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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끝난 3학년 공식 일정표에 '책 버리는 날'이 잡혔다. 어제(13일)였다. 오전 9시 30분. 커다란 트럭 한 대가 학교 주차장으로 들어선다. 3학년 각 반 교실에 3학년 부장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지금 본관 현관 앞에 책 수거 차량이 와 있습니다. 3학년 학생들은 교실에 있는 책을 정리해 2층으로 내려와 책을 버리기 바랍니다."

학교가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교무실에 있는 선생님들까지 난리다. 개인 보관함과 책상 아래에 쌓아두었던 각종 책들이 끌려나온다. 마치 모두 그 순간을 기다린 듯하다. 평상시 느려터졌던 아이들은 다른 때와 달리 일사불란하기만 하다.

책이 죽임을 당하는 날, 사람들은 흥겹다

'책 버리는 날' 죽어간 책들 모습
 '책 버리는 날' 죽어간 책들 모습
ⓒ 정은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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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는 3년, 짧게는 1년을 동고동락한 책들이다. 그 시간만큼의 손때와 땀이 묻어 있다. 힘들게 공부하다가 내뱉은 한숨이 책속에 숨어 있을 것이다. 어느 책장 갈피에는 미래에 대한 벅찬 상상의 그림도 그려져 있을지 모른다. 한글 자모로 새겨둔 짙은 고민의 흔적도 새겨져 있겠지.

그 모든 것이 담긴 책들을 아이들은 가차없이 내던진다. 너무나 후련해서 아무 미련도 없는 듯한 몸짓이다. 지난날의 기억과 추억을 버리는 날인데도, 아이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책 버리는 날'은 '책이 죽임을 당하는 날'이다. 그런데도 그 주인이었던 사람들은 사뭇 흥겨운 잔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애먼 책들이 뭐라 할까. 추락하고 널부러져 있는 책들 모습이 아프다.

책이 흔한 시대다. 너무 흔해서 제 대접을 받지 못한다. 아이들이 쓰는 교과서와 문제집이 그렇다. 한 번 보고 책상 아래로 내던져 버리는 소설책은 또 얼마나 많은가. 책을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책 구하기도 쉽다. 책 버리기? 이렇게 학교에서조차 '공식적으로' 배려해 주니 일도 아니다.

집 한 채 팔아봐야 책 6~7권 살 수 있던 시절

책의 운명이 원래 이랬던 것은 아니다. 과거에 책을 만드는 일은 국가적인 정책 사업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국립인쇄기관까지 있었다. 교서감(校書監 )과 서적원(書籍院), 간경도감(刊經都監)이다. 책은 귀했으며, 그만큼 책에 대한 대접도 극진했다. 가령 이런 식이다.

<대전후속록(大典後續錄)>은 1543년(중종 38)에 만들어진 법령집의 일종이다. 이 책에는 아주 흥미로운 벌칙 조항이 들어 있다. 서책 인쇄에 참여한 관리들은 책 1권에 한 자의 오자가 있는 경우 곤장 30대를 맞았다. 책을 찍어내는 민간인 기술자들도 한 자의 착오 이외에 먹이 진하거나 희미한 때 곤장 30대를 기본으로 맞았다.

문제가 되는 글자 수가 다섯 자 이상이 나오면 더 엄중한 벌을 받았다. 서책 인쇄를 담당했던 관리들은 파출(罷黜), 곧 자격 정지를 당했다. 민간인 신분이었던 서책 기술자들은 근무 50일을 감봉했다. 사면 이전에는 정부의 서책 인쇄 작업에 참여하지도 못하게 했다.

<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 표지.
 <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 표지.
ⓒ 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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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는 책에 대한 이야기다. 그 주인공은 우리나라가 아니라 서양의 중세 책이다. 프랑스 리모주 대학의 역사 교수인 저자는 서양의 중세를 '책에 대한 열정'의 시대로 이해한다. 이 책은 그런 서양 중세인들의 책에 대한 열정을 보여준다. 책이라는 귀한 물건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당대의 독자들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했는지를 서술한다. 그런 점에서 서양 중세 시대의 서책에 대한 공시적(共時的) 연구서다.

책의 원래 모양은 어땠을까. '책'의 한자 '冊'은 상형문자다. 죽간목독(竹簡木牘)은 글을 새긴 기다란 대쪽이나 나무쪽이다. 이 죽간목독을 세워 가로로 엮은 모양을 본뜬 게 바로 '冊'이라는 글자다. 두루마리 모양의 책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시대와 고려 전기까지 두루 쓰인 책 양식이다. 이 책에 따르면, 서양 중세에서도 15세기에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에는 이런 두루마리 형태가 많았다.

저자는 오늘날과 같은 책 모양은 '코덱스(codex)'와 '인쇄물'의 발명에 힘입은 것이라고 말한다. 코덱스는 '사각형의 페이지들을 묶은 형태의 책'을 가리키는 말이다. 저자는 코덱스가 높은 휴대성과 공간 활용성 덕분에 두루마리를 즉각 대체하기 시작했다. 최대 수 미터에 달하는 두루마리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읽는 일을 상상해 보라.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서양 중세의 책 문화는 어땠을까. 저자의 꼼꼼한 안내를 따라가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 보자. 글을 쓰기 위한 소재로는 파피루스, 양피지, 종이 등이 있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만 쓰인 것으로 알았던 파피루스가 중세 시대에도 제법 쓰였다는 게 이채롭다. 15세기 당시 종이는 양피지 값의 13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 종이는 그 가격 경쟁력 덕분에 대대적으로 양피지를 대체하게 된다.

중세 초기에 책이 만들어지던 곳은 주로 수도원이었다. 하지만 대학도시가 발전하면서 학생들이 많아지자 도시 공방의 필경사들 손에서 많은 책이 만들어지게 된다. 자연스럽게 책 시장이 생겨난 것이다. 서적상들이 책 수요에 맞추기 위해 학생들을 필경사로 채용하기도 했다. 서책 조합이 생겨난 것도 이 무렵이라고 한다.

책값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시기 책들은 모두가 수서본(手書本)이었다. 필경사 한 명이 하루 평균 세 쪽을 필사한다면 200장, 곧 400쪽짜리 책 한 권을 필사하는 데 약 두 달 반이 걸린다. 책을 장식하고 묶는 채식사와 제본사 비용도 있다. 비쌀 수밖에 없었다. 대형판 성서 제작 비용이 중세 말 보통 크기 장원의 연간 수입에 해당하는 액수였다고 한다. 도시 가옥 한 채 평균가가 100리브르였을 때 책 한 권이 15리브르였다고도 한다. 집 한 채를 팔아봐야 고작 6, 7권의 책밖에 살 수 없었던 셈이다.

책 도둑과 관련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중세에는 책 도난을 막기 위해 책에 무거운 쇠사슬을 달아놓은 대학 도서관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의외로 책 관리나 감독은 전반적으로 엄격하지 못했다. 그래서 책 주인들이 개별적으로 다음과 같은 경고문을 써둔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은 파리 생빅토르 소유이다. 이 책을 훔치거나, 이 경고문을 숨기거나 지우는 자는 천벌을 받을지어다. 아멘. (111쪽)

'손바닥 위의 코덱스', 중세인들이 본다면?

책이 보편화하기 시작한 것은 종이가 대량으로 퍼지면서부터였다. 이에 발맞춰 본격적인 책 수집가와 애서가도 생겨났다. 그들의 취향에 맞는 독특한 책들도 많이 만들어졌다. <아주 작은 시도서>는 프랑스 샤를 8세의 왕비를 위해 1490년경에 만들어진 책이다. 이 책은 가로 4.5센티미터, 세로 6센티미터의 크기로 중세 시대 책 중 그 크기가 가장 작다. 저자는 이렇게 작은 책을 만드는 일이 거의 '묘기'에 가까웠다고 평가한다.

오늘날 책 읽기는 거의 모두 묵독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당시에는 집단 낭독이나 구술이 좀 더 지배적인 책 읽기 방식이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장미의 이름>을 보면 중세 수도사들이 성경을 집단 낭독하는 장엄한 광경이 인상적으로 펼쳐진다.

우리나라에서도 근대 이전 한글 문헌들을 보면 '하고, 하니, 해서' 등의 연결어미로 문장이 길게 이어지는 장문체(長文體)가 많다. 일정한 음절 수가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면서 리듬감을 자아내는 율문체(律文體)도 특징적이다. 이들 모두 낭독이나 구술의 편의를 위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책이 글의 문체에도 영향을 준 것은 우리나 서양이나 마찬가지다.

중세 서양에서 책이 귀한 대접을 받은 데에는 종교적인 요인이 컸다. 저자는 기독교가 서구에 전파되면서 책이 신성한 성격을 띠게 되었다고 말한다. 손에 성서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곤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그 단적인 증거다. 성서 한 권을 만드는 데 200마리의 양과 18개월간의 고된 노동이 필요했다니 두 말 해 무엇하랴.

오·탈자를 범한 공무원과 기술자를 곤장으로 벌한 우리 조상이 오·탈자에 무감한 오늘날 우리를 보면 뭐라 하실까. 책 도난을 막기 위해 책에 무거운 쇠사슬을 매달아 놓은 서양의 중세인이 '책 버리는 날'과 같은 문구를 보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손바닥 위의 코덱스(휴대전화)'에 온갖 새롭고 진귀한 정보가 펼쳐지는 세상이다. 그들이, '손바닥 위의 코덱스'에 푹 빠진 오늘날 우리들을 본다면 서로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을까. 각자 고개를 수그린 채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게, 책을 귀히 여기고 즐겨 읽었던 우리 중세인과 똑같으니 아름답다고 말할까.

<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 (소피 카사뉴 브루케 지음, 최애리 옮김 | 마티 | 2013. 10. 25 | 303쪽 | 1만 8천 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

소피 카사뉴-브루케 지음, 최애리 옮김, 마티(2013)


태그:#<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 #소피 카사뉴 브루케 지음, #최애리 옮김, #마티, #'책 버리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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