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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커피콩, 우리나라에서는 연간 1인당 484잔의 커피를 마신다고 합니다.
 12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커피콩, 우리나라에서는 연간 1인당 484잔의 커피를 마신다고 합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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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서 길을 거닐 때, 시원한 냉수 한 바가지보다 따끈따끈한 커피 한 잔을 뽑아 마시는 게 훨씬 더 손쉬운 세상입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으니 40여 년 전쯤으로 기억됩니다. 월남으로 파병을 갔던 사촌형이 귀국하면서 가져온 물건 중에 커피라는 게 있었습니다. 커피라는 건 속이 보이지 않는 비닐봉지에 들었었는데, 동네사람들 대부분이 처음 보는 것이었습니다. 사촌형은 "커피는 서양 사람들이 숭늉처럼 마시는 것"이라고 설명해 줬습니다.

며칠 후, 작은집에서는 외국 전장까지 나갔다 무사히 제대해 귀국한 사촌형을 축하하기 위해 동네사람들을 집으로 불러 잔치 아닌 잔치를 열었습니다. 사람들이 밥상을 물릴 때쯤, 작은 어머니는 사촌형이 가져온 커피를 봉지째로 들고 부엌으로 나갔습니다. 

부엌에 있는 시커먼 가마솥에서는 물이 펄펄 끓고 있었습니다. 작은어머니는 물이 펄펄 끓고 있는 가마솥에 검은색이 나는 커피 가루와 흑설탕을 넣더니, 팥죽을 끓일 때 쓰던 기다란 나무 주걱으로 휘휘 저었습니다. 그리고는 숭늉을 떠주듯 양재기 그릇에 반쯤 담아 사람들에게 돌렸습니다. 뭐가 뭔지 몰랐지만, 씁쓸하면서 달달했습니다. 시커멓고 뜨거운 물을 후후 불어가면서 마셨던 기억입니다. 그 커피가 난생 처음 맛본 커피로 기억됩니다.

그 뒤에는 커피라는 말 자체를 잊고 살았습니다. 6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 중학교 등굣길에 있는 전파상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던 노래에서 커피를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음색이 아주 독특했던 가수, 김추자가 부르는 <커피 한 잔>이라는 노래를 통해서 말이지요.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 그대 올 때를 기다려 봐도 / 웬일인지 오지를 않네 / 내속을 태우는 구려 / 8분이 지나고 9분이 오네 / 1분만 지나면 나는 가요 / 정말 그대를 사랑해 / 내속을 태우는구려….

도회지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은 물론, 40여 년 전에는 동네사람들 대부분이 처음으로 봤던 게 커피였지만 이젠 밭일을 하다가도 참으로 마셔야 할 만큼 생활 속의 기호음료가 됐습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하루 두서너 잔쯤의 커피를 마시는 건 일상이 됐습니다.

커피의 모든 것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 표지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 표지
ⓒ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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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지은이 마크 펜더그라스트, 옮긴이 정미나, 펴낸곳 을유문화사)는 커피가 지니고 있는 역사며 커피가 시작된 이래의 남긴 발자국들이 담겨 있습니다. 커피의 어떤 역사는 설화이기도 하고, 어떤 발자국에는 애환 혹은 아픔이 묻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도 많고, 탈도 많고, 사연도 많은 게 커피라 생각됩니다. 언제부터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에티오피아에서 염소치기 소년이 커피나무 잎과 빨간 열매(커피)를 땄는데 이를 먹은 염소들이 날뛰는 것을 보고 따라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때부터 커피의 효능을 알게 되면서 커피를 마셨다고 하지요.

이렇게 발견된 커피는 이런저런 방법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합니다. 커피가 인도 지방으로 전해지는 과정은 흡사 문익점이 중국에서 목화씨를 우리나라로 가져오는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세상사가 늘 그렇듯, 이런 경계망은 요리조리 피해 가는 시도들이 이어졌다. 1600년대 어느 무렵, 바바 부단(Baba Budan)이라는 무슬림(이슬람교도) 순례자가 씨앗 일곱 개를 자신의 배에 끈으로 동여맨 후 몰래 가지고 나가서 인도 남부 지방인 마이소르(Mysore)의 산악지대에서 경작하는 데 성공했다."(본문 44쪽)

아라비아의 수피교 수도승들이 졸지 않고 밤새워 기도하기 위한 용도로만 사용되던 커피는 세계 여러 나라로 퍼지면서 탈도 많고 사연도 많은 음료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책에는 커피가 가정을 파괴시켰던 일부터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마약으로 몰리게 된 일, 병사들의 용기를 북돋아줬던 일까지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이 나옵니다.

커피는 씁쓸한 커피 맛만큼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누구에게는 출세의 길을 열어줬지만, 누군가에게는 패가망신을 안겨줬고, 누구에게는 부와 명예를 줬지만 누구에게는 타락의 계기가 됐습니다.

"우리는 요즈음 진정한 옛 영국의 정기가 퇴화되고 있음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 남자들은 이제 고상한 브리치즈를 입지 않고, 기개도 예전만 못하다. 이러한 상태를 이끈 모든 원흉은, 요즘 유행하는 그 커피라는 것이다. 그 가증스러운 이교도의 음료를 너무 많이 마셔서 문제가 되고 있다. 커피는 (…) 우리의 남편들을 아주 거세시켜 용맹함을 꺾어 놓고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 남자들이 커피를 마셔 봐야 얻는 것이라 곤 그 천한 코만 축축해지고, 관절만 뻣뻣해지고, 귀만 발딱 일어날 뿐이다."(본문 54쪽)

나뭇잎과 열매를 생채로 따먹던 커피는 어느새 상품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이에 따른 문화 또한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커피를 제조하는 기술이 발달하며 커피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커피를 가공하거나 추출하는 기술 역시 발달합니다.

광고 카피에서 시작된 '커피 브레이크'

요즘 웬만한 모임이나 행사 중에는 행사장 한쪽에 마련된 커피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하는 '커피 브레이크'가 주어집니다. 아주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커피 브레이크. 이 문화는 한 광고 카피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합니다. 커피가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커피 브레이크라는 말은 1952년에 범아메리카 커피사무국에서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연간 200만 달러의 예산을 지원받던 범아메리카 사무국이 당시에 라디오·신문·잡지를 통해 '여러분 스스로에게 커피 브레이크를 주세요, 그리고 커피가 선사하는 기쁨을 누려 보세요'라는 카피의 광고 캠페인을 시작한 것이 이 말의 시초였으니 말이다."(본문 365쪽)

오늘도 커피를 습관처럼 마시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루를 시작하며 한 잔, 점심 식사 후에 또 한 잔, 졸음을 쫓기 위해 한 잔, 누군가를 기다리며 마시는 한 잔 그리고 지나간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또 한 잔…. 우리나라 사람들이 연간 1인당 마시는 커피는 무려 484잔에 달한다고 합니다.

웬만한 곳이면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 마실 수 있는 세상입니다.
 웬만한 곳이면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 마실 수 있는 세상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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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는 커피의 기원과 명칭의 유래에서부터, 커피의 전파 경로, 커피콩의 구조, 재배, 수확, 가공법, 스페셜티 커피 등 커피가 등장한 이래 커피가 품고 있는 모든 사연과 이야기들을 충실히 담아냈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커피가 세계문화사에 끼친 빛과 그림자 같은 역할 등도 소소한 에피소드를 풀어놓듯 함께 들려주고 있습니다.

"완벽한 커피 추출을 위한 팁 : 그 비결이 알쏭달쏭해 보이긴 해도, 사실 맛 좋은 커피 한 잔을 내리는 요령은 다음과 같이 비교적 간단하다. 먼저 아라비카 블렌딩의 갓 볶은 통원두를 분쇄한다. 차고 깨끗한 물을 준비해 끓어오르기 직전까지 끓인다. 너무 뜨겁지 않은 그 물을 분쇄된 커피 가루에 적당한 비율로, 즉 물 6온스(170그램)당 커피 가루 2큰술을 붓고 4~5분 정도 우린 후 여과기에 걸러 잔에 따른다. 각자 입맛에 맞게 설탕이나 크림을 섞는다. 이제 바로 잔을 들고 마시면서 만족스러운 탄식을 터뜨리면 된다."(본문 607쪽)

저자가 책의 말미에서 팁으로 주고 있는 '완벽한 커피를 추출하는 방법'입니다.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를 통해 커피에 깃든 역사, 커피가 담고 있는 사연까지를 알게 된다면 맛과 기호로만 마셨던 커피가 훨씬 더 맛있어지고 기호 또한 풍부해지리라 생각됩니다.

이 책은 커피의 책, 커피에 의한 책, 커피를 위한 책처럼 보이지만 결국 이 책은 읽는 이들을 위한 책, 커피와 함께 읽으며 커피처럼 즐길 수 있는 책이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 지은이 마크 펜더그라스트 | 옮긴이 정미나 | 펴낸곳 을유문화사 | 2013.11.30 | 2만3000원)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

마크 펜더그라스트 지음, 정미나 옮김, 을유문화사(2013)


태그:#매혹과 잔혹의 커피사, #정미나, #을유문화사, #커피브레이크, #에티오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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