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올 이즈 로스트>의 포스터

영화 <올 이즈 로스트>의 포스터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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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위기가 다가오기 전날 밤의 미국 월가를 다룬 영화 <마진콜: 24시간, 조작된 진실>은 자기들만 빠져나가려는 월가 사기꾼들의 모습을 통해 금융이라는 신기루를 우화적으로 비판했다. 케빈 스페이시, 제레미 아이언스, 데미 무어, 사이먼 베이커, 재커리 퀸토 등 연기력이 탄탄한 배우들과 폭풍 전야의 고요함과 긴장감을 영민하게 조성했던 J.C. 챈더 감독에게 세계 영화계는 찬사를 보냈다.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J.C. 챈더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 <올 이즈 로스트>는 <마진콜: 24시간, 조작된 진실>과 비교하자면 무척이나 낯선 형태다. 보통의 영화가 지닌 기승전결의 드라마를 지워버리고, 배우는 단 한 사람만을 등장시키는 미니멀한 영화를 시도한 것이다.

 <올 이즈 로스트>의 한 장면

<올 이즈 로스트>의 한 장면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인도양을 홀로 항해하던 한 남자(로버트 레드포드 분)가 바다를 떠다니던 선적 컨테이너와 충돌한 후 자신의 요트에 바닷물이 들어오는 것을 발견하면서 시작되는 <올 이즈 로스트>는 이후 살고자 하는 남자의 힘겨운 사투를 조용히 관찰한다.

남자는 항해 장비와 라디오를 사용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 거센 폭풍우와 마주한다. 어렵사리 폭풍을 헤치고 나오지만, 구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가지고 있던 보급품은 하나둘씩 줄어 간다. 그러나 폭풍은 가만두질 않겠다는 듯 그를 쉬지 않고 괴롭힌다.

<올 이즈 로스트>에는 이야기라고 할만한 부분이 없다. 영화는 그의 이름조차 묻지 않은 채 자신을 삼키려는 태양, 바다, 상어 등에 맞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 남자의 8일간의 처절한 생존기를 묵묵히 기록할 뿐이다.

대사도 제한적이다. 초반부에 남자의 내레이션이 있지만 이후 무전기로 구조를 요청하는 몇 마디, 살려달라는 외침, 좌절에 빠진 절규 등이 메아리치는 정도라 딱히 대사라고 하기도 힘들다. 영화에는 맞서 싸우는 남자의 행동만이 존재한다.

바다라는 거대한 공연장에서 남자가 마주하는 상대 배우는 배, 폭풍우, 상어 등이다. 영화는 극한 상황에서 살겠다는 희망과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절망이 뒤섞인 남자의 목소리를 바다 위에 장엄하게 울려 퍼지게 한다.

 <올 이즈 로스트>의 한 장면

<올 이즈 로스트>의 한 장면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올 이즈 로스트>는 끊임없이 다가오는 재난을 통해 남자가 겪은 위기를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느낌이 든다. 또한 남자의 처절한 사투는 보통의 인간이 경험하는 인생사의 궤적과 맞물리며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끝까지 맞서 싸워야 한다는 목소리와 이제 그만두고 쉬고 싶다는 목소리가 계속 교차한다. 영화의 상황은 곧 삶의 파고와 같다.

인간이 얼마나 끈질긴 존재인지 작심하고 보여주는 <올 이즈 로스트>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걸작 <노인과 바다>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물고기와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상어에 맞서 싸우던 <노인과 바다>의 노인과 <올 이즈 로스트>의 남자는 다른 화법으로 쓰였지만 결국은 고통이란 종이 위에 생존이란 언어로 쓰인 삶을 산 같은 인물이다.

영화의 시작부에 남자는 "난 모든 것을 잃었고, 만신창이가 된 영혼과 몸뚱이만이 남았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끝까지 싸웠노라"고 당당히 말한다. 남자의 고백은 시간이 지날수록 진실하게 다가온다. 관객은 그가 살기 위해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생생히 느낀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비로소 그가 얻은 삶의 가치는 숭고하게 다가온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나온 "파멸 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는 문구처럼 그는 지지 않았다.

 <올 이즈 로스트>의 한 장면

<올 이즈 로스트>의 한 장면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라이프 오브 파이>의 울림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할리우드는 <그래비티>와 <올 이즈 로스트>라는 두 편의 생존기를 동시에 내놓았다. <그래비티>는 인간이 쉽사리 가보지 못하는 우주에서 펼쳐진 한 여자의 삶을 보여주면서 새롭게 태어나는 의지를 다뤘다. 반면 <올 이즈 로스트>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바다라는 무대를 통해 삶의 의미를 끄집어낸다.

각기 다른 무대와 배우, 이야기지만 <그래비티>와 <올 이즈 로스트>는 결코 삶을 포기하지 말라고 한목소리로 외친다. <해프닝>과 <테이크 쉘터> 등에서 감지된 불안과 두려움은 이제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로 바뀌었다. 삶은 생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듯 말이다.

이전에 소설 <노인과 바다>를 영화로 만들었던 작품이 단순히 책을 영화로 옮기는 선에 머물렀다면, J.C. 챈더 감독은 미국을 대표하는 배우인 로버트 레드포드를 영화의 언어로 사용하면서 <올 이즈 로스트>를 영화가 쓴 <노인과 바다>로 창조했다. <올 이즈 로스트>는 우리 시대의 걸작이 될 자격이 충분한 영화다.

이런 결과물의 일등공신은 단연 로버트 레드포드다. <내일을 향해 쏴라>의 잘생긴 선댄스 키드에서 이젠 세월의 무게가 육신에 새겨진 노쇠한 배우가 된 로버트 레드포드는 일생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연 아카데미가 지금껏 (감독으로는 인정해도) 배우로는 애써 외면했던 로버트 레드포드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줄 것인지 궁금하다.


올 이즈 로스트 J.C. 챈더 로버트 레드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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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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