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에릭 사티>에서 에릭 사티의 연인 수잔 발라동 역을 맡은 배우 배해선.

뮤지컬 <에릭 사티>에서 에릭 사티의 연인 수잔 발라동 역을 맡은 배우 배해선. ⓒ 안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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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주연인 뮤지컬을 휩쓴 배우가 있다. 오늘 소개하는 배해선이다. 그는 <에비타><시카고><아이다><맘마미아!> 등 여타 뮤지컬보다 여성 주인공의 비중이 높은 작품에서 주인공을 놓치지 않아왔다. 

그럼에도 배해선은 "관객과 만나는 것이 두려웠다"고 고백한다. "어릴 적 끼도 많고 재능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배우로 관객 앞에서 무대에 선다는 건 제가 거울에 서는 것처럼 깨끗해야 한다"며 "알을 까는 것 같은 과정이 고통스러웠다"고 말이다.

어릴 적부터 사람들 앞에 나서서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던 그의 입에서 나오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답변이었다. 배우의 연기 스킬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인간성 자체가 순수해야 좋은 연기를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다는 그의 순수성으로 말미암은 대답이 아니던가. 연기보다도 사람 됨됨이를 중요시할 줄 아는 배우 배해선을 15일 대학로에서 만났다.

 뮤지컬 <에릭사티>에 출연하는 배해선과 박호산.

뮤지컬 <에릭사티>에 출연하는 배해선과 박호산. ⓒ 안산문화재단


- 2009년 <피카소의 여인들>에서는 피카소를 사랑한 연인 프랑수와즈를 연기했다. 이번 <에릭 사티>에서는 그의 친구 에릭 사티의 연인 수잔 발라동을 연기한다. 두 인물의 이해관계에 대해 들려 달라.
"두 여성은 예술가의 연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아티스트였다. 이런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어 행운이다. 수잔 바라동은 모델이면서 화가였고 프랑수와즈는 집안이 부유하고 지적인 화가였다. 피카소에게는 많은 여자가 있었다. 피카소의 많은 여성들은 피카소에게 매달리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프랑수와즈는 유일하게 피카소를 찬 여자다."

- 대개의 뮤지컬에서 여성은 남성의 보조적인 인물로 남는 경우가 많다.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이 별로 없다. 카미유 클로델을 연기했지만 로뎅의 여자로 남는다. <에비타>에서 주역을 맡은 적이 있다. 에비타 역시 아르헨티나에서 추앙받다시피 하지만 에바 페론이라는 남편이 있었기에 그 위치까지 오를 수 있었다. 남성의 아우라에서 벗어나 큰 인물로 자리매김한다는 게 여성으로서는 평생의 숙제다.

이번 작품을 하며 느끼는 게 있다. 수잔 바라동이 여성 예술가로 설 수 없던 시대에 화가로서의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건 그녀의 남성 편력을 무시할 수 없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자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자아가 강하고 열정적인 여자가 수잔 바라동이다."

"받은 기회 나누려 봉사...도리어 치유 받는 느낌"

- 많은 배우나 스태프가 함께 작업하고 싶은 배우로 배해선씨를 손꼽는 경우가 많다.
"저 스스로를 돌이켜 볼 때 다른 배우에 비해 무엇을 잘 한다든가 뛰어난 게 별로 없다. 차이점이 있다면 약간 부지런하고 작품과 인물에 대해 조금 더 고민을 하는 편이다. 무대에서는 완벽하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대신 상황과 인물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본다. 같이 연습하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이런 점을 중요하게 생각해주지 않았을까."

- 균형이라면, 연출가와 배우가 생각하는 의견 차이에서 필요할 텐데?
"바른 소리를 하는 게 다가 아니다. 기분이 상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어느 때에는 과감하게 표현하는가 하면 어느 때에는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센스가 중요하다. 상대와의 균형 감각을 맞춰주는 것도 중요하다. 사석에서는 정말 친하게 지내도, 연습할 때에는 언니나 오빠라고 부르지 않는다.

상대방의 위치를 존중하는 게 중요하다. 공연장에 들어가서 배우와 스태프의 고유한 자리를 인정하고 공적으로 대하면, 하나 해 주실 것을 두 개 해 주는 호의를 베풀기도 한다. '배해선이 끝내주더라'는 칭찬은 제가 듣고 싶은 말이 아니다. '작품이 빛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어릴 적부터 봉사에 관심이 있었다. 배우가 되면서 선물 같은 기회가 많았는데, 이 기회를 저 혼자만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돌려드릴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을 했다."

"어릴 적부터 봉사에 관심이 있었다. 배우가 되면서 선물 같은 기회가 많았는데, 이 기회를 저 혼자만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돌려드릴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을 했다." ⓒ 안산문화재단


- 함께 작업하는 배우 박호산은 어떤가?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다. 진정성이 있고 좋은 사람이면 무대에서 좋은 배우로 관객에게 전해진다. 주인공임에도 전체를 볼 줄 아는 능력, 상대 배우와의 교감은 인간 됨됨이와 연관된다고 본다. 이런 면에서 좋은 배우가 박호산이다. 전작 <내사랑 내곁에>에서는 상대역이 아니어서 무대에서 마주한 적이 없었다. 이번에는 에릭 사티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여인 수잔 바라동으로 만난다. 상대로 탐나는 배우다."

- 재능 콘서트나 기부 활동을 많이 하는 걸로 알려졌는데.
"세상사는 걸 커다란 원이라고 생각한다. 제 나이 서른 셋 이후로 사람과 인생에 대해 많은 걸 생각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대해서 배우 자신이 어떤 메시지를 갖고 무대에 오를 것이며, 어떤 눈으로 사람을 바라볼 것인가에 관한 시각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봉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봉사에 관심이 있었다. 배우가 되면서 선물 같은 기회가 많았는데, 이 기회를 저 혼자만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돌려드릴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을 했다. 선생님은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가르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외롭다고 생각할 때 한 발자국만 떼면 누군가가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고 싶었다.

가수 션씨가 좋은 병원을 짓겠다는 제안에 '얼마든지 저를 활용하라. 어떤 모금 운동이든 하겠다'는 답을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많은 아티스트와 재능기부로 후원을 하기도 했다. 꿈은 있지만 배움의 기회가 없는 소년 소녀 가장에게 다가가서 보듬어주는 시간도 가졌다. 누군가와의 나눔을 통해 제 마음이 깊어지고 넓어지는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병원에 위문 공연을 가면 얼마 안 있어 돌아가실 것 같은 중증 환자도 있다. 죽음을 목전에 둔 환자가 '내 평생에 잊을 수 없는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할 때, 제가 위안을 드리려고 공연했지만 도리어 치유 받는 느낌이 든다."

에릭 사티 배해선 수잔 발라동 피카소 프랑수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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