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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시간제 일자리 채용 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채용공고를 보고 있다.
 2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시간제 일자리 채용 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채용공고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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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경력단절 2년 이상, 여기 해당 안 되면 올 필요 없어. 생색은 정부랑 기업들이 내고 나머지는 들러리야."

경기도 광주에서 일하는 유승기(54, 가명)씨는 26일 직장 점심시간을 이용해 서울 삼성동 코엑스를 찾았다. 정년을 앞두고 정부가 주최한 '시간제 일자리 채용 박람회'를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박람회장을 둘러본 유씨는 곧 자신이 지원할 만한 회사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씨는 "일단 (서류를) 놓고 가라고는 하는데 경력단절 여성 우대라고 하고 그나마 많이 뽑지도 않는다"고 설명했다.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는 삼성, 롯데, LG 등 재계 10대 그룹과 함께 이날 박람회장에서 시간선택제 인력 3500여 명을 채용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장을 방문한 구직자들은 이런 정부 방침이 "과장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30대에서 40대 사이의 여성 구직자들은 박람회 구성과 취지에 대해 대체로 호평했지만 나머지 구직자들은 '생색내기'라는 반응이었다.

'시간제 일자리 채용 박람회'에 온 구직자들이 삼성그룹 부스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시간제 일자리 채용 박람회'에 온 구직자들이 삼성그룹 부스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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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단절 젊은 엄마들 "전반적으로 만족"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자신의 상황에 맞게 근로시간을 선택해서 일할 수 있는 직장을 말한다. 하루 4~6시간 일하고 시간에 비례해 적은 임금을 받지만 근로조건, 복리후생 등에서 전일제 근로자와 차별이 없어 결혼이나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됐거나 육아로 고민하는 여성들에게 유리한 일자리로 꼽힌다.

이날 박람회장을 방문한 구직자들도 절반 이상이 30~50대 여성이었다. 서울시 묵동에서 온 김진경(41)씨는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을 그만뒀는데 시간제로 일하면 아이 학원비 정도는 댈 수 있을 것 같아 알아보러 왔다"며 "대기업들도 이렇게 나서주고 좋은 행사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어 통역 분야 일자리를 알아보러 나온 주부 황지연(가명)씨도 "전반적으로 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직장을 그만둔 지 9년이 지났지만 기업 담당자를 만나보니 (취업)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황씨와 함께 온 이아무개(43)씨는 "대기업 계열사들만 있다보니 지원 가능한 업종이 한정되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출판업계에서 일했던 이씨의 경우, 경력을 활용할 만한 일자리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황씨와 이씨는 이날 행사와 관련 인상이 좋았던 기업으로 CJ와 신한생명을 꼽았다. 기업이 제시한 근무 시간이 판단 근거였다.

황씨는 "삼성은 아침 8시~12시, 오후 2시~6시로 근무시간을 짰는데 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이 시간이 일하기 어려운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이씨는 "CJ는 10시부터 3시, 신한은행을 12시부터 4시 30분까지를 근무시간으로 제안했다"면서 "실제로 엄마들을 뽑으려고 시간 계산을 해봤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날 박람회장에서는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몰리면서 체력이 약한 일부 여성 구직자들이 의자를 찾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돌리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장에서 방문객들에게 무료로 커피와 빵을 나눠줬던 신세계 스타벅스 관계자는 "오후 1시 기준으로 나간 물량이 3000세트"라고 설명했다.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온 정아무개(52)씨는 "대기업 간판은 보이는데 면담은 받을 수가 없다"면서 "10시 30분에 왔는데 상담이나 받고 가려나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시간제 일자리 채용 박람회'에 온 구직자들.
 '시간제 일자리 채용 박람회'에 온 구직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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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채용 때문에 왔는데... 그런 곳은 별로 없어"

행사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경력단절 여성들과는 달리 20대 구직자들과 50대 남성들은 대체로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박람회"라고 입을 모았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9일 박람회 취지에 대해 "결혼이나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되었거나 육아로 인해 고민하고 있는 여성 및 구직자, 정년 이후의 중·장년층 및 시간제일자리에 관심 있는 청년 구직자를 위한 채용의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실상은 고려 대상이 '경력단절 엄마'로 한정되었다는 것이다.

경기도 구리시에서 온 이명우(48)씨는 "면담을 해보니 여성이면 가산점이 있고 경력단절 2년 이상이면 또 가산점을 준다고 했다"면서 "그래도 지원할 거면 놓고 가라는 식인데 남자는 시간제 일자리 일 못한다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서울시 관악구에서 온 김아무개(27)씨는 낮은 임금수준을 거론했다. 프랑스에서 14년 거주경력이 있는 김씨의 지원분야는 프랑스어 통·번역.

김씨는 "삼성그룹에 관심이 있어서 면담을 했는데 제시하는 가격이 통·번역 시장가격보다도 한참 낮다"고 지적했다. 하루 4시간 통·번역 근무에 월급 100여만 원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박람회장에 아들을 데리고 온 이아무개(35)씨는 "현장에서 면접을 보고 채용이 되는 줄 알고 왔는데 막상 둘러보니 그런 곳은 별로 없는 것 같아 실망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 기업 부스에서 나눠주는 취업 정보들은 인터넷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것들"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이곳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방문해 구직자들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삼성, 롯데 등 그룹 부스와 현장에 설치된 간이 탁아소 등을 방문하고 박람회장을 떠났다.

26일 '시간제 일자리 채용 박람회'를 찾은 박근혜 대통령.
 26일 '시간제 일자리 채용 박람회'를 찾은 박근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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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시간제일자리, #고용노동부, #박근혜, #여성취업,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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