찮을까?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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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금 안심대출은 정부가 지난해 12·3 대책에 포함시킨 전세대책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목돈 안 드는 전세Ⅱ'를 대한주택보증의 전세금 반환보증과 연계시킨 상품이다. '전세금 반환청구권'을 담보화시켜 저렴한 금리로 전세자금대출을 받고 전세보증금에 대한 보호가 가능하다는 게 장점이다. 국토부 역시 정책 발표시 이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70주째 전세 가격이 폭등하는 가운데 전세 세입자 입장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대출 한도이다. 이 상품은 대출 이후 부담하게 될 총 대출이자가 수입의 40% 이내이면 전세보증금의 80%까지 빌릴 수 있다. 연 수입이 1000만 원인 세입자의 경우 이론적으로 자기 돈 2500만 원이 있고 다른 대출 실적이 없다면 1억 원을 빌려 1억 2500만 원짜리 전셋집에 입주할 수 있는 셈이다.

기존 주택담보대출도 전세금의 80%까지 대출은 가능했다. 그러나 소득 등 기타 조건의 제약이 있어 신용이나 소득이 낮으면 높은 금액을 빌리기는 쉽지 않았다. 기존 주택담보대출의 한도가 통상 소득의 2.5배 수준이라면 전세금 안심대출은 소득의 10배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다만 계약일 당시 '깡통' 상태인 주택에 전세 세입자로 들어가는 사람은 이 상품을 이용하기 어렵다. 국토부 기준에 따르면 아파트의 경우 선순위채권액이 집값의 60%를 넘지 않아야 하고 '선순위채권액과 전세보증금을 합한 가격은 집값의 90% 이하(오피스텔은 80% 이하, 기타 주택은 70% 이하)'라는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또한 전세로 들어가려는 주택의 가격은 수도권의 경우 3억 원, 지방은 2억 원 이하여야 한다. 임차주택은 등기가 되어있어야 하고 가압류나, 가처분 등 권리침해사항이 있으면 계약 대상에서 제외된다.

금리는 6개월 변동과 2년 고정 두 가지 조건이 있다. 2일 현재, 6개월 변동은 기본 연이율 4.49%에 우리은행과 관련된 각종 우대 조건을 만족하면 3.49%로 대출계약이 가능하다. 고정금리로 할 경우에는 기본 4.83%에 최저 연이율 3.83%까지 적용받을 수 있다.

"거액 대출 받아서 더 큰 집으로 옮겨도 주거비 덜 든다"

전세금 안심대출 구조 설명
 전세금 안심대출 구조 설명
ⓒ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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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중은행 전세자금대출보다 낮은 이율에 한도는 지금보다 4배 높다. 대한주택보증이 가져가는 전세보증금 반환 청구권이 담보 역할을 하기 때문에 세입자의 신용등급과도 별 관련 없이 대출이 실행된다. 국토부는 이 상품을 1년간 운용해보고 확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 상품이 전세 대책이 아니라 전셋값이 뛰는 걸 합리화시켜주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선대인 선대인연구소장은 "집주인들이 전셋값을 터무니없이 올려받아도 전세대출이 되니까 세입자들이 그냥 계약을 맺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계부채가 심각한 상황에서 사실상 전세 가계의 대규모 대출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는 것이다. 기자는 이날 이 '황당한' 대출에 대한 반응이 궁금해서 종로, 남대문 일대의 우리은행 영업점들을 찾았다.

현장 반응은 이상하리만치 썰렁했다. 상품 계약을 체결하러 온 사람은 물론 상담자 찾기도 쉽지 않았다. 결국 현재 전세 세입자인 기자가 직접 손님으로 가장해 직원에게 설명을 들어야 했다.

주변 세입자들을 수소문해 이날 직접 은행에 전화 상담을 한 월세 세입자 박아무개씨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그는 "계산을 해 보니 월세 세입자들도 전세로 갈아탈 생각이 들 정도로 매력적인 상품"이라고 평했다.

박씨는 "교통편 때문에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45만 원을 내며 서대문구 신촌 부근의 16.5㎡(5평) 원룸에 거주하고 있는데 전세로 갈아타는 게 더 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인근 26.4㎡(8평) 전세 시세가 8000만~9000만 원 정도인데 그런 집으로 옮긴다고 해도 지금 내는 월세보다 주거비 부담이 적다는 것이다.

첫날 반응에 대해 우리은행 관계자는 "일선 영업점에 전화 문의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아무래도 계약 후 은행을 찾아야 하는 상품이라 첫날 반응이 즉각적이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은행에 고객이 상품 신청을 할 경우 대한 주택보증으로 신청 자료가 넘어가게 되는데 그 기간이 3~7일 정도 걸린다"면서 "열흘 정도 후에는 상품에 대한 반응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태그:#전세금안심대출, #국토부, #우리은행, #전세 대란, #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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