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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향 논란을 빚고 있는 교학사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우편향 논란을 빚고 있는 교학사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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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고등학교가 우편향 논란을 빚고 있는 교학사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채택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대구와 경북에서는 기숙형 공립고등학교인 포산고등학교만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구의 92개 고등학교 중 한 곳만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했지만 채택 과정에 일부 문제점도 드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교과서를 채택하기 위해서는 담당하는 과목의 교사 3인 이상이 교과협의회 구성해 해당 검정교과서를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점수를 매긴 평가서를 운영위원회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이어 3순위까지의 교과서에 대한 점수를 바탕으로 학부모 등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에서 최종 선정하면 학교장은 이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대구와 경북에서 1곳만 교학사 교과서 채택

하지만 포산고등학교의 경우 담당 교사가 한 명 뿐이어서 교장이 다른 학교에서 2명을 데려와 교과서를 선정했다. 이 학교 역사교사는 기간제교사이기 때문에 올해 이 학교에서 다시 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교장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고 다른 학교에서 온 교사들도 교장의 요구를 뿌리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게 다른 교사들의 전언이다. 결국 교장이 자신이 원하는 교과서를 선택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포산고등학교 담당자는 학교장이 부재중이라는 이유로 교과서를 선정한 과정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고, 김아무개 교장은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거부했다.

경북에는 국립 1개교와 공립 101개교, 사립 91개교 등 모두 193개의 고등학교가 있지만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는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북 성주군에 있는 성주고등학교의 경우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했다가 문제가 일자 한국사 교과서를 재선정하기로 했다.

이 학교 정아무개 교장은 1일 오전 학교에서 회의를 열고 문제가 있다고 결론을 내려 3일 오전 학교운영위원회를 열고 교학사 교과서를 배제한 다른 교과서 8종 중에서 다시 채택하기로 했다.

성주고 손아무개 교감은 "운영위원회에서 최종 선택한 교학사 교과서에 대해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고 다시 선정하기로 했다"며 "경북교육청에 보고를 한 뒤 3일 운영위를 열어 다시 선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천재곤 전교조 대구지부장은 "교사는 이념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가르쳐야 한다"며 "친일을 미화하고 독재를 미화하는 역사 교과서를 가르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전교조 대구지부는 3일 오후 성명을 통해 일반고등학교의 2배가 넘는 예산을 지원받는 포산고등학교에서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것은 유감이라며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전교조는 "담당 역사교사가 기간제교사로 채택과정에 의혹과 문제가 있었음은 짐작하고도 남는다"며 "포산고는 친일·독재 미화, 문제투성이 교학사 역사 교과서 채택과정에 대한 의혹을 밝히고 채택을 당장 취소하라"고 주장했다.

이어 "학교는 특정 세력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기 위한, 왜곡과 편향으로 점철된 시각을 학생들에게 세뇌시키는 곳이 아니다"며 "다양한 표현의 자유는 마땅히 존중받고 수용되어야 하지만 우리 교사들은 우리나라 역사를 왜곡하고 친일과 독재를 미화한 교과서를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도 가르칠 수도 없음을 다시 한 번 천명한다"고 밝혔다.

"교학사 역사교과서 대구 10월항쟁 왜곡"

교학사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는 대구 10월항쟁을 조선 공산당의 지시에 다른 폭동으로 묘사해 논란을 빚고 있다.
 교학사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는 대구 10월항쟁을 조선 공산당의 지시에 다른 폭동으로 묘사해 논란을 빚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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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교학사 교과서는 대구 10월항쟁에 대해서도 왜곡한 것으로 드러났다. 1946년 10월 1일 일어난 10월항쟁은 미군정에 의해 쌀값이 폭등하자 대구시민들이 쌀을 달라고 시위를 하면서 발생했다.

하지만 교학사 교과서는 "조선공산당은 1946년 가을부터 총파업을 하였다. 1946년에는 대구 10.1 사건 같은 무장봉기를 일으키는 등 미군정과 정면대치 상황으로 갔다"고 해 10월 항쟁이 조선공산당에 의해 일어난 것처럼 기술했다.

이어 별도의 설명을 통해 "조선공산당의 지시에 따라 파업을 벌이던 중 대구에서 폭력 시위가 발생하였다. 이를 해산하는 과정에서 시위자 한 명이 경찰의 유탄에 의해 사망하자 시위는 폭동으로 변하였다. 시위 군중들은 대구 경찰서를 점거하여 무기를 약탈한 후 수십 명의 경찰과 그 가족들을 살해하였다. 폭동은 전국적으로 번져 수백 명의 사망자와 수만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고 썼다.

최근 법원은 10월항쟁유족회 일부 회원들에 대한 재판에서 "국가가 형성되기 전이라 하더라도 폭력이 있었다면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통해 10월항쟁이 폭동이 아닌 항쟁으로 인정한 바 있다.

이에 대해 10월항쟁유족회 이성번 사무처장은 "조선공산당은 주도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참여는 했지만 지시에 의해 항쟁이 일어났다는 것은 거짓"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쌀값 폭등에 따른 기아문제가 기폭제가 되었고 10월 1일 사상자가 발생하자 대구의전 학생들이 시신을 메고 대구역 쪽으로 가면서 학생과 노동자들이 모여들었다"고 말했다.

이 처장은 "당시 대구시민 절반 이상이 참여했지만 우리가 가진 자료에 의하면 사상자 중에 경찰이나 경찰 가족은 거의 없었다"며 "교학사 역사교과서의 왜곡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문제제기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교학사 교과서, #고등학교, #대구경북, #10월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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