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이비> 스틸컷.

영화 <사이비> 스틸컷. ⓒ 스튜디오 다다쇼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사진/유성호 기자| 척박한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연상호 감독의 존재는 그만큼 독보적이다. 꾸준히 자신의 길을 걸으며 그림과 이야기로 인정받고 있는 모습에 많은 지망생들이 희망을 걸고 있기도 하다.

그의 두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사이비>가 개봉한 이후 조금 시일이 지나 그를 만났다. <돼지의 왕>(2011)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회자되며 칸국제영화제 등 여러 행사에 초청을 받기도 했다면, <사이비> 역시 비슷한 길을 준비 중이었다. 물론 새로운 도전도 있었다. <사이비>는 현재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진출을 위한 최종 후보 요건을 충족한 상태로, 2014년 1월 발표되는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해외 평단에서는 <돼지의 왕>을 보지 않은 이들도 연신 <사이비>에 대한 호평을 하며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지만, 내심 연상호 감독은 국내에서 보다 더 좋은 성과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최종 누적 관객 수 1만 9305명을 기록했던 <돼지의 왕>과 비교하면 <사이비>는 이미 2만 관객을 넘어 나쁜 성적이라 할 수는 없다. 그래도 더 큰 관심이 아쉬운 대목이긴 하다.

"애초에 상영관 개수를 잡을 때부터 문제일 수도 있고, 흥행에는 여러 요인이 있으니까요. 작품이 문제일 수도 있고요. 처음에 75개의 상영관으로 시작했는데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잉투기>가 90개로 출발했죠. 비슷한 사이즈의 독립영화보다는 잘 된 편이니, 나름 (애니메이션도) 승산이 있는 거 아닌가요? 그래도 여전히 배급사를 설득하고 상영관을 얻는 과정이 힘드네요."

 애니메이션 <사이비>의 연상호 감독이 11일 오후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사이비>의 연상호 감독이 11일 오후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영화 산업이 고착화 된 부분이 있는데 어느 순간 깨질 때가 올 거라고 생각한다"며 "꾸준히 작품을 만들어 한국 애니메이션 판도를 바꾸고 싶은 목표가 있다"고 말했다. ⓒ 유성호


실사 영화로 기획했던 <사이비>, "잘하는 걸로 승부하고 싶었다"


수몰 예정지로 지정된 한 마을에 들어선 사이비 종교. 탐욕을 지닌 이들이 서로를 겨누는 잔혹극이라는 설정이 곧 <사이비>의 핵심이다. 선한 사람의 거짓말과 나쁜 사람의 진실. 연상호 감독이 쥐고 있었던 물음이었다. 결과적으로 <돼지의 왕>에 이어 이 작품 역시 진중하고 다소 어두운 분위기가 됐다.

"아시다시피 <사이비>는 실사 영화로 기획한 작품이지만 <돼지의 왕>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것 역시 애니메이션으로 가게 됐어요. 실사는 투자받는 것도 문제였죠. 그리고 밝은 작품을 할 생각 없냐고 종종 묻는 분이 있는데 쉽지는 않은 거 같아요. 두려움도 있고요. 작품 흥행이야 원래 못했기에 그런 부담은 없지만 영화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작품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잖아요. 언젠가는 스토리가 탄탄한 밝은 작품을 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일단 잘 할 수 있는 걸 해야죠(웃음)."

사실 탄탄한 스토리텔링은 연상호 감독의 강점 중 하나다. <사이비> 역시 말하고자 하는 게 뚜렷했기에 오히려 기독교 등의 단체에서의 압박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종교는 이미지만 빌려오고 그 안에서 인간 군상을 극명하게 대비시키며 이야기를 풀어갔다. 여기엔 목소리 연기로 참여한 배우들의 공이 컸다. 연상호 감독은 함께한 연기자들에게 내심 감사의 말을 전했다.

"양익준 감독은 워낙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라 민철이라는 캐릭터에 적용하면 특이할 거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오정세씨는 제 전작인 <사랑은 단백질>에서 경험했는데 튀지 않는 캐릭터의 결을 많이 살려주셨거든요. 이번에도 함께 해서 좋았죠. 희본씨 역시 <돼지의 왕>으로 처음 만났는데 명랑한 성격과 달리 어두운 캐릭터도 잘해낼 거라는 생각이었죠. 김재록 선배, 이수현씨 등 <돼지의 왕> 때 출연한 분들이 이번에도 참여했고, 너무 잘해주셨어요."

"나의 작업 스타일, 우리나라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길"

 애니메이션 <사이비>의 연상호 감독이 11일 오후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사이비>의 연상호 감독은 "한국 애니메이션 사업이 어떡하면 보편적 장르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며 "투자사나 배급사도 함께 도와주셔야 할 부분이다"고 말했다. ⓒ 유성호


<사이비>도 그랬지만, 연상호 감독은 애니메이션 작업에 대한 동기와 의식이 뚜렷하다. 나름의 사명감으로 볼 수도 있겠다. 앞서 실사 영화를 잠깐 언급하긴 했지만 연상호 감독은 "이런 장르의 애니메이션을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라도, 더 정진해야 할 거 같다"며 소신을 드러냈다.

"우리 회사의 스태프들, 가족들이 작업에 대한 동력이죠. 그리고 영화 산업이 고착화 된 부분이 있는데 어느 순간 그게 깨질 때가 올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애니메이션을 쭉 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냉정하게 보면 아직 연상호라는 감독의 가능성 외엔 보여준 게 별로 없기도 하고요.

중학교 때부터 애니메이션 감독을 꿈꿨고, 원래 하고 싶었던 분야였어요.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며 학창시절을 보냈고, 한국의 미야자키 하야오가 되겠다는 각오도 했죠. 물론 중간에 잠깐 딴(그래픽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대학교 전공 역시 엉뚱한 걸 했지만 애니메이션만 생각했어요. 대학 때 단편을 여러 개 했는데 돌이켜서 다시 보기는 싫네요(웃음). <지옥>(2002)을 발표하기 전까진 모든 게 수준 이하였는데 그 이후에 모든 게 업그레이드되더라고요."

예전엔 작업 자체에 대한 열망이었다면 그의 꿈은 더 커졌다. 물론 여전히 애니메이션 작업은 열심히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연상호 감독은 보다 앞선 시점을 바라보고 있었다. 할리우드의 디즈니(픽사)나 드림웍스, 블루스카이 등의 모습을 그의 비전에서 엿볼 수 있을까.

"우리 스태프들과 재밌게 오래 할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그들과 얘기하다보면 책임감도 생깁니다. 제가 하는 작업 스타일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어요. 애니메이션을 한다고 하면 한국에서는 '뽀로로' 같은 아동적인 걸 떠올리기 십상인데, 사실상 그게 전부는 아니거든요. 주위를 보면 198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 황금기를 곁눈질 하며 살아온 이들이 많아요. 한국 애니메이션에는 한 번도 그런 시대가 없었잖아요. 어떡하면 보편적 장르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투자사나 배급사도 함께 도와주셔야 할 부분이기도 하죠.

실사 영화로 400만 관객 이상을 모으는 감독님들이 꽤 있지만 그런 분들 역시 그 이후가 보장되거나 그렇진 않잖아요. 영화 산업의 한 부분, 잘못된 부분을 컨트롤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작품 흥행이 시스템을 수정해 주진 않죠. 사실 <사이비>가 그런 의미에서 더 잘 됐으면 하는데 아직은 보편적 장르로 가는 단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차기작 <서울역> 구상 끝내..."좀비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연상호 감독은 생각보다 넓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여러 웹툰 작가, 플래시 애니메이션 작가 등을 만나며 꾸준한 교류를 하고 있는 것. 강풀 작가를 비롯해 현재 각개 약진하고 있는 애니메이션계 분위기에서 연상호 감독은 "지금은 서로 만나 술 먹고 위로하는 분위기지만 일정 부분이 지나면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속생각을 밝혔다. 연상호 감독은 "결국 그때까지 버티는지의 문제"라며 지구력을 강조했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줄곧 지적받던 문제가 시나리오였잖아요. 근데 이젠 그 얘기가 끊어졌어요. <소중한 날의 꿈> <마당을 나온 암탉> 등이 나오면서 우리도 스토리텔링이 된다는 걸 증명한 거죠. 몇십년 동안 이어지던 수식어를 끊어냈는데 조금만 더 하면 되지 않을까요? 관객들은 분명히 기대하고, 지켜보고 있을 겁니다." 

그가 계속 작업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는 건 우리에겐 다행스러운 일이다. 연상호 감독은 이미 차기 장편 애니메이션인 <서울역> 구상을 끝냈고, 현재 콘티 작업 중이다. 노숙자 가출 청소년을 중심으로 하룻밤 동안 사건이 일어난다는 설정이다. 좀비가 등장한다는데 뭔가 또 다른 새로움을 가미했단다. 그것과 함께 비극장용 콘텐츠도 준비 중이란다. 새로운 플랫폼을 고민하며 도전하는 연상호 감독을 더욱 기대해도 좋겠다.

연상호 사이비 돼지의 왕 서울역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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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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