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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박미영씨는 딸 아이와 함께 TV 홈쇼핑 방송을 자주 본다. 최근 홈쇼핑 방송에서 강아지 판매가 시작된 것이다. 그녀는 아이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강아지를 사 주기로 약속했다. 아이와 방송을 보며 어떤 강아지를 구입할지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박미영씨는 원래 동물을 좋아하지 않았다. 강아지를 키우기로 한 건 몇 달 전부터 졸라대는 아이의 성화에 마지못해 내린 결정이었다. 그런데 쇼핑 호스트가 안고 있는 귀여운 강아지를 보며 조금씩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쇼핑 호스트가 "항상 꼬리치며 반겨주는 강아지가 사람보다 낫다"며 극찬하던 날에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개, 고양이를 주로 펫샵에서 구입했다. 그러나 펫샵에는 '강아지 공장(또는 퍼피밀)'에서 태어난 강아지가 많다고 한다. 강아지 공장은 종견과 모견을 쉼없이 교배시켜 강아지를 기계적으로 뽑아내는 집단 번식장이다. 그곳의 끔찍할 정도로 열악한 실태는 박미영씨도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다. 그런 환경에서 태어난 강아지는 어릴 때 병으로 죽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홈쇼핑 방송에서 판매되는 강아지는 전부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물론 환경의 실제 모습이 방송에 나오지는 않는다) 수의사의 검진까지 마쳤다고 한다. 보증기간이 지나기 전에 강아지가 병에 걸리거나 죽으면 100% 환불도 된다. 

원하는 품종과 성별을 선택하고 주문을 하면 사람이 집까지 강아지를 데려다 준다. 패키지 주문을 하면 용품을 따로 구입하는 수고까지 덜 수 있다. 모든 게 집에서 해결되니 정말 편리한 세상이다.

물론 위의 이야기는 가상현실이다. 동물을 판매하는 TV 홈쇼핑몰은 국내에 없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성장하는 반려동물 산업이 통신판매업과 결합한다면, 홈쇼핑 동물판매도 언젠가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에서 개가 방 안으로 들어오고 '반려동물'이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개를 방에서 키우는 것은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개, 고양이를 '도둑쫓기'나 '쥐잡이'가 아닌, '애완'이나 '반려'를 위해 키우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관련 산업도 급격히 팽창했다.

펫샵에서 원하는 품종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고, 개인이 동물을 사고 파는 온라인 상거래 사이트도 등장했다. 그러나 돈만 있으면 언제든 동물을 살 수 있는 '생명의 상품화'는 충분한 고민 없는 구매를 부추겼다. 준비 없는 구매는 버려지는 동물을 양산했고, 유기동물 문제는 사회 문제가 되었다.  
  
개, 고양이 판매에 뛰어든 대형마트

일부 대형마트에서는 직접 펫샵을 운영하면서 개, 고양이를 판매하고 있다. 대형마트 펫샵은 용품 판매는 물론이고 병원, 미용실, 애견 유치원, 호텔 서비스까지 갖춰 호응을 얻으며 전국적으로 매장을 늘리고 있다. 

여느 판매업과 마찬가지로 펫샵에서도 홍보는 필수다. 서울 충무로 애견타운의 펫샵들이 쇼윈도에 개, 고양이를 전시하는 것은 가장 보편적인 홍보 방식이다.

홍보가 이루어지는 건 대형마트 펫샵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 기존 펫샵과 차이가 있다. 대형마트를 이용하는 지역 거주민이 홍보의 주 대상층이라는 점이다.

동물을 혐오하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쇼핑을 하러 갔다가 강아지, 고양이를 구경하는 건 누구에게나 쏠쏠한 재미다. 동물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호기심을 느끼기 쉽다. 그런데 '견물생심'이라고 했다. 당장은 생각이 없어도, 판매용으로 전시된 동물에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자극을 받다 보면 언젠가 구매욕을 느끼기 쉽다.

게다가 대형마트는 상품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구매욕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다. 또한 할인, 묶음판매 등 온갖 상술이 동원되는 소비의 천국이다. 문제는 동물이 그곳에 전시된 여느 상품들과 달리 '쓰고 버리는 소비재'가 아닌 '신중과 책임을 요하는 생명'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대형마트 펫샵은 잠재적인 구매자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동물을 데려와서 지속적으로 홍보하는 공격적 마케팅을 구사하는 셈이다. 전시된 동물들은 대형마트 이용객들에게 "귀엽지 않냐"고, "나를 데려가 달라"고 유혹한다. 그런 부름에 넘어가 충분한 고민과 준비 없이 동물을 구입하지는 않을까 걱정한다면 지나친 걸까?

펫샵이 거주지에서 가까운 곳에 있지 않다면, 일부러 찾아가서 구경하지 않는 한 동물 홍보는 일회성에 그치기 쉽다. 그러나 지역 거주민들이 쇼핑을 위해 반복적으로 찾는 대형마트에서는 동물 홍보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공간에 '상품'으로 전시된 동물이 과연 충동구매로부터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 대형마트에 전시된 강아지 펫샵이 거주지에서 가까운 곳에 있지 않다면, 일부러 찾아가서 구경하지 않는 한 동물 홍보는 일회성에 그치기 쉽다. 그러나 지역 거주민들이 쇼핑을 위해 반복적으로 찾는 대형마트에서는 동물 홍보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공간에 '상품'으로 전시된 동물이 과연 충동구매로부터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 조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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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의 강아지는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관심의 대상이다.
▲ 대형마트에서 강아지를 구경하는 사람들 대형마트의 강아지는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관심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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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단체들은 대형마트 펫샵의 동물판매가 생명경시 문화를 조장할 위험이 특히 높다는 점을 지적해 왔다(관련 글 : 동물자유연대 의견서 생명경시 문화 조장하는 몰리스펫샵에 동물판매 중단을 요구한다). 이에 대해 대형마트 펫샵은 자사의 시설과 서비스가 선진 반려문화를 선도할 것이라고 응답했다(관련 글 : ㈜이마트 몰리스 펫샵의 공식 입장에 대한 동물자유연대 의견서).

오늘날 유기동물 문제는 건강한 반려문화의 성숙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동물보호단체가 따져 묻고 있는 "충동구매의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화려한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 않냐"고 응답하는 것은 동문서답으로 본질을 덮으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생명경시 부추기는 상행위, '입양캠페인'에 찬물

농림축산검역검사본부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버려지는 동물의 수는 2004년 4만5003두, 2005년 6만5533두, 2006년 6만5898두, 2007년 7만7337두, 2008년 7만7877두, 2009년 8만2658두, 2010년 10만899두로 증가해왔다. 동물자유연대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유기동물이 함께 증가하는 현상은 많은 사람들이 충분한 고민 없이 동물 양육을 결정하는 증거라고 말한다.

최근 미국의 샌디에이고, 로스앤젤레스 등지에서는 동물보호단체가 구조한 동물을 예외로 하고, 개, 고양이, 토끼를 전시하거나 판매하는 행위가 법으로 금지되고 있다. 동물의 대량 생산 및 소비가 유기동물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유기동물 입양을 촉진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대형마트 펫샵이 잘 팔리지 않는 품종을 50% 세일, 무이자 할부로 팔아치우려는 상술을 동원하여 '반생명적'이라는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심지어 생후 2개월 미만의 강아지를 판매하여 동물보호법을 위반한 사례까지 적발됐다.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라고 절박하게 외칠 정도로 우리 사회의 유기동물 문제는 심각하다. 아무리 한 편에서 유기동물 입양 캠페인을 벌여도, 다른 한 편에서 생명경시를 부추기는 상행위로 입양 캠페인에 찬물을 끼얹는 한, 선진 반려문화는 요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본을 등에 업고 화려한 시설과 서비스를 내세워 진화를 거듭하는 생명의 상품화, 이대로 괜찮은 걸까? 언젠가 TV 홈쇼핑 방송에서 개, 고양이를 보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태그:#대형마트 , #펫샵, #동물판매, #충동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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