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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기 위해 민주노총이 입주한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건물에 지난 22일 경찰이 투입된 가운데 집입작전 도중 파손한 유리문쪽에 경찰들이 방패를 들고 배치되어 있다.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기 위해 민주노총이 입주한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건물에 지난 22일 경찰이 투입된 가운데 집입작전 도중 파손한 유리문쪽에 경찰들이 방패를 들고 배치되어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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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시절입니다. 여러분 모두 안녕하신가요. 정말로 안녕하신가요?

12월 22일, 저는 이상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10명 남짓한 사람을 잡기 위해 5000명이나 되는 경찰이 건물을 에워쌌다는 소식을 말입니다. 수색 영장도 없이 현관문을 부수고 진입한 경찰이 건물을 샅샅이 뒤졌지만, 그들이 찾던 사람들은 없었다는 소식을 말입니다. 정당하게 항의하는 수십 명의 사람들을 연행한 데 대해서는 한 마디 사과조차 하지 않고, 피의 사실이 제대로 소명되지도 않은 이들을 체포하기 위해 1계급 특진이라는 포상까지 내걸고 경찰이 공권력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는 소식을 말입니다.

지금까지 철도파업이니 뭐니 어려운 이야기라고,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라고 팔짱만 끼고 있다가 뒤늦게 퍼뜩 정신이 들었습니다. 헌법이 보장하고 법적인 절차까지 밟은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공공 이익과 직결되는 사안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벌어지는 이 모든 일들…. 이것이 2013년 대한민국의 비루한 연말 풍경으로 끝날 것이 아님을, 무자비하게 자행되는 눈먼 폭력이 머지않아 내게도 닥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철도노조 파업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 정동 민주노총 앞에서 박근혜정권 퇴진, 철도민영화저지, 총파업투쟁 민주노총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 "철도민영화 안돼!" 지난 23일 오후 서울 정동 민주노총 앞에서 박근혜정권 퇴진, 철도민영화저지, 총파업투쟁 민주노총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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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한민국의 대학생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고, 그래서 배움에 정진해야 할 학생이 세상일을 놓고 함부로 왈가왈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 말은 백번 옳습니다. 그리해서 저는 함부로 설익은 이야기를 꺼내놓는 일을 경계하고, 학생의 본분을 다하고자 지금 우리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옳은 일인지 아닌지 찾아보고 또 찾아봤습니다.

지난 22일 경찰이 일으킨 민주노총 사무실 불법수색 이슈의 중심에는 철도노조 파업이 있었습니다. 내부 경쟁을 통해 경영혁신을 이루겠다는 핑계로 새로운 자회사 설립을 추진하는 코레일의 방침, 즉 사실상의 민영화에 반대하고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노조 측의 파업 명분이었습니다.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진행된 파업이었음에도 코레일 측은 자회사설립에 관한 것이 노동조건과는 무관한 정치적인 사안이라고 우기면서 업무방해 혐의로 노조를 고발했습니다. 곧바로 수천 명의 직원이 사실상 해고의 준비단계라고 할 수 있는 직위해제를 당했습니다. 노조 지도부에 대한 체포영장도 번개같이 떨어졌습니다.

자회사 설립이 사실상 민영화 수순이라는 노조 측 주장에 코레일과 정부는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 사안을 놓고 파업을 벌이는 것은 노동조건 개선과는 무관하므로 불법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요?

코레일 경영진과 정부는 경쟁체제 도입이 코레일 전체에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말하지만, 새로 설립되는 자회사가 기존 노선에 막대한 손해를 끼칠 것이라는 코레일 내부 문건이 있었습니다. 설립되는 자회사는 민간자본 개입 없이 코레일과 공공투자로만 이뤄질 것이고, 정관에 의해 지분이 외부로 매각될 일이 없다고 하지만 이와 같은 지분 매각·양도 제한은 상법에 위배됩니다.

의도만 있다면, 언제든 정관을 고쳐 지분을 매각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또 철도 시설사업에 외국기업 진출을 허용하는 조달협정 개정안이 재가되면서 사실상 외국 기업이 시설투자를 하고 그에 대한 소유권과 이용료를 주장할 수 있는 길도 열렸습니다.

새로 설립되는 코레일의 자회사가 설비의 많은 부분을 민간에 위탁하고 고용 역시 파견 등 간접고용과 비정규직으로 해결함으로써 겉보기에만 경영개선 수익개선을 이룬다면, 그리하여 사실상 민영화한 형태로 서비스의 공공성은 약화시키고 언제든 상업화할 태세를 갖춘다면, 마침내는 점차적으로 기존 코레일 노선의 수익을 잠식해나감으로써 그와 같은 체제의 도입을 전체 철도 노선에 확대도입하게 된다면…. 일련의 조치들이 민영화가 아니었다고 어찌 말할 수 있을까요.

이로 인해 요금이 인상되고, 멀쩡한 일자리가 질 나쁜 일자리로 바뀌고, 수익이 나더라도 그것이 계속해서 국외로 유출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철도 노동자에게 또 국민에게 전가됩니다. 이것이 어떻게 '정치적이기만' 한 사안인가요? 노동조건이 악화될 것을 걱정하는 노동자들의 우려가 어떻게 해서 불법이라는 말입니까?

왜 노동자·국민이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하나요

민주노총 경남본부와 경남비상시국회의는 지난 20일 저녁 창원 정우상가 앞에서 '간병·요양보호사 근로조건 개선, 진주의료원 재개원, 철도노조 파업 승리를 위한 노동자 결의대회'와 '민주주의 수호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사진은 한 참가자가 '의료·철도 민영화 반대' 손피켓을 들어 보이는 모습.
 민주노총 경남본부와 경남비상시국회의는 지난 20일 저녁 창원 정우상가 앞에서 '간병·요양보호사 근로조건 개선, 진주의료원 재개원, 철도노조 파업 승리를 위한 노동자 결의대회'와 '민주주의 수호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사진은 한 참가자가 '의료·철도 민영화 반대' 손피켓을 들어 보이는 모습.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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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과 서비스는 세계최고 수준, 거기에 꾸준히 흑자를 냄으로써 정부와 국민 모두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인천공항공사의 민낯이 바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6000명이 넘는 직원 열 명 중 여덟, 아홉이 비정규직이고, 거기서 나온 수입이 국민에게 혜택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 것이 뻔히 보이는 토건사업에 다시 투입돼 거기서 비롯된 막대한 부채를 막고자 다시 구조조정과 사실상의 민영화를 추진하는 악순환. 경영혁신과 같은 번지르르한 핑계를 내세워 결국 정부는 자신들의 책임을 은폐하는 행태는 이미 오랫동안 우리가 봐왔던 일입니다.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회사 설립과 경영혁신이 불가피하다고 코레일과 정부는 말하고 있지만, 그 막대한 부채는 어디서 온 것이었나요? 잘못된 수요예측으로 신규노선 설립 계획을 남발하고, 용산개발과 같은 무리한 사업에 돈을 처박게끔 결정한 것은 코레일 경영진의 책임이 아니었습니까? 주먹구구식 계획으로 고속철도 사업에 투여되는 비용을 엄청나게 늘린 것은 행정부가 아니었습니까?

아무도 그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그로부터 비롯된 막대한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자들과 국민에게 양보를 강요하는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제대로 된 대화를 시도하기는커녕,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오랫동안 묵묵히 일해오다 이제서야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향해 철밥통 싸움이라고 비난만 하는 것은 과연 올바른 일인가요?(관련기사 : 철도노조 파업 왜 하나 했더니, 이거였군요)

지난 23일 박근혜 대통령은 원칙을 강조하며 경찰의 강경대응과 코레일 그리고 정부의 입장을 편들어주는 발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한 국가의 진정한 수장이라면 이 모든 사태가 어디서부터 비롯됐는지 그 책임을 명확히 밝혀야 합니다. 이전 정권들과 현재의 상황 모두에 대해서 기꺼이 정부가 해결할 것을 약속해야 합니다.

모든 책임을 파업 노동자들과 '불순한' 시민들의 개입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노사 양측을 다시 협의의 자리로 이끌어내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노조 측의 올바른 문제제기와 권리 주장에 대해 사측은 물론 대통령과 행정부 스스로가 귀 기울이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국민통합이고 화합과 소통의 정치가 아니겠습니까.

물론 이런 기대가 매우 헛된 것일 가능성이 더 크겠지요. 경찰은 눈에 불을 켜고 사라진 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기 위해 더욱 발버둥 칠 것이고, 재계와 보수 언론은 노조의 불법파업이 야기하는 손해와 그들의 위험성을 선전하느라 입에 침이 마를 테지요.

원칙을 강조한 대통령 본인은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다시 입을 다문 채 긴 침묵을 지킬 것이고, 스스로 '애국'한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또 저마다의 자리에서 파업하는 이들은 모두 빨갱이들이고 그에 동조하는 우리들은 선동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겠지요. 그리하여 일방통행과 소통 없는 정치 속에서 국민통합은 물 건너가고 조장된 분열만이 남을 뿐이겠지요.

평택에서 그리고 밀양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합니다

밀양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유한숙 할아버지가 생전에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며 농성을 벌이던 경남 밀양 도곡저수지 인근의 움막에서 한 할매가 경찰의 통행을 막기 위해 바닥에 누워 손으로 햇빛을 가리고 있다.
▲ "절대 못 지나간다" 밀양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유한숙 할아버지가 생전에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며 농성을 벌이던 경남 밀양 도곡저수지 인근의 움막에서 한 할매가 경찰의 통행을 막기 위해 바닥에 누워 손으로 햇빛을 가리고 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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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저는 이 모든 일들을 이미 언론을 통해, 또 주변에서 이야기하는 많은 이들을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모른 척 했을 뿐이지요. 많은 일들이 이미 지난 시간 동안 일어났고, 해결되지 않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고 있으며, 책임자들은 입을 다문 채 시간만 끌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테러리스트에 준하는 진압을 당한 쌍용차 사태의 피해자들이 어렵게 타결된 합의를 지키지 않고 복직을 거부하는 사측과 정부에 항의하는 집회가 오랫동안 대한문 앞에서 열렸습니다. 쌍용차가 엉망이 된 것도 결국 정부와 기업의 책임이었지만, 한순간에 거리로 나앉게 된 것은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생계와 대책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격화된 파업에 대해 정부는 경찰특공대로 대응했습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 앞에서 여전히 많은 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습니다. 수차례 철거 위협에 시달리다 겨우 집회가 합법이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음에도 분향소는 결국 평택으로 옮겨졌습니다.

밀양에서는 주거권과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아니 단지 자기가 살아온 곳에서 계속 살 수 있는 당연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힘든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주민 측 대책위에서 송전선로 건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지중화라는 명백한 대안을 내놓았음에도 정부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조금의 양보도 하지 않겠다는, 밀어붙이기식 행태는 소통과 불통의 끝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결국 한 할아버지께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습니다. 도시로 가는 송전선을 세우기 위해 인근 소도시의 환경과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권리는 보호받지 못하는 사실, 아니 그 이전에 모든 핵발전소가 사용처인 도시가 아니라 그보다 떨어진 농어촌 소도시에 세워진다는 사실의 부당함을 무시한 채 정부는 침묵과 공사 강행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철도노조 파업은 갑자기 튀어나온 일이 아니었습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심지어 과거에 비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나아졌다고 하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책임져야 할 이들은 뒤로 숨고 많은 국민들 개개인이 야만적인 공권력에 맞서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민영화가 아니라는 기만적인 말을 앞세워 자신들의 책임은 숨기기 급급하면서 국가기간산업의 공공성을 약화시키고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 불과 10명 남짓한 이들을 체포하기 위해 병력 수천 명을 동원하고 수색영장도 없이 공권력이 건물 현관문을 부수고 난입하는 일까지, 모든 일은 쌍용차 사태와 밀양 송전선로 건설 강행을 비롯해 대화와 소통 없이 정권이 공권력을 남용한 일련의 사건들의 연장선상에 있을 뿐입니다.

이제 거리에서, 시대의 절규에 응답하겠습니다

저는 학생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공부밖에 없고, 잘해봤자 이렇게 배운 것을 나누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일이지요. 그러나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 또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바로 거리로 나가는 일입니다. 오는 토요일인 12월 28일에 이 모든 일들에 응답할 것을 요구하는 자리, '100만 시민행동의 날' 집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것이 당장의 결과를 내지 못한다 할지라도, 지금 필요한 일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알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그러나 이제는 할 수 있고 마땅히 하려는 일이라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무엇이 어떻게 돼도 좋습니다. 저는 거리로 나가겠습니다. 그리고 함께 거리에 선 다른 이들과 그곳에서 가능한 힘을 다해 외치려고 합니다. 화합을 말하면서 분열을 조장하고, 자신들의 책임을 숨기고자 이해당사자인 국민과 노동자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국가의 안녕을 해치면서 국민의 안녕을 생각한다는 거짓말을 일삼는 이들을 거부하겠다고 말입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이 2013년 연말의 비루한 풍경으로 그치지 않고, 새로운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12월 25일, 성탄절입니다. 가장 높으신 분이 사람의 아들이 돼 가장 고통받고 약한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온 날입니다. 지금 저 구중궁궐 안에서 몇 마디 말로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높으신 분들이 이 거리에 내려오기를 감히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애와 사랑을 설파한 것처럼 안녕하지 못한 이들이 추운 날씨에, 그리고 날씨보다 더 추운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우애와 사랑 그리고 정의에 대한 확신을 나누며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시대의 요구에 응답할 수 있음을 12월 28일 확인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거리에서 뵙겠습니다. 부디 안녕하시길 빕니다.


태그:#철도파업, #안녕들하십니까, #응답하라, #성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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