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드> 의 한 장면

▲ <위키드> 의 한 장면 ⓒ 박정환


<오마이스타>는 스타는 물론 예능, 드라마 등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시민기자들의 리뷰나 주장을 폭넓게 싣고 있습니다. 물론 그 어떤 반론도 환영합니다. 언제든지 '노크'하세요. <오마이스타>는 시민기자들에게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 말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중국을 여행하던 십 년 전에는 한국영화를 중국 상영관에서 보지 못하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있었다. 중국어 자막이 나올 테니 한국어를 듣기만 하면 되겠거니 하고 베이징에서 영화 티켓을 구매했는데 영화 속 한국 배우는 한국말을 하는 게 아니라 중국어를 하고 있었다. 중국 성우가 더빙을 한 탓이다. 단 십 분만 관람하고 도중에 극장을 나와야 했던 기억이 있다.

<위키드>와 <오페라의 유령> 같은 오리지널 팀의 내한공연은 한국에서는 대박도 아닌 초대박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손꼽힌다. 그런데 이들 내한공연에서 유일한 아킬레스건은 '자막'이다. 오페라의 자막에 익숙한 관객이거나 영어에 능통한 관객이라면 모를까. 시선이 자막과 배우를 오가며 관람해야 하기에 연세가 든 어르신 관객에게는 내한공연의 자막이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국내 초연으로 무대에 오르는 이번 <위키드>는 자막을 읽을 줄 모르는 자국민을 위해 외국 영화에 중국어를 덧입힌 중국 상영관의 영화처럼 자막이라는 불편함을 걷어버린 공연이다. 자막에 시선이 오가지 않고 배우의 몸짓 하나하나와 배경 모두를 온전히 눈 속에 아우를 수 있는 공연이 이번 한국 초연작이다. 자막으로만 읽었던 '샤방샤방'이나 '밥맛' 같은 극 중 대사를 한국의 뮤지컬 배우를 통해 귀로 들을 수 있다.

<위키드> 의 한 장면

▲ <위키드> 의 한 장면 ⓒ 박정환


1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인기 비결은 전복의 힘

2003년에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막을 연 <위키드>가 십 년이 되도록 <북 오브 몰몬>이나 <킨키부츠> 같은 쟁쟁한 신작 경쟁작에 뒤처지지 않고 브로드웨이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할 수 있는 건, 고음의 뮤지컬 넘버가 선사하는 감동의 선율 덕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차원에서 작품을 해석할 수 있는 작품인 까닭도 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오즈의 마법사>를 뒤집는 전복의 힘이 선사하는 재미 말이다.

<위키드>는 동전의 앞면이 전부인 줄로만 알고 있던 <오즈의 마법사>를 뒷면까지 바라보게 만드는 스핀오프 뮤지컬이다. 우리가 아는 <오즈의 마법사>의 내용이 실은 진실의 전부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일본 관방장관인 요시히데라는 자는 안중근 의사를 범죄자라고 지껄이지만 우리에게 있어서는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응징한 애국지사임인 것과 같은 이치다.

이와 마찬가지로 서쪽의 사악한 마녀로 알려진 엘파바가 실은 학창 시절 글린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도움을 베풀고 있었다. 모리블 학장이 주관하는 마법 특강에 룸메이트 글린다를 강력하게 추천하고, 오즈로 향한 여정에도 글린다를 초청하는 이가 엘파바다.

그럼에도 하얀 마녀 글린다는 배은망덕하게도 엘파바를 골탕 먹이기 위해 검은 색 마녀 모자를 건네주고는 파티의 핫한 아이콘이 될 테니 마녀 모자를 쓰고 오라고 한다. 이는 엘파바를 파티에서 웃음거리로 만들기 위한 글린다의 계략임에 분명하다. 파티장에 검은 마녀의 모자를 쓰고 나타난 엘파바는 글린다의 계략대로 파티장에서 웃음거리가 된다.

만일 엘파바가 복수를 추구했다면 뮤지컬 버전 <캐리>가 되었을 터. 하지만 엘파바는 파티장에서 자신을 비웃는 이들과 글린다에게 복수를 꿈꾸지 않는다. 자신을 향한 조롱이 하루 이틀이 아니기에 주변의 반응에 개의치 않는다. 이는 엘파바의 자아가 주변의 반응에 휘둘리지 않는 강한 자아임을 보여줌과 동시에, 동쪽의 착한 마녀로 알려진 글린다의 본성이 알고 보면 선을 악으로 갚는 '진짜 마녀'에 가깝다는 걸 보여준다.

반면 나쁜 마녀로 알려진 엘파바는 악을 악으로 글린다에게 되갚지 않는다. 영화<올드보이> 또는 <악마를 보았다>에 나오는 방식처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는 동해보복법의 가치관이 엘파바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도리어 엘파바가 가져야 할 복수의 자리에는 글린다와의 우정이 대신 자리한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알고 있던 선과 악의 도식이 <위키드>에서는  뒤바뀐다.

<위키드> 의 한 장면

▲ <위키드> 의 한 장면 ⓒ 박정환


<위키드> 의 한 장면

▲ <위키드> 의 한 장면 ⓒ 박정환


<위키드>의 장점 살린 배우들...가창력도 중요했다

인간 외의 다른 동물은 인간의 언어를 구사할 자격이 없다는 걸 전제로 점차 언어를 잃어간다. 딜라몬드 교수 같은 오즈의 동물들이 말할 능력을 상실한다는 건 <오즈의 마법사>가 획책하는 세계관이 파시즘의 세계관이라는 걸 보여준다. 하나의 세계관 이외의 다른 세계관이 공존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행동은 곧 하나의 가치관만이 유일한 진리라고 대중에게 강요하는 꼴이다. 동물이 내야 할 목소리를 압살하는 오즈의 정책은 독선과 아집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

오즈의 파시즘 가운데서 유일하게 반대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인물은 엘파바다. <위키드>의 대표 넘버인 '중력을 넘어서'는 오즈의 파시즘에 영합하여 부귀영달의 길을 걷기보다는 힘들고 고되다 할지라도 동물의 권익을 위해 아나키스트가 됨을 선포하는 엘파바의 홀로서기를 알리는 넘버다. '중력을 넘어서'가 선사하는 고음의 전율은 엘파바의 홀로서기 선언이라는 의미화와 맞닿을 때에야 객석에는 진정으로 물리적인 선율의 아름다움과 심미적인 아름다움 두 가지가 조화되어 전달될 수 있다.

그렇기에 엘파바를 연기하는 뮤지컬 배우는 고음 처리가 완벽할 필요가 있었다. '중력을 넘어서' 같은 고음의 넘버로 관객에게 제대로 된 감동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엘파바를 연기한 박혜나는 옥주현이 긴장할 만큼의 감동을 완벽한 고음 처리로 전달하고 있었다. 또한 글린다를 연기한 김보경은 톡톡 튀는 재치와 기지를 무대 밖으로 철철 넘치게 만드는 연기가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 반면에 피에로를 연기한 조상웅은 두 주연 여배우의 가창력에 미치지 못하는 가창력으로 뮤지컬의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아쉬움이 있었다.

<위키드> 의 한 장면

▲ <위키드> 의 한 장면 ⓒ 박정환



위키드 옥주현 오즈의 마법사 오페라의 유령 올드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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