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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천근만근 무겁다. 직장에서 돌아오니 녹초가 됐다. 더구나 요즘 다이어트를 한다고 밥도 줄이고, 당이 들어간 음식은 피했더니 더욱 힘들다. 아까 동료들이 간식으로 분식을 먹을 때도 유혹을 참느라 진땀을 뺐다. 저녁은 굶기로 한다. 흔들리지 말자, 조금만 참자.

씻고 잠깐 한숨 돌렸더니 벌써 열시가 다 돼간다. 허기지다. 치킨이 아른거린다. 하루 종일 잘 참았는데, 하필 왜 이 시간만 되면 흔들릴까. 속으로 마음을 다잡지만 손은 전화기를 집어 들고 있다. 입은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내뱉고 두뇌는 '아침도 조금, 점심도 조금, 군것질은 안 했으니 먹어도 돼'라며 자기합리화를 시작했다. 그렇게 치킨은 도착하고 '한 입만 먹자'란 생각은 '이왕 이렇게 된 거'로 바뀐다.

앙상한 뼈를 앞에 두고 후회가 시작된다. 차라리 아침이랑 점심을 든든히 먹을 걸. 엉엉. 난 왜 밤만 되면 식욕이 왕성해지는 걸까. 내내 고비의 순간들은 잘 넘겼으면서 하필 잠들기 전에 말이야.

유혹을 떨쳐내는 데도 에너지가 소모된다

댄 애리얼리의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겉표지
 댄 애리얼리의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겉표지
ⓒ 청림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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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너무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니까. 당신만 그런 게 아니다.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도 이런 현상이 궁금했다. 그는 간단한 실험을 했다. 두 집단에게 각각 두 자리 숫자와 일곱 자리 숫자를 잠깐 본 뒤 복도를 지나 실험 진행자에게 제시받은 숫자를 말하게 했다.

틀리지 않는 사람에겐 과일 샐러드와 초콜릿케이크 중 원하는 음식을 주겠다고 했다. 그 결과 일곱 자리 숫자를 외워야 했던 집단에서 초콜릿케이크를 선택한 비율이 더욱 높게 나왔다.

일곱 자리 숫자를 기억해야 했던 사람들은 그 작업에 인지 기능을 더 많이 써야 했다. 따라서 본능적인 욕구에 저항할 힘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즉각적인 만족을 주는 유혹에 더 많이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로이 바우마이스터 교수는 '자아고갈'이라 명명했다. 욕망을 이겨내는 데는 에너지가 소모되며,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의지력은 점점 더 줄어든다는 것이다. 결국 하루 종일 수많은 유혹에 '안 돼'라고 외치다 보면 나중에는 저항하는 힘이 점점 약해져 결국 항복할 확률이 높다.

사실 이 실험은 치킨회사나 의과대학에서 한 실험이 아니고, 보통 사람들이 일상에서 부정행위에 내몰리는 이유를 분석하며 하게 됐다. 피로도와 부정행위의 관계에 대해서 말이다. 댄 애리얼리가 쓴 <거짓말 하는 착한 사람들>은 이처럼 인간이 부정행위에 끌리는 상황들을 설정하고 파헤친다. 

서문에 소개된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워싱턴에 있는 '케네디예술센터'는 이 단체의 선물 매장에서 판매하는 물품의 재고를 관리한다. 이곳에는 300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일하고 있는데, 대부분 연금과 음악을 사랑하는 은퇴자들이다. 그런 형태다 보니 아무래도 분위기가 자유스러웠다. 금전등록기 따윈 없었고 현금 상자만 있었다. 기록하지 않아도 자원봉사자들은 누구나 현금 상자에 돈을 넣고 거스름돈을 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곧 위기에 봉착한다.

문제는 심각했다. 총 매출액 40만 달러 중 15만 달러 상당의 현금과 물품이 해마다 어디론가 새나갔다. 후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도둑은 한 사람이 아니었고 다수가 조금씩의 부정행위를 한 결과였다. 예술을 사랑하고 자원봉사에 나선 선량한 노인들이 현금 상자에서 돈을 빼내고 매장의 물품을 몰래 빼돌렸다는 얘기다. 

"세상 사람들 중 1퍼센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지요. 또 1퍼센트는 어떻게든 자물쇠를 열어 남의 것을 훔치려 합니다. 나머지 98퍼센트는 조건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 동안에만 정직한 사람으로 남습니다. 이 사람들은 강한 유혹을 느끼면 얼마든지 정직하지 않은 사람 쪽으로 옮겨갑니다. 당신이 아무리 자물쇠로 문을 꼭꼭 잠가도 도둑이 털려고 마음먹는다면 얼마든지 당신 집에 침입할 수 있습니다. 자물쇠는 문이 잠겨 있지 않을 때 유혹을 느낄 수 있는, 대체로 정직한 사람들의 침입을 막아줄 뿐이지요."(60쪽)

'착한' 사람들의 적당한 '부정행위'

책에서는 흥미로운 실험들이 펼쳐진다. 지극히 평범한 실험 대상을 모집해 일상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변수들을 설정한다. 시험 점수를 슬쩍 올리는 학생들, 택시기사가 일부러 길을 돌아가도 모를 시각 장애인에게 더 관대했던 이유, 냉장고에 지폐와 콜라를 넣어뒀더니 지폐는 고스란히 남고 콜라는 모두 사라졌던 실험 결과, 남에게 더욱 큰 피해를 입히는 금융 사기꾼들이 왜 좀도둑보다 자신들의 도덕성이 더 높다고 착각하는지, 부정행위와 신체 거리와의 관계, 짝퉁 선글라스가 정직함에 미치는 영향, 부정행위의 전염성, 이타적 부정행위 등등.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이란 얼마나 부정행위에 쉽게 내몰릴 수 있으며, 그럼에도 스스로는 '착하다'라고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 수 있다. 인간은 결코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고 지극히 '불완전하고 비합리적'인 존재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좀 불편하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이를 극복해야 사람들이 내리는 의사결정을 추동하는 진짜 요인을 마주할 수 있다. 스스로는 절대 알 수 없다. 항상 '정직한 사람'으로 남고 싶기 때문이다.

부정행위의 규모나 수준은 도덕성에 대해 사람들이 저마다 갖고 있는 기준과 관련이 있음을 의미한다. 요컨대 우리는 자기 자신을 정직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부정행위를 저지른다.(40쪽)

인간은 욕망을 가진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를 적절한 규칙과 질서로 통제하지 않으면 부정이 일어난다. 우리가 진정 공정한 사회를 원한다면,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부정행위의 추악함을 정확하게 알아야 하며,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실체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희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어리석음을 극복할 힘이 우리에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적절하지 못한 행동을 실제로 유발하는 실체가 무엇인지 좀 더 체계적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통제하고 결점을 바로잡을 방법들을 찾아낼 수 있다. 이것이 사회과학의 진정한 목적이다.(317쪽)

덧붙이는 글 |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댄 애리얼리 지음, 이경식 옮김, 청림출판 펴냄, 2012.07, 1만6천원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 우리는 왜 부정행위에 끌리는가

댄 애리얼리 지음, 이경식 옮김, 청림출판(2012)


태그:#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댄 애리얼리, #청림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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