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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 참석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교부받은 당선증을 들어보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 참석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교부받은 당선증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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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겠다. 나는 대한민국 0.05%에 속하는 사람이다. 돈을 잘 벌어서 0.05%에 속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내가 찍은 후보의 최종 득표율이 0.05%이다. 어쨌든 대한민국 0.05%에 속한다고 한 것은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정규분포의 왼쪽 끝자락에 보일듯 말듯 가늘게 이어지는 곳에 위치한 정치성향을 가지고 있다 보니, 그동안 수많은 선거에 참여하면서도 내가 찍은 후보가 1등은 고사하고 2등조차 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선거란 다수파의 축제다. 대한민국 0.05%인 극소수파 소속 필자에게 어떻게 보면 선거만큼 바보 같은 행위도 없다. 다수결로 정하면 다수파가 이기는 것이 자명하지 않은가. 그 선거에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 참여하는 나도 참 바보다.

어쨌든! 2013년에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고 만만치 않은 한 해가 되리라 예상했다. 역시 박근혜 정부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우선 본인이 선거운동기간 동안 국민에게 약속한 그 수많은 복지공약부터 다 내팽개치기 시작했다. 대단하다. 저렇게 대통령 선거에서 내세운 약속을 하나도 안 지킬 거라면 나도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나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공약도 생각해뒀다.

모든 국민들의 통장에 100억 원씩 꽂아드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100억 원 준다는데 누가 나를 안 찍겠는가. 당선되면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 거냐고? 하하하. 그걸 왜 걱정하나. 당선되고 보니 재원이 없다고 선언하면 그만 아닌가. 아참! 그런데 문제가 있다. 국가정보원과 사이버사령부가 선거운동 기간에 트위터와 댓글로 정규분포 왼쪽 끝자락에 있는 나를 지원사격해줄 것 같지가 않다. 제길! 결정적인 곳에서 문제가 생기는구나.

2012년 대통령 선거에 국가정보원과 국군 사이버사령부가 깊숙하게, 그것도 뼛속까지 깊숙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연이어 제기되다보니 당연히 국민들의 민심이 좋을 수가 없다. 막말로 의혹이 사실이라면 부정선거로 대통령 된 것 아닌가. 항상 이런 위기의 순간에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하는 것이 바로 공안사건이다. 그런데 그동안 워낙 많이 써먹다보니 예전처럼 국가보안법 정도로 걸어서는 충격이 약하다고 생각했는지, 이번에는 내란음모인지 예비음모인지 하는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죄목을 들먹인다.

대상은 나름 정규분포 왼쪽 끝자락에 위치한 소수파 통합진보당. 힘없는 게 죄지. 이석기 의원을 포함한 통합진보당 일부 사람들이 어디서 모여 가지고서는 뭐 무시무시하고 컴컴한 얘기들을 했다는 것 같은데, 언론보도를 보니 무슨 말을 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구체적인 물증이 없다는 것 같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터트린 바로 소위 내란예비음모라는 공안사건의 파편이 엉뚱하게 통합진보당 당원도 아닌 나에게 튀었다.

나를 신고한 대학생, 누군지 알면 밥이라도 사줄 텐데

내란음모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 7명에 대한 6차 공판이 열린 11월 21일 오후 경기도 수원 영통구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 수감 중인 가족들이 모여 검찰이 프락치 공작을 펼치고 있다며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 내란음모 구속자 가족 "내란음모 조작이다" 내란음모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 7명에 대한 6차 공판이 열린 11월 21일 오후 경기도 수원 영통구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 수감 중인 가족들이 모여 검찰이 프락치 공작을 펼치고 있다며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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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6일 내가 강의하고 있는 경희대학교의 1학년 학생이 국가정보원에 나를 신고했다. 경희대학교에서 '자본주의 똑바로 알기'라는 2학점짜리 교양수업을 가르치고 있는데, 9월 6일은 그 수업 2학기 강의 첫 날이었다. '자본주의 똑바로 알기'는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변증법적 유물론 및 역사 유물론을 쉽게 가르치는 강의다.

신고를 한 학생은 내 강의를 들어본 적도 없는 것 같았다. 전해들은 얘기로는 나를 국가정보원에 신고한 이유가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반미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게다.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반미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신고를 하는 것도 소위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신고한 학생이 제시한 근거들이 더 어이가 없었다.

우선 내가 쓴 책들을 근거로 들었다고 한다. 무슨 책을 썼냐고?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청춘에게 딴짓을 권한다> <세상을 바꾼 예술 작품들> <국가의 거짓말> <다극화 체제, 미국 이후의 세계> 등이다. 아! 맞다. 2011년 말에는 팍팍한 생계해결을 위해 <글쓰기 클리닉>이란 책도 썼다. 참 이런 책 썼다고 국가정보원에 신고당하면 기분 더럽다.

또 다른 근거도 제시했다고 한다. 내가 예전에 민주노동당의 간부였다는 사실 말이다. 신고자는 이석기 의원의 구속사건을 언급하며 민주노동당이 현재 내란예비음모로 한창 시끄러운 통합진보당의 전신이고 임승수라는 사람은 민주노동당의 간부였다는 게다. 맞다. 나는 2006년에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에서 교육부장을 했다. 하지만 이후 민주노동당이 참여당과 합당해서 통합진보당으로 바뀔 때 그에 반대하여 탈당한 이후 당적이 없는 상태다.

박근혜 정부는 소위 내란예비음모라는 무시무시한 죄목으로 통합진보당을 별다른 물증도 없이 소위 녹취록만으로 구속했다. 국가기관이 나서서 구체적인 물증 없이 '말'과 '글'만을 이유로 사람을 체포하고 구속하는 현 상황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가능하게 만든다.

'저 사람은 저런 책을 쓰고 저런 말을 하니 내가 신고해서 체포하고 구속시켜야겠구나.'

나를 신고한 1학년 학생이 신고 사실을 경희대학교 관련 기관에 메일로 떳떳하게 알리기까지 한 데에는 바로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국가기관인 국가정보원도 '말'과 '글'만을 이유로 사람을 체포하는데, 국민들도 당연히 '말'과 '글'을 이유로 신고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겠나.

당시 답답하고 황망한 마음에 <오마이뉴스>에 이 사건에 관한 내용을 기사로 써서 기고했는데 이 기사가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에서 회자됐던 모양이다(관련기사 : 나를 국정원에 신고했답니다). 글을 본 <경향신문> 기자의 취재요청이 들어와 응했는데, 세상에나! 다음 날 내 얘기가 1면 톱기사로 나간 것이다. 게다가 3면에는 내 인터뷰가 따로 박스기사로 실리고 말이다.

그동안 여러 권의 사회과학 책을 썼지만 1면은커녕 문화면 귀퉁이에 작게 나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배꼽 떨어지고 처음으로 신문 1면에 이름이 실렸다. 역시 정규분포의 왼쪽 끝자락에 위치한 사람들은 이런 사건사고가 있어야 인지도가 올라가나보다. 덕분에 인터넷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에 기사가 실리는 호사(?)도 누리고 수많은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신고당해서 인지도가 올라간 덕분인지 최근에는 <경향신문>이 선정한 '뉴 파워라이터 2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을지문덕의 시 한 수

22일 민주노총에 진입한 경찰병력이 회의실 문을 망치로 부수고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기 위해 수색하고 있다.
 22일 민주노총에 진입한 경찰병력이 회의실 문을 망치로 부수고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기 위해 수색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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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미있는 것이, 국가정보원에 신고당했다고 기사가 났는데 오히려 내 책의 판매량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특히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은 원래 꾸준히 잘 나가는 책이긴 한데 이 사건 이후로 평소보다도 2배 이상 판매량이 늘어났다. 주변에 책이 더 잘 팔린다고 얘기했더니, 혹시 노이즈마케팅 효과를 노린 셀프신고 아니냐며 웃는다.

어떤 사람은 신고한 1학년 학생에게 밥이라도 사주라고 한다. 안타깝다. 누구인지 알아야 사줄 것 아닌가. 게다가 '자본주의 똑바로 알기' 수업은 학생들이 뽑은 배움학점제 최고의 수업에 선정됐다. 국가정보원에 신고당했다고 강사가 만날 징징대니 학생들이 측은지심에 뽑아줬을 테지만, 어쨌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여간 뿌듯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인생지사 새옹지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1년을 돌이켜 보면, 1학년 학생한테 국가정보원에 신고당했다가 오히려 책 판매 늘어나고 신문 1면에 기사로 이름이 나가서 인지도도 올라갔다. 덕분인지 내 수업을 들은 학생들의 강의 평가도 무척 좋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 2년째가 기다려지지는 않다. 아무리 책이 많이 팔리고 신문에 나서 인지도가 올라가더라도 역시 학생이 강사의 말과 글을 이유로 국가정보원에 신고하는 세상에서는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최악의 사회 아닌가.

철도노조는 사실상 민영화 수순이라는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에 반대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예전과는 다르게 파업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상당하다. 한 고려대학교 학생이 박근혜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며 쓴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사회 곳곳으로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에서는 '원칙을 지키는 불통은 자랑스러운 불통'이라며 불통 나르시시즘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인가?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50% 밑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神策究天文 묘한 책략 하늘 이치 궁구하였고
妙算窮地理 묘한 계획 땅의 이치 통달하였네.
戰勝功旣高 싸움 이겨 공이 이미 높아졌으니
知足願云止 족함 알고 돌아가길 내 원하노라.

고구려의 을지문덕이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보낸 시다. 우중문은 이 시를 읽고도 족함을 모르고 고구려에게 함부로 덤볐다가 살수대첩에서 30만 대군이 몰살당했다. 묘한 책략(공약 말바꾸기)와 묘한 계획(국정원 댓글)으로 싸움(대선)에 이겨 공이 높아졌으니(대통령이 됐으니) 족함을 알고 돌아가기를 원한다.

정당한 파업을 하고 있는 철도노조 지도부를 불법 운운하며 무리하게 체포하려다 벌써 민주노총에게 제대로 개망신 당하지 않았는가. 민주노총 사무실이 박근혜 정권의 살수(薩水)가 되지 말란 법이 있겠나. 나르시시즘에 빠져 불통을 자랑으로 삼고 계속 국민의 뜻에 반하는 일을 벌이고 있는 위태로운 박근혜 정부에게 을지문덕의 시를 권한다. 국민을 이기는 정권은 그 어디에도 없다.


태그:#박근혜, #국가정보원, #임승수, #을지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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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피아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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