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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회 방송하는 <팟캐스트 윤여준> 중 '윤여준 칼럼' 전문을 <오마이뉴스>에 지상 중계합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대통령이 프랑스 방문 중 지난 3일 르 그랑 인터콘티넨털 호텔에서 열린 동포 오찬간담회 인사말에 앞서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프랑스 방문 중 지난 3일 르 그랑 인터콘티넨털 호텔에서 열린 동포 오찬간담회 인사말에 앞서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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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영국과 프랑스, 벨기에 등 유럽 지역 세 나라를 차례로 순방했다. 취임 후 약 9개월 만에 5번째로 가졌던 외국 방문이었다. 대통령이 외교의 전면에 나서는 정상외교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와 방문국간의 관계가 한층 가까워지는 것은 물론이고 때로는 두 나라 사이의 현안을 해결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특히 지금처럼 국제질서가 재편되는 시기에는 정상외교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고 하겠다. 취임 첫해에 UN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지도자 5명과 두 차례 이상 만나게 된다면서 이제 강대국 외교의 큰 틀이 짜진 셈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박 대통령은 이번 순방에서 영국에서는 영어로, 프랑스에서는 불어로 연설을 함으로써 두 나라 국민들에게 친밀감을 심어주었다. 지난 6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도 중국어로 연설한 것이 중국 언론으로부터 커다란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박 대통령이 이처럼 방문하는 나라의 지도자는 물론 일반 국민과도 폭넓고 부드러운 소통을 통해서 한국에 대한 친밀감을 높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박 대통령은 외국 순방에 앞서 그 나라 주요 언론과 인터뷰를 가지기도 했다. 과거부터 내려오는 관행이기는 하나 방문국 언론과의 인터뷰도 그 나라 국민들과 자연스럽게 교감하는 중요한 소통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큰 의문이 생긴다. 박 대통령은 외국의 정치지도자나 국민들과는 이처럼 소통을 잘하면서도 왜 국내의 정치 지도자나 국민들과의 소통은 외면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우선 제1야당 대표와의 회담을 3자니 5자니 하는 사소한 형식 문제를 내세워 두 달 가량이나 질질 끌었던 일이 지금도 기억난다. 이것은 야당 대표와 만나기 싫다는 뜻을 거의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또한 박 대통령은 취임 후 9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국내 언론과는 단 한 차례의 기자회견도 가지지 않은 기록을 세웠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야당 또한 국민의 대표이며, 언론은 국민을 대신해서 권력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언론을 제4부라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대통령은 언론과의 회견을 통해서 그때그때 중요한 국정 현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분명히 국민에게 밝혀야 될 책무가 있는 것이다. 국민의 대표와 만나기를 꺼리고 또 언론과의 회견을 일절 하지 않는 것은 국민과의 소통을 외면하는 처사다.

국외에선 현지어 연설... 국내에선 기자회견 한 번도 안 해

민주당 김한길 대표를 비롯한 의원, 당원들이 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을 위한 9차 국민결의대회'에서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건을 규탄하며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사건과 함께 특별검사법안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 김한길 민주당 대표 "특검 도입하라" 민주당 김한길 대표를 비롯한 의원, 당원들이 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을 위한 9차 국민결의대회'에서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건을 규탄하며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사건과 함께 특별검사법안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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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런 일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박 대통령은 머지않아 불통 대통령이 아니라 '무통(無通)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야당을 무시하고 언론의 견제를 받지 않으려는 태도는 한 마디로 전형적인 권위주의적 리더십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나아가 이것은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강조했던 국민 대통합이라는 시대정신을 스스로가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서 펼치는 정상외교는 매우 중요하지만, 그러나 정상외교는 마약과 같은 측면을 갖고 있다는 점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은 대외적으로는 국가 원수의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화려한 정상외교를 통해 자신의 '초월적 위상'을 확인하고 부각하는 것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정상외교의 외형적 성과물을 통해서 한층 높아진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국내 정치에 투영하려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외교 분야에서의 대통령의 능력은 국가의 안전과 발전에 직결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대통령이 반드시 유념해야 될 중요한 요소가 있다. 뭐냐 하면 민주적 통제력이 작동되는 국내 정치와, 무정부 상태 속의 권력정치가 기본적인 특성을 이루는 국제 정치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국제정치는 명분이나 합리성보다는 힘의 논리, 힘의 정치가 작동하는 냉혹한 세계이다. 지금도 지구상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과 갈등을 통해서 우리는 이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반해서 국내 정치는 특히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적 동의를 얻기 위한 민주적인 명분과 절차를 중시한다. 민주정치, 즉 힘의 정치가 아닌 설득의 정치라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성권력이 아닌 연성권력이라야 된다. 그렇다면 지금 박 대통령의 통치방식을 놓고 볼 때, 경성권력인가? 연성권력인가? 힘의 정치인가? 설득의 정치인가? 어느 쪽인가?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는 힘의 논리를 중시하는 국제정치적 시각을 국내정치에 지나치게 투영하려는 사고 방식이 강하게 작용했다. 지금 국내에서는 여야 간의 극한적인 대립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국가 권력과 사회세력 간의 충돌이 전방위로 확산되는 추세여서 국민들이 몹시 불안해하고 있다.

이러한 심각한 국내 정치 상황을 배경에 놓고 유럽 국가들이 펼치는 화려한 의전 무대에서 환하게 미소 짓는 박 대통령의 모습을 볼 때, 혹시라도 박 대통령이 정상외교에서 만들어지는 자신의 '초월적 위상'을 과거 권위주의 시절의 대통령들처럼 국내 정치에 투영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과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박 대통령이 국가 정보기관과 공권력을 국정운영의 중심에 두는 모습에서 단기적인 역사의 반동을 자꾸만 생각하게 되는 것은 정말 서글프고 걱정스러운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윤여준 기자는 전 환경부 장관이며, <팟캐스트 윤여준> 진행자입니다.



태그:#윤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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