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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밤이 참 밝네요. 대낮 같네. 밀양은 해가 지면 깜깜한데…."

 

12일 저녁. 경남 밀양시 상동면 고정마을 주민인 강명숙(56)씨는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도보에 앉아 환하게 불이 켜진 건너편 고층 건물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가 사는 곳인 밀양지역에서는 765kV의 초고압 송전탑 공사가 한창이다.

 

강씨는 "서울 사람들이 이렇게 편하게 전기를 쓸 동안 우리는 집 근처에 전깃줄 못 지나가게 하려고 싸우고 있으니 좀 씁쓸하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2008년부터 밀양 상동면 고정마을에 살면서 쌀·감·고추 등의 농사를 짓고 있다는 그는 "정부가 사람 사는 동네에 송전탑 짓는 공사를 하루 빨리 그만 둬서 내년에는 나도 편하게 농사지으며 지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강씨를 비롯한 밀양 주민 6명과 밀양 송전탑 전국대책회의(아래 밀양 대책위) 관계자 등은 이날 오후 7시 30분 대한문 앞에서 집담회를 열고 정부와 시민들을 향해 송전탑 공사 중단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이들은 앞서 한국전력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뒤 국회에서 대한문까지 7.65km를 걸어오면서 밀양 송전탑 공사의 부당함을 알렸다. 지난 2주 동안 밀양에서 서울까지 국토대장정을 벌인 밀양시 상동면 금호마을 박정규(52) 이장과 주민 박문일(48)·정태호(37)씨는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집담회에 참석하지 않고 밀양으로 돌아갔다.

 

"아름다운 내고향에 송전탑 절대 들일 수 없어"

 

 

"765kV 송전탑 공사 중단"이라고 적힌 빨간 조끼를 입은 밀양 대책위 총무 김영자(58)씨는 이날 집담회에 참석한 50여 명의 시민들 앞에서 "구덩이를 판 자리에 누워서라도 송전탑 공사를 막으려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털어놨다.

 

"기차 철로 위 전선으로 2만 볼트의 전기가 흐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한 열차기관장은 나한테 '비올 때 철로를 지나가면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고 합디다. 그런데 내 친정인 고정마을이랑 시댁인 여수마을로 765kV 전류가 흐른다고 하니…. 아이고. 상상조차 안 되더라고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밀양시 상동면에서 살아온 나로서는 목숨을 걸어서라도 이 공사만큼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디다."

 

김씨는 "지금 내가 사는 여수마을에는 요즘 단풍이 물들고 있고, 근처 강에는 수달이 살고 있다"며 "아름다운 내 고향 풍경을 볼 때마다 송전탑은 절대 들일 수 없다는 각오을 다시 한 번 다지게 된다"고 말했다. 두터운 외투 차림으로 참석한 시민들은 그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었다.

 

송전탑 공사가 진행 중인 밀양 지역에 다녀온 적이 있다는 성미산학교 학생 공혜원양은 "서울에서 전기를 펑펑 쓰는 나 때문에 밀양 주민들이 어려움에 직면했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공사 현장에 가기 두려웠다"며 "하지만 막상 다녀와 보니 이렇게라도 주민들에게 힘을 보태면서 문제를 알려가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전했다.

 

"52기 중 13기 공사 진행 중... 앞으로의 싸움이 중요"

 

 

밀양 대책위는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는 지금부터가 진짜 싸움이라면서 서울 등 각지에서의 연대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계삼 대책위 사무국장은 "한전이 밀양 구간에 세울 계획인 송전탑 52기 가운데 주거지역에서 벗어난 13기가 공사에 들어선 상태"라며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마을들에서는 아직 공사가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의 싸움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사무국장은 "공사만 중단돼도 대화를 통해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라며 "많은 분들이 밀양에 계속 관심을 가져주고 힘을 보태주셔서 올 겨울에 송전탑 공사를 꼭 중단시켰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밀양 주민들의 계속되는 반발에도 '원활한 전력 공급'을 명분으로 '765kV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밀양구간 건설사업'을 강행 중이다. 한전은 오는 13일부터 철탑 조립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공사 현장도 이달 안으로 2, 3곳 더 늘릴 것으로 알려졌다.

 

밀양 대책위를 포함해 한진중공업·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은 이에 맞서 오는 30일부터 12월 1일까지 전국 각지에서 출발하는 '밀양 희망버스'를 계획 중이다.


태그:#밀양 송전탑, #희망버스, #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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