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호인>의 기세가 무섭다. <광해>와 <7번방의 선물>보다 하루 빨리 200만 관객을 돌파했고, 개봉 10일 만에 400만 관객을 불러모으며 천만관객 흥행대열에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여기에는 영화 완성도 외의 다른 요인도 작용하고 있다. 개봉 전부터 포털 사이트의 '별점 테러'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모았고, 개봉 이후에도 '대통령 노무현의 변호사 시절' 일화가 영화의 소재라는 것이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 <변호인>이 흥행가도를 달리는 가장 큰 요인은 무엇보다도 영화에 담긴 굵직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변호사 '송우석'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중심으로 한국의 지난 시절을 돌아본다.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빈곤이 공존했던 시대

 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

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 ⓒ 위더스필름


경제성장을 통해서 다양한 가능성이 꿈틀대던 80년대, 아이러니하게도 당시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의 군부독재 정부였다. 바야흐로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지만, 정신적으로는 빈곤했던 시기였다. 독재정권의 공안정국 아래에서 다들 '경제발전'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만 달려야 했고, 이루어진 모든 것이 그의 업적인양 대통령을 찬양하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이어서,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은 생각조차 할 수 없던 시대였다.

이야기의 초반부에서 주인공 송우석 변호사도 이러한 대중의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판사를 그만둔 그는 부산으로 내려와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여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한다. 불편한 시국에 대한 인식은 접어둔 채로, '부동산 전문 변호사'로 이름을 알리며 재산을 늘리는 데 성공한다.

이어서 그는 '세금 전문 변호사'로 다시 한 번 변화를 시도하고, 당대 10위 대기업으로부터 스카웃 제의도 받게 된다. 그야말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모습이다. 그가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것은 또 다른 사건이 벌어지면서 시작된다. 송 변호사는 자주 들르던 국밥가게 아들이 '간첩 누명'을 쓰며 조작된 사건에 휘말린 사실을 알게 되고, 청년의 어머니로부터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주인공 송우석 변호사가 그의 삶에서 가장 큰 전환기를 맞는 것은 이 지점이다. 돈과 출세를 위해 돌진하던 그는 간첩 조작사건의 피해자인 청년의 변호인으로 나서면서 인권변호사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던 관점이 달라지며 국가의 폭압에 희생될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편에 서고, 그 결과 탄탄하게 성공의 길로 들어서던 그의 인생은 격랑에 휩싸인다.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

 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

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 ⓒ 위더스필름


영화의 절정은 부림사건 재판 장면이다. 고문과 강요로 받아낸 자백이 유일한 증거인 사건에서 변호사 송우석은 검사와 판사의 '짜고치는' 재판 진행에 날카롭에 이의를 제기한다. '만들어진' 간첩이 되어 버린 청년들의 무죄를 입증하려 애쓰고, 거대한 폭력이 되어버린 공권력의 남용을 적나라하게 지적한다.

안보를 위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정권의 정당성 입증을 위해 안보의식은 굳이 인위적으로 자극된다. 그래야만 하기에, 독재 정권은 대를 이어서 '간첩단 사건'을 조작하여 만들어내는 지경에 이른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던 헌법은 유린되고, 국민들의 안전과 진실도 덩달아 일그러진다. 영화 속 송우석 변호사가 분노하는, 그리고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여기에 있다.

바로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이다. 몇 개의 숫자로 환산될 경제발전, 권위주의로 무장한 정부의 탄압에 비참하게 짓밟히는 민주주의. 권력의 압력에 숨죽이는 언론, 피투성이가 된 죄없는 청년들을 아무도 변호하지 않으려는 현실. 이런 상황 속에서 민주주의를 되찾고자 하는 열망이 끓어오르는 것을 영화는 극적인 내용 전개로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백골단에 맞선 시위대의 선봉에 서는 송우석 변호사의 모습은 가슴을 뜨겁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모두가 부당한 권력이 두려워 고개를 떨구던 시대에서 당당히 일어서 탄압받는 약자를 보호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힘의 논리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물결의 시작이었음을 내포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2013년에도 현실감이 살아있는 이 영화

 영화 <변호인>의 포스터.

영화 <변호인>의 포스터. ⓒ 위더스필름


SNS에서는 연일 영화 <변호인>을 관람한 사람들의 감상평이 쏟아진다. 공통된 내용은 "영화 속의 현실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하다"는 것. 무고한 사람을 고문하고, 법치주의를 무너뜨리면서도 "내 덕분에 당신들이 발 뻗고 잔다"며 혀를 끌끌차던 사람들은 현재에 와서 당시의 간첩 사건들이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음에도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하지 않고 있다.

정부에 대한 비판은 쉽게 국가에 대한 반역으로 치부되고, 죄없는 사람들마저 붉은색으로 칠해진다. 공중파 언론의 대다수는 침묵하거나 이를 돕는다. 영화가 현실감있게 느껴지는 이유라면 배우의 무게감 있는 연기력이 뛰어나기 때문이겠지만, 80년대를 연상시키는 오늘날의 현실도 한 몫 거들고 있는 셈이다.

사실 영화 <변호인>의 짜임새는 세련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장면과 장면의 연결이 투박하게 보이기도 하고, 악역의 인물 설정이 다소 과장된 느낌도 있다. 현실에서는 오히려 공안정국의 주범이었던 인물들이 고문을 하면서도 일상적인 걱정을 늘어놓을 정도로 '악의 평범성'을 보여주는 사례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가 지나치게 신파적으로 흐르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은 캐스팅과 더불어 배우 송강호의 연기력이 담백하게 캐릭터를 소화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된다.

앞서 언급했던 '포털 별점테러'를 비롯해서 이 영화를 지나치게 비난하는 사람, 반대로 심하게 자극받아 서거한 정치인을 회상하는 도구로 쓰려는 사람들은 아쉽게도 한가지를 놓치고 있는 듯하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점이 '인물의 위대함'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치라는 점이다. <변호인>이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삼았지만 일대기가 아니라 특정 시기의 사건을 줄거리로 설정한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영화 <변호인>의 흥행열풍은 80년대에서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민주주의 가치' 회복을 원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분위기의 반증일 것이다. 깊어지는 갈증과도 같은 열망이 단지 영화로 푸는 '대리만족'과 지나간 인물에 대한 '그리움'에 모두 소진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기엔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독재세력의 자기정당화와 불통의 정치가 이루어지는 현실이 너무나 뼈아프기 때문이다.

변호인 송강호 간첩 조작사건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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