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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선생의 초록 강좌 모습.
 김민웅 선생의 초록 강좌 모습.
ⓒ 박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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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사람이 있다. 별거 아닌 이야기도 감칠맛 나게 하는 입담 좋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범한 이야기도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해서 새로운 의미로 되살아나게 하는 사람이 있다. 김민웅 선생은 그 두 가지를 다 갖춘 듯 보였다.

10월 마지말 날의 초록시민강좌는 '유쾌하고도 섬세하게 삶을 통찰하는 동화독법'이란 주제로 열렸다. 강사는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주제=권선징악' 으로 쉽게 넘어가던 평범한 우화나 동화의 숨겨진 의미를 찾고 분석하고 뒤집어서 그 안에 담긴 뜻을 독특하게 풀어 이야기 하는 강의가 새로웠다. 마치 무슨 기호학 강의처럼 선생의 강의는 평범한 이야기를 대단히 의미심장하게 다가오게 하면서 '아하~! 그렇구나'하고 동감하게 하는 흡인력이 있었다. 평범한 풍경에서 비범한 단서를 포착해내는 명탐정의 눈썰미처럼.

신데렐라, 해와 달이 된 오누이, 토끼전, 장화홍련전 이솝 우화… 등등의 이야기 역시 그랬지만 내겐 무엇보다도 성경에 나오는 99마리 양을 두고 없어진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선 목자의 이야기가 새롭게 느껴졌다.

내가 배정된 중학교가 미션스쿨이어서 난 중학교 내내 본의 아니게 주 3시간의 성경 수업을 받았었다. 그런데 성경시간 수업내용중 궁금한 것들이 참 많았다. 그중 하나가 99마리 양 이야기였다.

수업 중에 이 이야기의 예를 들면서 우리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을 이야기 하시는데 내겐 전혀 와닿지 않았다. 오히려 없어진(내게는 말 안 듣거나 규칙을 어긴 녀석들로 느껴졌다) 양 한 마리 때문에 나머지 99마리(착하고 규칙을 잘 지킨 모범적인 녀석들)의 양이 왜 집에도 못가고 기다려야 하는지 참 불공평하다고 느껴졌다. 꼭 반에서 잘못한 한두 명 때문에 단체기합 받는 듯한 억울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민웅 선생은 이것을 공동체의 이야기로 풀어나갔다.

99마리의 양에게 목자가 하는 말.

"너희는 함께 있으니 그래도 낫지 않느냐. 없어진 녀석은 이 밤이 지나면 늑대의 밥이 될 게 틀림없으니 지금 찾지 않으면 안 된다. 너희가 조금만 이해해주렴."

만약 그 목자가 그 한 마리의 양을 늑대 밥이 되건 말건 포기하고 그대로 돌아간다면 나머지 99마리의 양들이 속으로 "나 역시 무슨 일을 당했을 때 저렇게 버려질 수 있겠구나. 나도 이 목자를 믿고 두 손 놓고 있을 일이 아니라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나 살 궁리를 따로 해야겠네"라는 맘을 먹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것은 공동체 와해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이 이야기에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양 한 마리가 없어졌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볼 정도로 그 목자는 평소에 늘 모든 양에게 관심을 주고 아껴왔다는 것이다. 단 한 마리의 양도 허투루 취급하지 않고 정성껏 돌본다는 것, 바로 이점이 늘 "아! 나도 쟤처럼 보호받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주고, 그 목자의 행동을 이해하고 따르게 만든다는 것이다.

얼마 전 전교조 문제를 보고 느꼈던 생각이 오버랩 되었다. 승자독식의 체제로 질주하는 우리 사회에서 복지 논쟁을 보면서 든 생각이기도 하다.

99마리에서 분리된 한 마리양의 느낌은 어떤 것일까. 나와 상관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돌아서는 순간 남겨진 99마리의 양도 결국은 이렇게 한 마리, 한 마리 버려지고 살아남은 몇 마리의 양들처럼 이전투구 하는 처참한 모습으로 살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양희은의 노래 <작은 연못>에 나오는 물고기들처럼 말이다.

바로 이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이 보여주는 이 사회의 품격을 말해준다. 이러한 시각이 마땅히 어떠해야 할 것인지 새삼스레 깊이 다가왔다.

독일의 신학자 마르틴 니묄러의 글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처음 그들이 왔을 때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잡아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사민주의자를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민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체포했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대인을 잡아갔을 때
나는 방관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나를 잡아갔을 때는
항의할 수 있는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태그:#초록강좌, #김 민웅, #마르틴 니묄러, #공동체, #길 잃은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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