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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기황후>.
 드라마 <기황후>.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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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를 달리고 있는 MBC <기황후>에서는 훗날 몽골 황후가 될 기승냥(하지원 분)의 눈물겨운 인생 역정이 묘사되고 있다. 남장 여인인 그는 고려 땅에 유배 온 몽골 황태제 타환(지창욱 분)을 악착 같이 살려내서 결국 몽골 황제의 자리에 오르도록 만들었다. 참고로, '황태제'는 황제의 형제로서 황위 계승권을 보유한 사람을 가리킨다.

타환을 고려 땅에 유배 보낸 인물은 몽골 조정의 실세인 연철이다. 그의 목표는 타환을 고려 땅에서 죽이는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정적을 제거하여 권력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타환의 죽음을 고려 탓으로 돌려 고려를 자기 손아귀에 두겠다는 것이 그의 구상이었다.

이런 의도를 간파한 고려 충혜왕(주진모 분)은 무사인 기승냥에게 타환의 호위를 맡겼고, 승냥은 몽골인들의 공격으로부터 타환의 목숨을 보호했다. 조선 다모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기생 황진이를 연상케 하는 것 같기도 한 승냥은 남자 무사를 능가하는 무예로 타환을 '너끈히' 보호했다. 이 덕분에 타환은 살아서 몽골로 돌아갔고, 연철과의 극적 타협을 거쳐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승냥이 타환을 위해 목숨을 건 것은 몽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나라 고려를 위해서였다. 타환이 고려 땅에서 죽으면 고려의 종묘사직이 위험해질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고려왕이 볼 때에 승냥은 참으로 따뜻한 의리를 지닌 여자 백성이다.

타환은 그런 승냥을 보면서, 고려왕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승냥에게 푹 빠져 가고 있다. 물론 현재까지 그 감정은, 자기를 구해준 은인에 대한 감정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승냥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사실이 확인되면, 그 감정은 이성적인 것으로 급격히 불타오르게 될 것이다. 승냥이 베푼 은혜는 훗날 그가 몽골 황후가 되는 데에 적지 않은 기능을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기승냥은 탁월한 무예와 따스한 의리로 몽골 황제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물론 이 모든 내용은 드라마 속 이야기다.

드라마 속 의리녀 기승냥, 실제는 어땠을까

 타환(지창욱 분).
 타환(지창욱 분).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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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실제의 기황후는 어떤 방법으로 몽골 황제 토곤테무르칸(드라마 속의 타환, 중국식 명칭은 혜종 혹은 순제)의 마음을 끌었을까? 기황후도 드라마 속의 기승냥처럼 무예와 의리로 토곤테무르칸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중국 측이 기록한 몽골 즉 원나라 역사서인 <원사>의 '기황후 열전'에 따르면, 공녀 출신으로 몽골 황궁에 들어간 기씨는 황제에게 차를 따라주는 궁녀였다. '황궁 커피점'에서 '서빙'을 하는 궁녀였던 것이다.

고려인인 기씨가 몽골 생활 초기부터 그런 보직을 맡은 것은 기씨가 몽골 언어 및 문화를 상당히 빨리 습득했을 뿐만 아니라, 몽골인들이 볼 때 상당히 기품 있는 몸가짐을 갖추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외모도 호감을 주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에 더해 기씨는 또 다른 매력들을 갖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지성미였다. '기황후 열전'에 따르면, 그는 틈만 나면 각종 역사책은 물론이고 여성의 품성에 관한 책인 <여효경(女孝經)>을 읽었다. '기황후 열전'에서는 기황후가 제2황후 시절에 읽은 책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원래부터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제2황후가 되어서도 열심히 독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궁에 들어간 뒤에 <여효경>을 열심히 읽은 것을 보면, 기씨가 여성의 품위를 갖추는 데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음을 알 수 있다. 또 궁에 사는 사람이 역사책을 탐독하는 것은 대개 정치투쟁의 지혜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기씨는 외형상 여성미를 풍기는 데 주력하면서도 정치투쟁 능력을 갖추는 데도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다.

이런 여성이 몽골 황제 옆에서 차를 따라주는 광경을 상상해보자. 고려에서 온 궁녀가 그냥 공손하게 차만 따라주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 뭔가 잔뜩 들어 있는 듯한 표정으로 여성미를 물씬 풍기면서 차를 따라준다면, 몽골 황제 입장에서도 말을 걸어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말을 시켜보았더니 고려인치고는 몽골어도 꽤 잘하고 상당한 지식도 갖고 있다면, 몽골 황제 입장에서는 단순히 차 따르는 궁녀가 아니라 대화 상대로 활용해보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만약 기씨가 기품·여성미에 더해 지적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는 황제의 총애를 받는 후궁이나 궁녀 수준에서 끝났을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한때 황제의 관심을 받다가 사라진 '차 따르는 궁녀'로 끝났을 수도 있다.

기씨는 자신을 연출하는 능력도 매우 탁월했다. 일례로, 한번은 몽골에 큰 기근이 발생하자, 그는 황제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이재민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구호 식량을 준비하고 사재를 출연해서 각종 구호품을 공급했다. 거기다가 아사자의 시신을 묻어주는 일에까지 직접 개입했다. 이런 식의 '연출'은 외국인인 그가 몽골인들의 지지를 받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런 선행을 '연출'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사실은 기씨가 좋은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인명살상을 불사하면서까지 권력투쟁을 벌인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정치적으로는 유능했을지 모르지만 인간적으로는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이런 속마음을 숨긴 채 선행을 베풀었기 때문에 기씨의 행위를 '연출'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배우나 탤런트를 뺨치는 이런 연출은 그가 이방인 출신의 일개 궁녀에서 제2황후로, 다시 제1황후로 수직 상승하는 데 적지 않게 기여했다.

지와 미는 겸비했으나 의리는 없없던 기황후

 함께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기승냥과 타환.
 함께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기승냥과 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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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실제의 기황후는 기품·외모에 더해 지성미나 연출력을 바탕으로 몽골 황제와 몽골인들의 마음을 유혹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실체를 알기 전까지, 몽골 황제는 '어쩜 이렇게 완벽한 여인이 있을까?'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늘을 쳐다보며 감탄했을지 모른다.

그런 기황후가 드라마에서처럼 무예와 의리까지 겸비했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랬다면, 그것은 도리어 그의 출세에 장애가 되었을 것이다. 기황후가 실제로 무예를 갖추었을 경우에 어떤 결과가 생겼을지는 판단할 수 없지만, 그가 실제로 의리를 갖추었을 경우에 어떤 일이 생겼을지는 어렵지 않게 계산할 수 있다.

기황후는 인명살상을 불사했을 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의리도 쉽게 내팽개치는 인물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토곤테무르칸에 의존했지만, 나중에는 토곤테무르칸을 약화시키는 데 주력했다. 그는 이전의 인간관계를 필요에 따라 곧잘 파기하는 사람이었다.

기황후가 의리 없는 여성이었다는 점은 고국인 고려와의 관계에서도 잘 나타난다. 훗날 그는 황태자인 자기 아들을 부추겨서 고려와의 전쟁을 선동했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 몽골과 고려 공민왕 사이에서 전쟁이 발생했다.

공민왕이 반몽골 정책을 펴고 기씨 집안을 탄압한 것이 원인이 되긴 했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자기 고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것은 웬만한 사람이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예에서 드러나듯이, 기황후는 의리하고는 담 쌓고 사는 여인이었다.

만약 기황후가 드라마에서처럼 인간을 사랑하고 동족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여인이었다면, 그는 몽골 황궁에서 그처럼 신속하게 출세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실제의 기황후는 자신이 드라마 속의 기승냥 같은 의리파 여성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감사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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