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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경찰이 검문체포영장이 청구된 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이 은신하고 있는 조계사 입구에서 차량을 검문하고 있다.
▲ 경찰 조계사 앞 검문검색 강화 경찰이 검문체포영장이 청구된 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이 은신하고 있는 조계사 입구에서 차량을 검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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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선물 치고는 고약했다. 드물게 포근했던 성탄절 새벽, 경찰 중대 병력과 형사기동대 대원들은 서울의 한 유서깊은 사찰을 철통같이 에워쌌다. 철도파업을 이끈 노조원들이 조계사에 피신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체포하러 온 것이다.

경찰이 조계사를 포위한 채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을 때,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 세계에 성탄 메시지를 전했다. "예수는 거대하지만 스스로 작아졌고, 부유하지만 스스로 가난해졌으며, 누구보다 강하지만 스스로 약해지셨다." 그리고는 예수의 탄생소식이 목동들에게 가장 먼저 전해졌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들은 당시 가장 낮고 소외된 계층이었다.

세상에서 천대받는 자들과 함께하다가 인류의 구원과 평화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이를 기념하는 날에, '시민의 파수꾼'은 '시민의 발'을 포위하고 있었다. 이들은 왜 휴일에 가족이나 친구, 동료와 웃음꽃을 피우는 대신, 뜻밖의 장소에서 서로 대치해야 했을까? 파업 주도자들은 성탄 하루조차 말미를 줄 수 없는 흉악한 범죄자들이었을까?

물론 정부는 그렇다고 말할 것이다. '불법 파업'을 지휘한 '범법자'들에는 관용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고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성탄 이틀 전 "원칙 없이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간다면 우리 경제 사회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로 '성탄 포위 작전'을 사실상 지시했다.

만일 철도파업 지휘가 그토록 끔찍한 범죄행위라면, 이들을 한시라도 빨리 체포하는 것이 대통령이 말하는 '원칙'에 부합하는 일일 터이다. 경찰이 성탄새벽부터 조계사에 몰려간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좀 이상하다. 왜 경찰은 당장 피신처에 들이닥쳐 범인을 끌어내지 않았을까? 20세기 중반에 지은 극락전 창호문이 민주노총의 강화유리문보다 강할 리 없고, 그곳에 커피믹스는 몰라도 일회용 한방차 정도는 충분히 있을 텐데 말이다.

조계종 측은 조계사에 피신한 노조원들을 '사회적 약자'로 규정하고 보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원칙 없이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가면 어떻게 한국의 미래를 기약할 수 있겠는가. 한시라도 빨리 노조원들을 잡아들이는 것은 물론, 대한민국 형법 151조에 의거, 범법자를 숨겨준 조계사까지 범죄은닉죄로 처벌할 일이다.

'합법파업' 비결이 알고싶다

추상같은 법집행과 더불어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또 있다. 틈만 나면 '불법파업'을 일삼는 자들에게 '합법파업'이 어떤 것인지 일러주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합법 파업' 비결을 모르는 것은 파업당사자들만이 아닌 것 같다.  

새누리당 조현룡 의원은 지난 23일 "근로조건이 아닌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 때문에 파업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같은 당의 김기현 정책위의장은 지난 20일 "국민이 이번 파업의 본질을 알면 분통을 터트릴 것"이라며 "철도노조는 이번 파업에서 호봉승급 포함 8.1%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심재철 최고위원 역시 지난 16일 이번 철도파업이 사실은 "임금을 올려달라는 파업"이라고 주장했다.

파업의 본질이 '근로조건'이라면 왜 '불법'이 되는 것일까? 철도노조의 '민영화 반대'는 근로조건과 무관한 요구일까? '민영화'로 대표되는 시장논리가 만성적 저임금과 고용불안정의 주범이라는 사실은 한국사회가 1997년 외환위기 이래 지속적으로 경험한 바다. 코레일 노조는 수서발KTX를 자회사로 만들어 분리하는 것이 민영화를 위한 사전단계로 보고 대책을 요구해 왔다.

정부와 사측은 '민영화와 무관한 경쟁력 강화 방안일뿐'이라고 말한다. 정부는 민영화 방지 입법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시간을 끌기 위한 꼼수'라며 거부하고, 대화요청에 대해서는 '이미 설득할 만큼 했다'며 공권력을 투입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지난 23일 "민영화 안 한다고 내가 세 번 말했다"며, "그런 말은 직을 건 얘기"라며 발언의 진정성을 강조했다.

정 총리의 답답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의 말에 설득되지 않은 것은 비단 노조원들만이 아닐 것이다. 그건 한국사회에 살아오면서 '자리를 걸고' 한 약속일수록 더 빨리 깨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만도, 과거 한나라당 집권 하에서 총리의 평균임기가 고작 1년 반이어서도 아니다. 시민들이 큰 경제적 부담 없이 움직일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은 한 개인이 총리를 하느냐 마느냐 따위의 문제보다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총리는 무려 세 번이나 '민영화 안 한다'고 말했기에 '설득할 만큼 했다'고 믿을지 모르나, 설득은 '안 한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게 아니다. 상대에게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 납득시키는 게 설득이다. 정부와 코레일 사측은 자회사를 설립해 분리하는 것이 왜 민영화가 아닌지, 그게 경쟁력 강화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설명해야 한다. 노조원들뿐 아니라 국민들에게도 말이다. '시민의 발'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는 시민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영리화'가 문제다

코레일 이사회가 '수서 고속철도 주식회사 설립 및 출자계획'을 의결한 10일 오전 서울 중구 코레일 서울사옥 기자실에서 최연혜 철도공사 사장이 수서발 KTX 법인 및 철도파업 관련 발표한 뒤 승강기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 최연혜 철도공사 사장 "민영화 논란 종지부" 코레일 이사회가 '수서 고속철도 주식회사 설립 및 출자계획'을 의결한 10일 오전 서울 중구 코레일 서울사옥 기자실에서 최연혜 철도공사 사장이 수서발 KTX 법인 및 철도파업 관련 발표한 뒤 승강기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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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발단은 이렇다. 수서발 KTX 사업 수서-평택간 공사는 2016년 완료돼 개통되고 이어서 완공되는 오성-목포간 공사도 현재 진행 중이다. 두 구간의 공사가 완료되면 막대한 수익이 보장되는 것이다. 코레일은 이 수서발 KTX를 별도의 주식회사로 분리해 지분의 59%를 매각할 계획을 세운다. 코레일은 기존의 용산발 KTX를 유지하며 수서발 운영회사와 경쟁시킴으로써 적자에 허덕이는 코레일의 경영정상화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점은 수서발 KTX의 분리다. 노조측은 이를 '민영화 사전작업'으로 간주하고, 사측은 '민영화와 무관한 경쟁체제 도입'이라고 말한다. 흥미로운 점은, 경쟁하게 된다는 두 회사가 수서-평택의 짧은 구간을 제외하고는 같은 노선(경부선과 오성-목포 구간)을 달리게 된다는 점이다. 이 계획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동일 노선에 둘 이상의 철도 사업자를 두는 것은 '경쟁'이 될 수 없을뿐 아니라, 대단히 위험하고 비효율적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모두 알다시피, 같은 철로를 달리는 기차들은 끊임없이 연락을 주고받아야 한다. 앞선 기차가 멈추거나 속도를 늦추면 뒤따라 오는 기차도 멈추거나 속도를 늦춰야 한다. 운영이 분리되면 철도회사 간 정보교환 오류 위험이 증가해 충돌사고의 위험이 높아진다. 게다가 시설의 중복투자로 비용자체가 증가해 승객부담도 늘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분 59%를 넘기더라도, 민간이 아닌 공적기금이나 지자체에만 팔 것이므로 민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민간에 팔든 공공기관에 넘기든, 공공서비스를 이윤추구의 불 속으로 던져 넣는다는 점은 다를 바 없다. 사람들이 민영화를 염려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민간이 사악한 존재여서가 아니라, 이익극대화를 위해 투자하는 경제주체이기 때문이다.

철도와 아무런 상관 없는 연기금 등의 공적기금이 무엇 때문에 코레일에 투자할까. 이윤을 얻기 위해서다. 현재 철도는 공익을 위해 운영하는 특수한 서비스이기 때문에 손해를 보면서도 요금을 함부로 올리지 않고, 적자노선조차 쉽게 없애지 않는다. 공공서비스가 적자로 운영된다고 함부로 비난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다르다. 이들은 공공기관이든, 민간이든 결코 손해보는 장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이 철도 운영에 개입하면 요금을 올리고, 적자노선을 폐지하고, 인력을 대폭 줄이고, 직원들 임금을 깎고, 하청업체를 통한 비정규직 고용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려 들 것이다. '민영화'라 부르든, '경쟁체제'라 부르든, 이윤추구로 인해 공공서비스가 황폐화된다는 점은 똑같다. 따라서 코레일의 자회사 설립은 '영리화,' 즉 넓은 의미의 민영화일 수밖에 없다.
최연혜 사장은 자신의 글에서 정부가 주식을 100%보유한 주식회사 형태를 '민영화'라고 불렀다.
 최연혜 사장은 자신의 글에서 정부가 주식을 100%보유한 주식회사 형태를 '민영화'라고 불렀다.
ⓒ 최연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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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파의 선두에 선 최연혜 코레일 사장조차 '민영화'를 '영리화'의 의미로 쓴다. 최연혜 사장은 자신의 사이트에 이와 관련한 기고문을 올려놓았다. 그는 독일의 연방철도개혁을 분석하면서, 정부가 주식을 100% 보유한 채 철도사업을 상하분리한 형태를 '민영화'라고 불렀다. 정부가 주식을 모두 보유한 주식회사도 민영화인데, 자회사로 분리해 주식 절반 이상을 팔아버리는 것이 어떻게 민영화가 아니란 말인가.

권위주의적 대통령,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지난 2012년 3월 30일 대전역 광장에서 열린 새누리당 합동유세에 참석한 박근혜 중앙선대위원장이 최연혜 후보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 2012년 3월 30일 대전역 광장에서 열린 새누리당 합동유세에 참석한 박근혜 중앙선대위원장이 최연혜 후보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경향신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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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정부측에 '철도민영화 금지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다. 장차 수서발 KTX 지분이 민간에게 팔리는 것을 방지하는 법적 방안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다. 나는 이 입장에 큰 우려를 갖고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투자자가 민간인지 공공기관인지는 중요치 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민간매각 방지가 아니라 '공공서비스의 영리화'를 막는 법적 장치다.

또 하나의 우려는 대화를 '타협'으로, 양보를 '패배'로 보는 박 대통령의 태도다. 70년대 권위주의 정부의 리더십을 체화한 그는 인내와 설득을 비효율적 낭비로 치부하곤 한다. 복고풍의 위계적 정부 하에서 오직 대통령 입만 바라보는 코레일 사장과 총리는 마치 분신처럼 '비타협'과 '무관용'을 되뇌며 문제를 키우고 있다.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본래 느리고 비효율적인 체제라는 사실이다. 최연혜 사장조차 앞의 기고문에서 독일연방철도의 구조개혁이 "실행기간만도 10년이 넘게 걸리는 장기계획"이었다고 썼다. 2016년에 겨우 수서-평택 구간의 공사만 완료되는 수서발 KTX를 지금 분리하지 못해 안달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심지어 정부는 종교계가 어렵게 마련한 대화의 판을 스스로 깼다. 26일 조계종이 중재해 코레일 노사 실무교섭 합의를 이끌어 내자 마자, 현오석 부총리가 불쑥 나서서 "투쟁에 밀려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협상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또 다시 대치국면을 만들었다(철도노조의 대화요청에 따라, 26일 코레일 사측과 철도노조가 교섭에 나섰지만 27일 오전 합의 도출에 실패해 교섭이 중단됐다. 이후 최연혜 코레일 사장은 노조원들에게 "27일 밤 12시까지 복귀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코레일 노조를 향해 '17조 적자' 책임을 져야 할 '철밥통'이라는 비난을 늘어놓음으로써 정부가 코레일 사태에 얼마나 무지한지를 입증했다. 다음 글에서 코레일 적자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자세히 밝히겠지만, 대화를 위해 애쓰는 사람이 '철밥통'이라면, 판을 깨면서 받는 월급은 무슨 밥통인지 궁금하다.

최소한 노조측은 자회사 설립이 민영화 사전작업이라고 믿는 이유를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정부 주장대로 적자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게 목적이라면, KTX '황금노선'을 자회사로 분리해 운영권을 넘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회사에서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하는 사업부를 떼 내어 지분 절반 이상을 팔아버리는 게 회사의 경쟁력에 어떤 도움을 준단 말인가?

아니나 다를까, 수서발 KTX를 자회사로 분리할 경우 경쟁력이 생기기는 커녕, 코레일에 연간 수천 억의 추가 적자가 난다는 보고서가 공개됐다.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다. 하나밖에 없는 수익원을 떼어낼 때 적자가 느는 것은 당연하다. 노조측의 주장이 아니라 코레일이 이사회에 제출한 내부보고서가 예측한 내용이다. 사측은 이제 와서 '재검증이 필요하다'며 변명하지만, 스스로 작성한 보고서까지도 부인하는 그들의 '진정성'을 어떻게 믿으라는 것일까?

인내심이 부족했는지, 설득할 근거가 부족했는지 모르나, 사측은 노조측의 대화 제의를 무시한 채 법인 출자를 결의하는 임시이사회를 지난 10일 열겠다고 통보했다. 노조가 지난 9일부터 파업에 들어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측이 파업을 자청한 것이나 다름 없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대화하고 설득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철도파업의 가장 큰 책임은 정부와 코레일 사용자측에 있다.


태그:#코레일, #한국철도공사, #철도노조, #민영화,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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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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