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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엄마 올해는 몇 포기예요?"
"응 배추는 200포기쯤 되고, 무시(무)는 150뿌리 좀 안 되겠나."

"이 많은 것을 어떻게 다 뽑고, 담글 수 있어요."
"우짜겠노. 해야지. 이제 내가 몸이 힘들어서 못하니까. 너희들이 해야지. 누나고 오고."

 

'김장철이 왔어요. 김장철이 왔어요.' 네 김장철이 왔습니다. 지난달 30일 눈앞에 배추 200포기와 무 150개를 보면서 앞이 캄캄했지만, 겨우 내내 먹을 것이니 잠깐 고생하면 오랫동안 입이 즐거울 것이라는 믿음으로 무를 뽑기 시작했습니다.

 

큼직한 무 들고 "'무 만세!'"

 

어머니는 가을내내 "올해는 무시는 잘 됐는데, 배추는 속이 차지 않았다"며 걱정을 했습니다. 정말 무를 뽑으니 묵직했습니다. 아내가 특히 무를 좋아합니다. 무김치는 익으면 익을 수록 배추김치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맛을 냅니다.

 

"당신 올해 무김치 많이 먹겠네요."

"배추김치보다 무김치가 훨씬 맛있잖아요. 익으면 익을수록 시원한 맛이 나요."

"무가 얼마나 잘 되었는지 묵직해요. 겨우내내 무김치만 먹어도 배부르겠어요."

 

중학생인 형과 누나는 학교 가는 바람에 함께 하지 못했지만, 따라 나선 막둥이는 큼직한 무를 보자 만세를 불렀습니다.

 

"아빠 무가 굉장히 커요."

"막둥이가 무김치 좋아하지. 큼직해서 좋겠다."
"엄마처럼 무김치 좋아해요. 아빠 '무 만세!'"

"그래 무 만세다."
 

 
우리집 '김치사랑'...김치냉장고 김치통 15통
 
배추 200포기와 무 150개를 마당에 쌓으니 마당 절반입니다. 보기만해도 배가 부릅니다. 아이들이 김치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어머니댁과 우리집 그리고 누나 셋집입니다. 200포기 김치 중 약 70%인 140포기는 우리집에서 먹습니다.  아이들이 엄청나게 김치를 좋아합니다. 아내 말에 따르면 김치 냉장고에 들어가는 김치통 15개 정도를 먹는다고 합니다. 김치만 먹었던 옛날처럼 김치만 먹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김치를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가장 많이 먹습니다.

"목요일쯤에 배추 절일 수 있겠나."
"예 가능해요. 전화 주세요."
"그럼 누나하고 같이 와서 절이라."

"예."

 

하지만 배추 절이는 일은 누나가 다 했습니다. 다른 때같으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전화를 해 "목요일 꼭 와서 배추 절이라"는 말씀을 하시지만 올해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많은 배추를 누나가 더 절였습니다. 이틀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밥을 먹지 못할 정도로 피곤했다고 합니다. 다른 해 김장 때 배추 절이는 일을 자주 했기 때문에 올해도 실력 발휘를 하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김장 담글 때 가장 힘든 일이 사실 배추 절이는 일입니다.

 

"올해는 누나가 배추를 다 절여 굉장히 편안하네요."
"하모 네 누나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이틀 동안 이 많은 것을 다 했다 아이가. 나중에는 밥도 안 먹더라. 힘들어서."

"그래요. 전화를 하셨으면 왔을 것인데."
"네 누나 그냥 다 했다."

 

무김치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남편 칼질 솜씨는 '일취월장'

 

11월 마지막날 드디어 김장을 담갔습니다. 누나가 깨끗하게 씻어 놓은 무를 썰었습니다. 큰 것은 세 토막, 작은 것은 반토막을 냈습니다. 그리고 토막낸 것을 다시 4등분합니다. 양념이 골고루 배기 위해 그렇게 합니다.  

 


"반토막 내면 되죠?"
"잘 하네요."
"그럼, 한 두 번 한 솜씨가 아니지."
"또 저 자랑."
"이런 것 자랑하지 않고, 무엇을 자랑해요. 무김치 좋아하는 당신 때문에 '칼질' 솜씨가 날로 날로 좋아지잖아요."

 

두 며느리, 아들 앞에서 시어머니 흉도 보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아요

 

아내가 좋아하는 무김치 담그기 위해 남편은 오늘도 열심입니다. 칼질이 일취월장입니다. 칼질 몇 번하고 일년을 우려 먹을 수도 있습니다. 남편으로 살아가는 것 생각보다 쉽습니다. 아내만 김장 담그라는 법은 없습니다. 남편도 김장 담그면 됩니다. 다른 해는 누나도 함께 했지만, 올해는 누나가 없어 아내와 제수씨 그리고 '자랑쟁이'이 남편이 함께 했습니다. 지난해는 굉장히 추웠는데 올해는 따뜻했습니다.

 

"올해는 따뜻해서 좋네요."
"맞습니다. 따뜻해서. 바깥에서 해도 춥지가 않네요. 지난해는 손이 시려서 엄청 힘들었던 것같은데."

"조금 짤 줄 알았는데. 간이 잘 됐네요."

"형님이 간을 잘했습니다."
"누나가 솜씨가 어디가나."
 

김장 담글 때 참 재미있습니다. 남자는 별 말이 없지만, 여자는 많은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아들 앞에 앉혀놓고 두 며느리는 시어머니 흉도 봅니다. 아들은 듣지 않는 것처럼 모른 척하고 넘어갑니다. 그 흉이 시어머니를 무시하거나 비웃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흉입니다. 약 3시간 동안 김장을 담그니 허리를 들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다른 때는 누나가 같이 담갔습니다. 역시 사람 손 하나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김장은 누가 뭐래도 옹기, 특히 옛날 옹기에 담아야 제맛입니다.

 

김장김치+돼지수육, 안 먹어본 사람은 몰라요
 
아무리 김치냉장고가 좋아도 옛날 옹기를 따라 올 수가 없습니다. 옹기에 담근 김치를 먹어본 사람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김장김치에 빠질 수 없는 것 하나, 돼지수육입니다. 돼지수육에 김장김치를 말아 먹는 것, 안 먹어본 사람은 모릅니다. 물론 돼지수육을 삶는 비법도 중요합니다. 아내 수육 삶는 비법은 특별한 것 없습니다. 된장+파+무를 넣습니다. 그런데 맛있습니다. 김장 담그느라 점심을 늦게 먹은 것도 있지만 돼지수육에 김장김치를 얹은 막둥이는 한 입 가득입니다.
 

"수육이 잘 삶아졌네."
"너무 많이 삶으면 맛이 없어요. 적당하게 삶아야 해요."
"막둥이 맛있어?"
"응 맛있어요."
"천천히 먹어라."

"응."

 

겨우내 먹을 무를 위해 '삽질'

 

말이 없는 이유는 맛있기 때문입니다. 김장김치에 돼지수육까지 먹고 이제 겨우내내 먹을 무를 묻어야 합니다. 어릴 적에 파 묻어 놓은 무를 하나씩 꺼내 먹었습니다. 그 맛을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사각사각하는 소리와 입안이 얼얼할 정도로 차가운 맛.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결코 그 맛을 느끼지 못합니다. 마음 바쁜 어머니는 무를 묻지 못해 답답합니다.
 

"무시를 파 묻어야 하는데."
"엄마 제가 할 것이니까. 걱정 마세요."

"땅을 깊게 파야 한다. 안 그러면 언다."
"알아요. 얕게 파면 무가 얼잖아요. 언 무는 못 먹잖아요."
"하모 무시는 얼면 못 먹는다."

 

'삽질'을 했습니다. 힘들지 않습니다. 겨우내내 무를 하나씩 하나씩 꺼내 먹을 것입니다. 무김치도 담가 먹고, 아니면 깎아 먹습니다. 어릴 적 그 맛은 느끼지 못하지만. 김장 아내만 담그라는 법 있나요. 남편도 담그면 됩니다. 하루쯤 고생하면 364일이 편안합니다.


태그:#김장, #무, #배추김치, #돼지수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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