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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지방경찰청이 도내 시민사회단체를 대상으로 사찰을 벌인 정황이 추가로 발견되면서, 경찰에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사찰 피해 단체를 중심으로 '불법사찰 프락치 공작 진상규명을 위한 강원지역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구성하고, 경찰에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한편 법적 대응을 강구한다는 방침이다.

대책위는 26일 사찰 문건을 추가 공개하면서, "이 문건은 이전(지난 19일)에 공개한 것과는 조금 다른 내용"으로, "민주노총 내에서 공개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조직의 구성원들에 대한 사찰은 물론이고, 민주노총 전 강원지역본부장에 대해서는 가족들에 대한 사찰까지 진행했다"고 밝혔다(관련기사 : 작전명 '대덕산'... 강원경찰청, 민간인 공작수사 파문).

강원지방경찰청이 시민사회단체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한 내용을 담은 보고서 내용 일부. 시민사회단체들을 "불법사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신상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시민단체에서 부분적으로 검은 칠을 했다.
 강원지방경찰청이 시민사회단체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한 내용을 담은 보고서 내용 일부. 시민사회단체들을 "불법사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신상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시민단체에서 부분적으로 검은 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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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위가 이번에 추가로 공개한 문건은 경찰이 김희준 전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장과 함께 최아무개씨 등 민주노총 조합원 4명을 대상으로 사찰을 실시한 보고서 3건이다. 이 보고서들은 각각 2010년 3월과 6월, 그리고 2011년 6월 사이에 작성됐다. 이 문건들은 경찰이 사찰 대상자들을 상대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찾아내기 위해 지속적으로 사찰을 벌여온 정황을 드러내고 있다.

'2010년 3월 문건'은 민주노총 현장조직인 '민주노동자 전국회의' 회원 4명을 사찰한 내용으로, 이 문건에는 민주노동자 전국회의 창립 선언문과 강령을 비롯해, 조직 활동 사항 등을 조사한 내용이 적혀 있다. 그리고 '조치 및 의견'으로는 "(사찰 대상자들의) 수시 접촉 인물 및 지속적인 수사를 하여 실적 거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적었다.

'2010년 6월 문건'은 앞서 3월에 사찰을 벌인 인물들의 '가족관계'와 '전과관계' 등을 조사한 내용이 적혀 있다. 이 문건은 경찰의 사찰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폭 넓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문건에는 특히 경찰이 '네이버'와 '다음' 등의 포털 사이트로부터 사찰 대상자들의 개인정보를 건네받은 사실까지 적혀 있어 심각성을 더해준다.

강원지방경찰청이 포털 사이트로부터 사찰 대상자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내용 일부.
 강원지방경찰청이 포털 사이트로부터 사찰 대상자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내용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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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지방경찰청이 작성한 시민사회단체 사찰 보고서 일부.
 강원지방경찰청이 작성한 시민사회단체 사찰 보고서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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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사이트들이 경찰에 제공한 개인정보에는 이메일 주소와 아이디는 물론이고, 주민번호, 집 주소, 집 전화번호, 휴대폰 번호 등이 모두 들어 있다. 그리고 이 보고서들에는 또 지난 19일에 공개한 문건들과 마찬가지로 '협조자' 항목이 적혀 있다. 대책위는 이 내용을 두고, 경찰이 '국정원의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공작 사건'처럼 시민사회단체 내부에 프락치를 심어두고 정보를 수집해 온 것으로 보고 있다.

'2011년 6월 문건'은 김 전 본부장을 자세히 사찰한 내용을 담은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에는 '가족관계증명서'와 '주민등록표 등·초본'까지 첨부한 것으로 되어 있어, 경찰 사찰이 개인의 사생활까지 파고들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문건에는 김 전 본부장의 성향과 성장과정을 비롯해 주소 변동사항까지 자세히 기록돼 있다.

시민사회단체, "불법사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요구

26일 강원지방경찰청 앞에서 '불법사찰 프락치공작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강원도 시민사회단체들.
 26일 강원지방경찰청 앞에서 '불법사찰 프락치공작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강원도 시민사회단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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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위는 26일 민주노총 사찰 문건을 공개하는 동시에, 강원지방경찰청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을 맹렬히 비난했다. 대책위는 "강원지방경찰청이 지역 시민단체들에 대한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불법사찰과 프락치 공작을 벌인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됐다"며, "불법사찰과 프락치 공작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또 사찰 대상자들이 함께 참석해 경찰청이 자신들 몰래 사찰을 벌여온 데 거세게 항의했다. 사찰 대상자들은 경찰 사찰에 가족들까지 포함된 데 크게 반발했다. 그리고 최근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이 정치 쟁점화 되면서 박근혜 정부가 진보 진영에 정치적인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도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김 전 본부장은 "(사찰 소식이 알려지고 나서 부인한테서) 이제 두메산골로 들어가거나 이민을 가거나 하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듣고 참담했다"며, "도대체 이 나라 경찰은 잡으라는 범죄자는 잡지 않고, 아무 범죄 행위도 드러나지 않은 사람들을 범죄 사실이 있는 것처럼 사찰한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요즘 박근혜 대통령이 국론분열은 묵과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하고 있는 것에 참으로 경악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며, "민주 사회에서는 누구나 자기주장을 할 수 있는데도, 정부에 대해 비판만 하면 사찰의 대상이 되고, 또 감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창피스럽고 한심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사찰 대상자 중에 한 사람인 최아무개씨는 "(문건에) 내가 국가보안법 위반자로 나와 있는데, 어떤 사유로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경찰 사찰에 의문을 나타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경찰이 이 사회 진보 세력, 민주 세력을 어떤 식으로든 (국가보안법으로) 옭아매려는 것을 보면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운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씨는 "사찰 사실이 알려진 후, 주변에서 '만약에 긴장 정국이 조성되면, 다 (경찰에 잡혀) 들어가는 것이 아니냐'고 하는 말까지 들었다"며, 이후 사찰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불안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불법사찰에 희생을 당했는데, 여전히 대한민국에서는 사찰과 프락치 공작이 진행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사찰에 항의하기 위해 경찰청 안으로 들어서려는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을 막아서고 있는 경찰.
 사찰에 항의하기 위해 경찰청 안으로 들어서려는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을 막아서고 있는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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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위는 이날 기자회견문을 통해, "경찰의 이런 행위는 합법적인 수사가 아니라 불법적인 사찰"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강원지방경찰청장은 어떤 근거로 이 같은 불법 사찰을 진행했는지, 누구의 지시가 있었는지, 어느 선까지 사찰을 진행했는지 지금이라도 명백히 밝히고 시민사회단체의 면담 요청에 떳떳하게 응할 것"을 요구했다.

대책위는 기자회견이 끝난 후, 경찰청 책임자 면담을 시도했다. 하지만 대책위 대표들은 이날 책임자를 면담하기는커녕, 경찰청 안으로 발을 들여놓지도 못했다. 경찰이 대책위 대표들의 앞을 가로막은 채 길을 열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원지방경찰청은 이날 공식적으로 면담을 거부하며, "(사찰은) 법령에 근거한 정상적인 경찰 직무활동"임을 재차 강조했다.

대책위는 앞으로 "경찰의 불법사찰에 단호하게 대응"하기 위해 "지역의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정당, 추가 피해자들과 연대하여 1인 시위를 진행하는 등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활동을 확대"하기로 했다. 추가로 나타나는 사찰 피해자들과는 연대를 모색하는 한편, 사찰을 벌인 경찰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태그:#강원도경찰청, #국가보안법, #불법사찰, #프락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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