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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는 똑부러지게 말을 잘 했습니다. 지난해 언젠가였습니다. 교내 정기고사를 본 뒤 정답 처리 문제로 대화를 나누게 됐습니다. 제자는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정답을 적어 냈습니다. 서술형 답안에서였습니다. 제자의 설명은 논리가 바르고 차분했습니다. 굳어진 제 머리는 놓쳤지만 정답으로 처리하는 데 전혀 문제될 게 없었습니다. 그 제자 덕분에 다른 수 명의 제자들이 점수를 '덤으로' 얻었습니다.

지난 18일 오후였습니다. <오마이뉴스> '내방'에 쪽지 두 개가 배달됐습니다. '보낸이'에 옛 제자 이름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전부터 제자가 <오마이뉴스>에 제가 써올리는 글의 독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제자의 이름을 보자마자 기사에 대한 날카로운 품평 글이겠구나 여긴 이유입니다. 지난해 기억도 떠오르면서 살짝 긴장(?)이 됐습니다.

쪽지를 열어봤습니다. 쪽지 두 개에 있는 글을 합해 보니 모두 45행이나 됐습니다. 200자 원고지로 10장이나 되는 분량입니다. 제자는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았을까요.

제자가 보낸 쪽지
 제자가 보낸 쪽지
ⓒ 정은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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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즘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 눈물이 납니다. 세상이 어지러운 지금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펴고 세상 사람들에게 바로 볼 수 있는 눈이 되어 주고 있는 그들입니다. '민주화'를 은어로 사용하고 조롱거리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권력을 가진 이들의 횡포에 그들이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제자는 마틴 루터 킹(1929~1968) 목사가 한 '선한 사람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 최대 비극'이라는 말을 인용했습니다. 나라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에서 대자보를 써서 붙이면 '철거에 철거, 교장선생님과의 면담이 기다'리는 학교의 현실을 안타깝게 적어놨습니다.

삼 일 전쯤 서울에 사는 친구와 통화를 하다 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평소 정치나 사회 상황에 관심을 두지 않던 친구가 대자보에 대한 얘기를 꺼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저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 친구의 말을 들으며 괜스레 눈물이 났습니다. 마치 자보에 글을 적은 그들이 미래를 비추는 호롱불과 같이 느껴졌다고 할까요. 언론이 막아 놓고 보지 못하게 하려 안간힘을 쓴 '그' 내용들을 알리려 자신을 태우며 앞길을 비추는…. 친구는 제가 울자 함께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새벽 3시가 다 되도록 우리는 이야기를 멈출 수 없었습니다.

제자의 글에서 '눈물'이라는 단어를 두 번이나 만나면서 마음이 울컥해졌습니다. 그 울컥한 마음은 지금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대자보 사태'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면서 참담한 부끄러움과 분노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펴고 비난을 받거나 '떼어지지 않을' 게시판은 없을까요? 찾아보니 비단 우리 학교만이 아니더군요. 경남에서는 한 여고생이 대자보를 붙인 것을 보고 교육청에서 '교육기본법에 보면 학생은 정치적·종교적 중립 의무가 있고, 다른 학교나 학생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해당 학교에 경위를 파악해서 잘 타일러라고 한 것'이라고 말을 했다 합니다.

제자는 곧 특유의 날카로운 탐구 정신을 발휘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 부끄러운 교사는 대견스러운 그 제자 덕분에 난생 처음 '교육기본법'상의 '교육의 중립성'에 관한 조항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6조 (교육의 중립성) ①교육은 교육 본래의 목적에 따라 그 기능을 다하도록 운영되어야 하며, 정치적·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 된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대자보가 '정치적․파당적 편견'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겠지요. 약자들의 눈물과 탄식을 보듬자는 외침이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는 수단이 될 수는 더더욱 없는 노릇이지요. 도대체 경남교육청은 민주주의 시민 교육을 강조하는 우리나라 교육과정상의 목표를 알고나 있을까요. '정치'의 이름으로 '정치' 참여를 배제하는 그들의 얕은 술수가 가증스럽기만 합니다.

제자의 아버지는 함석헌 선생을 존경하셨다 합니다. 그 어머니는 대학 시절 학생 운동으로 한 학기에 보름 정도만을 수업한 경우도 있는 분이셨답니다. 제자의 부모는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을 따라 정치·경제·사회 등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이야기를 제자에게 들려줬다고 합니다.

네. 저도 한 학기에 보름, 아니 열흘만을 수업하고 진정한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를 되찾을 수 있다면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밖에서는 쉬쉬 하라 하고 정치에 대한 제 생각을 말하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지금, 철없는 제자가 선생님께 응석을 부립니다.

제자의 그런 다짐과 '응석'에 눈물이 났습니다. "선생님은 안녕하십니까?"라는 마지막 인사를 입력하고 있자니 다시금 눈두덩이 뜨거워집니다. 이런 '제자'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으니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미래에 기대를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제자의 말을 빌려 이 땅의 모든 '교복 입은 시민'들에게 전해 주고 싶습니다.

힘들고 힘든 지금 상황에 당당한 우리의 제자들이자 시민인 학생들은 안녕하십니까?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안녕' 대자보, #제자, #민주주의, #교육의 중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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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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