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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케로의 명성은 오늘날로 보면 변호사로서의 탁월한 웅변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법정에서 자기가 변호한 의뢰인을 위해 최고의 변론을 했다. 그는 맡은 사건마다 이기는, 아주 잘 나가는 변호사였다. 중산계급과 평민은 탁월하고 용기 있는 그의 연설에 감사를 표했다. 그런 이유로 맺어진 의뢰인들은 죽어가면서 키케로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막대한 돈을 키케로에게 유증(유언으로 증여)한 것이다.

당시 로마법은 변호사가 변론의 대가로 돈을 구할 수는 없었다(로마문명이야기② 로마가 남긴 위대한 유산, 법률 참고). 사람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변호사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이었을까. 돈은 그러한 정의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라 생각했던 것이었을까. 그럼에도 의뢰인이 선의로 사례하는 것은 막지 않았다. 키케로는 그렇게 돈을 벌었다. 그에겐 여기저기 고가의 별장이 있었다. 물론 장가도 잘 갔던지 신부로부터 막대한 지참금도 받아 젊은 시절부터 돈의 궁핍함을 느끼지 않고 살았다.

그의 아버지는 비록 귀족은 아니었지만 돈 많은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영민한 아들 키케로가 최상의 교육을 받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리스 시인 아르키아스를 고용해 키케로에게 문학과 그리스어를 가르쳤고, 당대 최고의 법학자였던 스카이볼라에게 아들을 보내 법률 공부를 하게 했다.

키케로는 독재자 술라가 한때 로마를 휘어잡고 있을 때 몸을 피해 그리스로 가 거기서 웅변술과 철학을 공부하고, 로도스섬으로 건너가 아폴로니우스에게서 수사학을, 포세이도니우스에게서 스토아 철학을 배웠다.

천하의 명변호사, 수사학의 대가 키케로

키케로, <수사학> 안재원 옮김. 요즘 라틴어 원전이 우리 말로 번역되어 나 같은 비전문가들도 이런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우리의 인문학자들이 이런 책을 더욱 열심히 번역할 수 있도록 그들을 격려하는 풍토가 필요하다.
 키케로, <수사학> 안재원 옮김. 요즘 라틴어 원전이 우리 말로 번역되어 나 같은 비전문가들도 이런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우리의 인문학자들이 이런 책을 더욱 열심히 번역할 수 있도록 그들을 격려하는 풍토가 필요하다.
ⓒ 도서출판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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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케로의 웅변술은 소위 수사학이라는 이름으로 완성되었다. 이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말하는 방법'에 관한 그의 이론이다. 그는 말년에 이것을 책으로 썼는데, 그것이 <수사학>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Partitiones Oratoriae>라는 책이다. 지금 이 책은 한국에서도 원전이 번역되었다. <수사학: 말하기의 규칙과 체계>(안재원 편역)이라는 책이다.

말이 나왔으니 간단히 우리나라의 키케로에 대한 연구에 대하여 한마디 하자. 최근 들어 우리나라의 서구 인문학에 대한 연구는 해가 다르게 진일보하고 있다. 대학에 있는 사람으로서 이런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한국 대학은 온통 대학경쟁이라는 마술에 걸려 순수한 인문학은 고사 직전에 있다.

그럼에도 인문학자들 중 일부는 그것과 상관없이 자신의 길을 걷고 있으니 경의를 표할 일이다. 나는 그런 분들에게 많은 빚을 졌다. 그런 분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내가 어찌 키케로의 원전에 다가갈 수 있었을까. 이 기회를 빌려 감사를 드린다.

과거의 라틴 고전번역은 일본을 통한 중역이 대부분이었는데 이제는 우리 연구자들이 라틴어와 희랍어를 공부해 원전을 번역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키케로의 저작에 대해서는 10여 년 전에 서울대의 허승일 교수(로마사 전공)가 중심이 되어 만든 키케로 학회가 있다. 이 학회는 매주 라틴원전 독회를 개최하여 그 결과를 하나하나 우리 말로 번역해 왔다. 순수 인문학자들의 열정이 빚어낸 아름다운 결실이다.

수사학을 제대로 배우지 않는 나라... 민주주의가 위험하다

이제 수사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웅변술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자. 우리나라에서도 웅변이란 말이 있고 내가 초등학교 시절인 1970년대 초반에는 웅변대회라는 것이 전국 여기저기에서 열렸다. 지금 생각해 보니 웅변대회라는 것이 대부분 정부시책을 홍보하는 용도로 개최된 것인데, 당시 나는 그 취지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몇 번 대회에 나갔다. 6·25 기념 반공 웅변이나 혼분식 장려 웅변대회에서 목청을 높인 게 기억 저편에서 아스라히 떠오른다.

이 당시 웅변대회에서 상을 받기 위해서는 일단 목소리가 좋아야 하고, 클라이맥스 부분에서는 손을 하늘 높이 뻗으며 목청껏 소리를 지르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웅변에 대한 나의 기억은 그런 것이었다. 웅변이 무엇인지 대해서는 도대체 배운 바 없이, 선생님이 써 준 원고를 달달 외고, 날 달걀로 목을 축인 다음, 과장된 몸짓을 섞어 큰소리를 치는 것, 그것이 내 웅변 역사의 전부였다.

하지만 웅변은 그런 것이 아니다. 웅변(雄辯)은 말 그대로 '최고의 말'이다. 웅변의 목적은 내 생각을 청중에게 전하며 공감을 호소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내 말에 따라 청중이 움직이도록 하는 힘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웅변은 그 구성이 잘 조직되어야 하고 논리적이어야 한다. 거기에다 청중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감정이 들어가야 한다. 따라서 웅변은 논리와 감성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적절히 조화를 이룬 언어의 예술이다.

나는 요즘 우리나라의 교육에서 가장 잘 안 되고 있는 것이 수사학과 관련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현대는 그 어느 때보다 소통이 중요한 시대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선거에 출마할 때마다 소통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 소통을 강조하는 사람도 일단 당선만 되면 마이동풍이다. 도대체 커뮤니케이션이 안 된다. 이 말 하면 딴말 하니 기가 차고, 말하는 것을 잘 들어 보아도, 도대체 그 말의 진의를 알기 어려울 때가 많다.

소통이 민주주의 발전의 요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니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소통교육을 해야 한다. 소통교육은 무엇으로 해야 할까. 그것은 말과 글로써 해야 한다.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가 의사를 말과 글로써 적절히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이 안 된다.

우리나라는 대학교육이 보편화된 세계 제일의 나라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80% 이상의 젊은이들이 대학을 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이 쓰고 있는 말과 글을 면밀히 분석하면 소통이 매우 힘든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대학입학시험 논술고사라는 것이 있지만 이것은 소통능력을 검증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 좋은 학생을 뽑는 수단이다. 전국의 이렇다 할 대학에서 출제하는 논술고사 시험문제를 자세히 읽어 보시라.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대학교수들을 무작위로 뽑아 그 시험을 보게 하면 그들은 과연 몇 점이나 받을 수 있을까. 내가 가끔 시험감독을 하면서 문제를 읽어 보면 등에서 식은땀이 난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너무나 난해한 문제들이다. 문제는 그렇게 어려운 논술고사를 통과하고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의 문장능력이다. 학생들이 쓰는 글을 자세히 뜯어 보면 심각하다는 생각이 든다. 글쓰기의 기본이 안 된 학생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서울 모대학의 모의논술고사문제. 내가 교수지만 내게 이런 문제를 내놓고 글을 쓰라고 하면 과연 얼마나 자신 있게 쓸 수 있을까. 요즘 같은 논술고사로 입시를 치렀다고 하면 나는 대학에 들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서울 모대학의 모의논술고사문제. 내가 교수지만 내게 이런 문제를 내놓고 글을 쓰라고 하면 과연 얼마나 자신 있게 쓸 수 있을까. 요즘 같은 논술고사로 입시를 치렀다고 하면 나는 대학에 들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 유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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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소 어려운 논술고사 치르지 말자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만약 논술고사를 본다면 소통능력을 검증하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를 내자고 주장한다. 지금과 같은 논술고사는 사교육만 부추기는 부정적인 효과를 낳는다. 그저 간단하게 문제를 내도 수험생의 실력을 진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려운 문제를 내서 학생들이나 채점자 모두를 애먹일 필요가 없다. 아주 간명한 문제를 내서 그들의 의사소통 능력을 점검해 보는 것이 초중등교육에서 글쓰기 교육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말을 잘할 수 있을까

말의 중요성, 이것은 우리 사회를 돌아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말이 아닌 말을 쓰는 이들이 너무 많다. TV를 틀어 놓고 거기 출연하는 유명인사들의 말을 분석해 보라. 혹시 그가 말하는 것이 자막을 통해 글자로 표기되는 것을 보았는가?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의 말과 그 자막 글이 많은 경우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가 말하는 것이 워낙 문법에 맞지 않으니 방송국에서 적절히 통하는 말로 바꾸어 서비스하는 것이다.

남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주는 사람들도 그럴진대 일반인들의 말하는 수준을 논하는 것은 시간 낭비일지 모른다. 우리나라에 민주주의가 안 되는 것은 어쩌면 이 말이 문제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니 일찌감치 말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

이런 이유로 우리의 교육에서 말과 글을 제대로 배워야 하는 이유가 설명된다. 2000년 전 키케로가 관심 가졌던 수사학은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는 좀 더 말과 글의 기법을 터득하여 남에게 알리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한국 민주주의 내일을 위한 최소한의 시민교육이 될 것이다.

자, 그럼 키케로가 어떻게 하면 말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어떤 대답을 했는지 들어 보자. 키케로는 <수사학>의 한 부분에서 웅변(연설)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설명한다. 직접 그의 말을 들어보자.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큰 도움이 되는 말이 될 것이다.

"연설은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이 중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은 마음을 움직이는 역할을 담당한다. 왜냐하면 감정이 서론과 결론에서 자극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부분은 사실 기술이고, 세 번째 부분은 논증인데, 이는 연설의 신뢰감을 만들어준다. 그러나 강조는 원래 고유한 자리를 가지고 있지만 종종 연설의 시작에도, 하지만 연설의 마무리에서는 언제나 사용해야 하는 표현방법이다."(<수사학>, 안재원 편역, 148쪽)

나는 말을 할 때 키케로의 이 조언을 항상 머릿속에 둔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앞으로 말을 할 때, 특히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때는 이 조언을 머릿속에 두면 좋을 것이다.

생각하라, 말하기 전에 내가 할 말의 구성을 그려 보라. 그리고 그것에 따라 말하도록 해라. 좀 천천히 말해도 좋다. 말이 빠른 것보다는 전달이 더 중요하다. 또 말하는 훈련을 하라. 훈련을 쌓을수록 머릿속에서 빠른 속도로 논리적 문장이 만들어질 것이고, 말의 속도도 빨라지게 될 것이다. 천부적인 웅변가도 있겠지만 훈련을 통해 만들어지는 뛰어난 웅변가도 있다는 사실에서 희망을 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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