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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래도 시간제 일자리가 좋다고? "영화할 때마다 전세 빼서..."
ⓒ 심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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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영화 끝났어요?"
"끝났어요."

지난 8월 한 독립영화 감독이 촬영한 영상 속 시민들은 영화를 보러 왔다 허탕을 쳤다. 열려 있어야 할 상영관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서울시민영화제를 찾은 시민들은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서울시민영화제 조직위(이하 조직위)는 8월 16일부터 30일까지 반포 세빛둥둥섬과 청계광장 등 서울시내 5곳에서 '지자체의 지원 없이 오로지 기업들의 후원을 받아 시민들에게 무료 영화 관람 기회를 제공하는 첫 야외영화제'를 열겠다고 홍보했다.

기업 후원으로 10억여 원을 모아 무료영화제를 열겠다는 계획이었지만, 후원이 신통치 않아 하청업체 대금지급을 미루면서 영화제는 파행을 겪었다.

스크린 설치비 미납으로 서울 상암 유니세프 광장 개막이 19일에서 22일로 미뤄졌고, 21일 개막 예정이던 청계광장은 22일로 하루 연기됐다.

또한 세빛둥둥섬은 장비 대여료 미지급으로 인해 원래 계획인 29일보다 나흘 앞당겨 26일부터 상영이 종료됐고, 상암 유니세프 광장 상영은 종료 예정일인 29일보다 하루 앞당겨진 28일에 중단됐다.

한 영화 상영관 관계자는 "행사를 해도 (행사가 취소되는) 이런 일은 없었다. 끝까지 갔다"고 파행을 꼬집었다.

영화제가 끝난지 4개월, 미지급 금액만 4억 원 넘어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영화제가 끝난지 4개월이 다 됐는데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인건비와 대관료 미지급 문제다.

영화인들이 꾸린 공동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에 따르면 스태프과 아르바이트생 40여 명의 인건비를 비롯한 상영 장비 비용 2억 5천만 원과 세빛둥둥섬 대관료 1억 7천만 원 등 파악된 미지급 금액만 4억 원이 훌쩍 넘는다.

생활이 넉넉치 않은 영화인들은 당장 생계가 걱정이다.

대책위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장지연(38 . 영화제 프로그래머)씨는 "체불된 임금은 500만 원이지만 그 기간동안 그것을 메우기 위해 자비를 쓰면서 일을 했다"고 밝힌 뒤, "거기다가 체불 문제 해결을 위해 다른 일을 못하고 두 달이란 시간도 허비했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민영화제에서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일했던 선호빈(38)씨도 "총 임금이 600만 원인데 그 중에서 100만 원을 굉장히 늦게 받았고, 그 뒤로는 받은 돈이 없다"고 밝혔다.

돈을 받지 못한 일당 5만원짜리 아르바이트생 중에는 고등학생도 있었다.

서울시민영화제 FD로 현장을 지켰던 박태용(33)씨는 "어린 친구들이 대부분이었고 고등학교 1학년 생도 있었다"며 "아르바이트비를 못 받은 학생이 울면서 전화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서울시민영화제 공동대책위원회과 지난 12일 서울 은평구 응암동 한 사무실에 모여 임금 체불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서울시민영화제 공동대책위원회과 지난 12일 서울 은평구 응암동 한 사무실에 모여 임금 체불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 박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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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에 수천 만원의 후원금을 지원했던 기업들은 "영화제가 잘 끝난 줄로만 알고 있었다"며 임금 체불 소식에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안타깝다" "당황스럽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대책위는 "조직위쪽에 수억 원의 기업 후원금을 받고도 임금을 체불했다며 조속한 임금 지급을 요구"하고 있지만, 조직위는 아직까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이혁진 조직위원장은 "자신은 주로 기업들의 후원금 모금과 장소섭외를 맡았을 뿐이다. 미지급금은 하진욱 집행위원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진욱 집행위원장이 다 책임을 져야 되는 걸 지금 이행을 안 하고 있는 게 문제의 핵심이고요. 하 위원장이 횡령했던, 착복했던 돈에 대해서 모든 걸 다 이행을 하면 되는 문제입니다."

대책위에 따르면 하진욱 위원장은 연락을 끊고 피해다니다 최근 경찰에 붙잡혔지만, 서울 서초경찰서와 서울지방노동청에 1~2달내에 자진 출석하라는 요구를 받고 풀려났다. <오마이뉴스>가 하 위원장과 직접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예술분야 임금 체불, 제도적 개선 시급

영화인들은 단지 이번 영화제 뿐만 아니라 예술 분야에서는 이런 임금 체불이나 연체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며 이번 기회에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지연 공동대표는 이번 임금 체불을 포함해 연달아 세 번이나 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경제활동을 할 때마다 사기를 연달아 3번을 당하니까 보증금을 사고가 터졌을 때마다 조금씩 빼서 작은 데로 옮겨야 했어요. 벌써 세 번이나 그렇게 했어요. 지금 최후에 남은 보증금 1000만 원짜리 월세 작업실에서 있는데 이제 이것까지 빼야하나? 그런 상황까지 온 거예요."

박태용씨는 "문화예술 분야가 인맥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고, 임금을 1년 뒤에 받는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

특히 프로그래머 등 공연기획자는 임금근로자가 아니라, 하도급 계약을 맺는 개인사업자로 간주되기 때문에 체불임금을 더 받기 어렵다. '을 중의 을'이라는 것.

대책위 대리인을 맡고 있는 최승현 노무사는 "임금 받으면서 일 하는데 근로계약서 안 쓰는 경우 보호 못 받게 되고, 도급관계가 애매하면 도움을 못 받는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예술 분야 종사자들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아낼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법적인 안전장치를 위한 근로계약서 작성과 행사 주최측의 비용 지급을 위한 담보 마련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노무사는 "중요한 것은 계약 관행들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아울러 이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지도점검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장달영 변호사는 "업체로부터 임금을 받지 못하면 담보를 통해 돈을 받을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한데 그런 게 없다"며 "법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축제공연예술산업 노동자들의 근로 조건은 길어야 3개월. 근로시간도 계산하기가 쉽지 않다. 이들의 노동조건을 감안해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박근혜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 창출도 공염불이라는 지적이다.

서울시민영화제는 지난 여름 막을 내렸지만, 아직도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스태프들과 피해업체들의 고통.

하진욱 집행위원장을 민형사 고소한 서울시민영화제 대책위는 앞으로 예술 분야의 임금 체불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시키는 동시에 예술인 단체들과 함께 대책 마련을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태그:#서울시민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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