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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명 주소 전면 시행을 알리는 펼침막 2014년 1월 1일부터 도로명 주소가 전면 시행되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잘 모르고 있다.
▲ 도로명 주소 전면 시행을 알리는 펼침막 2014년 1월 1일부터 도로명 주소가 전면 시행되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잘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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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주소 체계인 도로명 주소 전면 시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100여 년 동안 시행되었던 지번 주소 대신 도로 이름과 건물 번호로 구성된 도로명 주소가 오는 2014년 1월 1일부터 유일한 법적 주소로 인정된다. 주소 체계의 변경이 코앞이지만 대다수 시민들은 자기 집의 도로명 주소는 물론, 내년부터 도로명 주소가 전면 시행된다는 사실조차 잘 모른다.

안전행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올해 1월에서 9월 사이 전국에서 유통된 우편물 중 도로명 주소를 사용(병행 사용 포함)한 비율은 16.55%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러하니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의 도로명 주소를 알까 하는 의문마저 든다.

지난 주말의 일이다.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가까운 중국집에 음식을 주문했다. 음식을 주문하면서 도로명 집주소를 알려줬더니 중국집 직원은 기존의 번지 주소를 되물었다. 그래서 개그맨 신동엽씨가 홍보하는 '도로명 주소 공익 광고도 보지 못했냐'고 물었더니 '보기는 했지만 옛날 주소가 익숙하다'는 반응이었다.

도로명 주소, 선진국이 하니 우리도 해야?

종로구 자하문로7길 도로명판 새로 시행되는 도로명 주소에 따르면 종로구 통의동, 창성동, 체부동, 통인동, 효자동, 옥인동 등의 동명은 ‘종로구 자하문로’로 통합된다.
▲ 종로구 자하문로7길 도로명판 새로 시행되는 도로명 주소에 따르면 종로구 통의동, 창성동, 체부동, 통인동, 효자동, 옥인동 등의 동명은 ‘종로구 자하문로’로 통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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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기 쉬울 뿐만 아니라 모든 행정에 주소체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해주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우편물도 그렇고, 또 어떤 민원 처리도 그렇고, 그래서 이것은 전세계가 다 해야 되는 당연한 겁니다. 우리가 너무 늦었고. 지금 일본 제외하고 OECD가 다 하고 북한까지도 도로명 주소하고 있습니다."

지난 11월 13일 JTBC <정관용 라이브>에 출연한 유정복 안정행정부 장관의 발언이다. 현행 지번 주소는 1910년 일제가 토지조사를 통해 부여한 지번에 따른 것이다. 당시 일제는 식민지 조선을 수탈할 목적으로 한반도 전역에서 토지 조사하여 지적부에 필지별 일련번호를 부여하였다.

이때만 하더라도 지번은 필지와 건물이 일대일로 대부분 일치하였기 때문에 주소로 사용하는 데 혼란이 없었다. 그러나 해방과 전쟁을 거치고 급격한 경제개발 속에서 행정구역이 여러 차례 개편되고 지번이 세분화됨에 따라 지번체계는 혼란스러워졌다.

도로명 주소의 도입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95년부터다. 그 해 청와대는 국가경쟁력강화기획단을 구성하고 이듬해인 1996년 7월 '도로명 및 건물번호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해가 바뀐 1997년 1월 서울 강남구와 경기 안양시에서 1차 시범사업으로 도로명 주소를 시행했다. 그리고 1999∼2003년 전국 135개 도시로 확대하여 도로명 주소 2단계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참여정부 시절이었던 2005년 도로명 주소사업은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2005년 10월 강창일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이 '도로명 주소 등 표기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하면서 이 사업은 탄력을 받기 시작한다. 도로명 주소법안은 의원 발의였지만 행정자치부의 요청을 받아 제출된 주문형 발의 성격이 짙었다.

도로명 주소법안이 국회에서 통과한 것은 2006년 10월이다. 이때 제정된 도로명 법안에 따르면 2011년 한 해 기존 지번 주소와 병행 사용한 다음 2012년 1월 1일부터 도로명 주소를 전면 시행하는 것이었다.

이즈음 정부는 도로명 주소 전면 시행에 따른 사회경제적 이익이 연간 3조4000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그러면서 '국제적으로 보편화된 주소 체계를 따름으로써 ▲ 국가 브랜드 이미지 제고 ▲ 위치 찾기가 쉬워져 각종 물류비 절감에 따른 국가경쟁력의 향상 ▲ 민간부분의 GIS 등 위치정보산업의 발전 촉진 ▲ 119 등 구급구조 출동시간 감소에 따른 대국민 응급서비스 개선 등 네 가지 이유를 들었다.

정부의 장밋빛 기대와 달리 국민들의 반응은 냉담함을 넘어 무반응에 가까웠다. 2006∼2010년 정부가 매년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도로명 주소 사용 경험자가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부와 국회는 법률 개정을 통해 전면 시행시기를 2012년 1월 1일에서 2014년 1월 1일로 2년 유예할 수밖에 없었다.

동명 속에 숨쉬고 있는 역사와 문화는 어디로

도로명 주소 법안이 제정 이후 정부는 16만개의 도로명과 540만개의 건물명을 확정하고, 건물명판과 도로명판 등의 시설물을 설치했다. 2011년에는 대국민 고지를 통해 도로명 주소가 법적 주소임을 알리는 고시 절차도 밟았다. 여기에 더해 인터넷을 통한 주소 전환시스템을 구축하여 국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한꺼번에 많은 길 이름을 작명하다보니 해당 지역과 아무 상관 없는 이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화수목금토에 착안한 화성길, 수성길, 목성길은 애교로 봐줄만 하다. 황천길, 구라길, 야동길과 같은 이름은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을 낯 뜨겁게 했다.

그동안 정부가 도로명 주소의 전면 시행을 위해 투입한 예산은 4000여억 원에 이른다. 도로명판과 건물번호판 등의 설치비로 약 3415억 원이 투입되었다. 공적 장부 주소 전환 등의 정보화 사업비에 약 254억 원이 들었고, 대국민 홍보비로 약 237억 원을 썼다.

주소체계의 변경을 위한 번호판 설치 등이 완료된 지금, 정부는 자신감에 차 있는 듯하다. 도로명 주소 전면 시행 한 달 앞두고 정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과연 그럴까?
도로명 주소를 쓰게 되면 주소에서 동(洞) 이름은 사라진다. 동 이름 사용 중단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동명 속에 숨 쉬고 있는 역사와 문화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서울 종로구의 경우 주민센터(동사무소)를 두어 행정업무를 시행하는 행정동은 18개이다. 그러나 예로부터 이 지역 주민들이 사용하고 있는 동네의 이름(법정동)은 87개에 이른다. 그런데 새로 시행되는 도로명 주소에 따르면 종로구 통의동, 창성동, 체부동, 통인동, 효자동, 옥인동 등의 동명은 '종로구 자하문로'로 통합된다. 이 경우 주소는 단순화될지 몰라도 동네의 이름 속에 숨 쉬고 있는 역사와 문화는 사장되고 만다.

한편에서는 동명이 사라지는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도로명 주소에 동명을 병기하고, 아파트단지 이름도 함께 쓰는 방안까지 제시한다. 이럴 경우 도로명 주소 도입의 이유 중 하나인 주소 간편화에 따른 효율성의 훼손이 불가피하다.

시행 시기 유예하고 병행 사용 기간 늘려야

일제의 잔재라고는 하나 지번 주소는 장소의 연고를 중시하는 우리 민족의 공간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한양을 비롯한 몇몇 도시를 제외하면 우리의 전통적인 마을과 도시는 계획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집과 집이 모여 동네를 이뤘고, 이들 집을 잇기 위해 길이 만들어졌다.

반면 서구의 도시는 격자형 또는 방사선 모양의 도로를 중심으로 시가지를 형성하였다. 프랑스를 시작으로 서구 국가들이 도로명 주소를 시행하게 된 배경에는 도로를 중심으로 소통하고 도시를 형성한 공간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와 문화의 차이로 인해 도로명 주소체계 도입이 논의된 지 20년이 가깝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새주소 체계를 낯설어 한다. 특히 주소에서 동명이 사라질 경우 도로의 위치가 낯설기 때문에 해당 지역을 인지하는 데 어려움이 발생한다. 지번 주소의 단점으로 지적되는 지번체계의 혼란은 인터넷이 발달하고,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위치를 찾는 데 한결 쉬워진 상황이다.

정부가 장담하는 대로 도로명 주소로 바꾼다고 해서 효율성이 높아지고 3조4000억에 이르는 경제적 편익이 발생하지 않을 개연성이 크다. 오히려 현재의 준비 상태에서 주소체계를 변경할 경우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주소체계의 개편은 오랜 시간과 과정을 통해 국민들의 의식과 생활 속에 정착되어야 할 문제이다. 적어도 한 세대 이상의 안정화 기간이 필요하다. 보다 긴 시간을 갖고 도로의 정비와 동명으로 표현되는 지역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도로명 주소 시행을 한 달 앞둔 지금, 정부와 국회는 국민들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행 시기를 유예하고, 지번 주소의 병행 사용 기간을 늘려야 한다. 이를 통해 나타나는 문제점을 보완하고 제도를 정비하면서 보다 개선된 주소체제를 안착시켜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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