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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7시쯤의 카페 앞 모습이다.
▲ 카페 '시연' 저녁 7시쯤의 카페 앞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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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는 이제 예전의 홍대는 아니라며 다들 아쉬워한다. 추억 속에 기억되는 젊은 낭만, 인디 실험이 돋보이던 '그 시절의 홍대'는 이제 거대 자본에 밀려 구석으로 밀려나고 있다. 그러나 홍대의 생명력은 질기다.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는 옛 홍대의 맥을 끊지 않으려 노력하는 공간들이 꼿꼿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카페 '시연'도 그런 곳 중 하나다. 상수역(6호선) 1번 출구로 나와서 5분 정도 곧장 걸어가면 우측에 간판이 나온다. 작은 카페인지라 신경줄을 놓으면 자칫 그냥 지나칠 수 있다.

헌 책을 살 수도, 커피와 교환할 수도 있어

곳곳에 아날로그적인 소품들을 비치해 마치 오래된 서재에 있는 느낌이다.
▲ 카페의 한 구석. 곳곳에 아날로그적인 소품들을 비치해 마치 오래된 서재에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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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안을 흘끗 들여다보면 헌책이 곳곳을 장식하고 있어 '헌책 데코리이션 카페'인가 싶다. 허나 문 앞에 팻말을 보니 '헌책을 파는 카페'란다. 13.2m²(4평) 남짓한 카페의 벽면에는 빈틈없이 꽂혀 있는 헌책을 열람할 수 있고 단돈 3000원에 구매할 수도 있다. 커피를 마시며 책을 훑어보다 문득 정현종의 보물 같은 시구절을 3000원에 '득템'할 수도 있는 셈이다. 하지만 모든 책의 가격이 3000원에 고정돼 있는 건 아니다. 훼손 정도가 심하거나 두께가 얇은 책의 값은 더 내려간다. 자신의 헌책을 가져와서, 또다시 '득템'을 기대하는 사람을 위해 카페에 그냥 두고 가도 된다.

텅 비게 되는 카페의 위쪽 공간에 귀여운 2층 서재를 만들어 놓았다. 너무 작아서 올라가 봐야 들어갈 공간은 없다. 아날로그적인 소품과 헌 책으로 낡은 풍경을 만들어 놓은 내부 모습만을 보고 내려오려니 살짝 아쉽다.

재미있는 건 이곳에선 헌책과 커피 한 잔을 교환할 수 있다는 점이다. 헌 책 10권을 가져오면 원두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고 원두 200g과 교환도 해 준다. 단, 실용서는 금지한다고 한다.

이 거래는, 지금은 사라져 버린 그 옛날 폐지나 고물을 엿장수에게 내주고 엿을 손에 쥐었던 공유경제의 맛을 간신히라도 이어가고 싶어 하는 주인장인 원종창씨 발상 덕택에 경험할 수 있다. 주인장은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핏기 없는 질서를 잠시나마 거부하고 싶었다고 한다.

카페 곳곳에선 그가 작성한 메모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상식과 원칙의 승리, 손님들과 나누고 싶다." 카페 종업원이 귀띔한 바에 의하면 가끔 사용하던 물건을 "필요하신 분 가져가세요"라는 메모와 함께 남겨 놓기도 한단다. 물론 거창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 아기자기한 마음 씀씀이가 정겹다.

커피를 마시는지, 추억을 마시는지

주인장은 카페를 통해 돈을 벌고 싶은 생각은 없단다. 그냥 "예전 홍대의 맥을 묵묵히 지키고 싶을 뿐"이라고 고백한다. 홍대 정문 앞에서 와인바를 운영하기도 했던 그는 "돈 받고 파는 커피라는 개념보다는, 시연이 책과 거피의 물물교환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값도 아예 1000원대로 내리고 싶어 이를 생각중입니다."

이 주인장, 무언가 예사롭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독서광이었던 그는 80년대 대학을 다닐 때 사회과학 서적에 파묻혀 살았다고 한다. 사막처럼 건조했던 권위주의 시절, 사회의 내면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했던 전형적인 486세대였던 것이다. 주로 헌책방과 청계천을 돌아다니며 구한 책으로 요즘 젊은 세대에게 책의 향기를 느껴보게 하고 싶어 이 카페를 열었다고 말하는 그.

"위태로운 삶 속에서 여유로움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해요."

낡은 의자에 앉아 헌책을 읽으며 마시는 커피의 맛은?
▲ 카페에 비치돼 있는 의자와 탁자 낡은 의자에 앉아 헌책을 읽으며 마시는 커피의 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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켜켜이 쌓여 있는 책을 하나 집어 들면 기분 좋은 책 향이 '훅'하고 퍼진다. 지금처럼 세련된 표지 디자인은 아니지만 기품 있는 멋을 풍기는 표지를 쓱쓱 어루만지니 느낌이 좋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찌들어 있던 손과 눈이 오랜만에 호강하는 게다.

이 책을 거쳐 간 이는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여자? 남자? 학생이었을까? 책의 소유자가 느꼈을 사색의 느낌이 커피 향을 타고 무심하게 스쳐간다. 공간이 좁은 탓에 옆 손님의 기척이 더욱 친숙하게 다가온다. 근처 연남동에서 산다는 김혜미(32)씨. 오래된 소설을 읽다가 수줍게 말한다.

"건물 자체도 오래돼 보이지만, 카페의 벽을 차지하고 있는 헌책들이 빈티지 느낌을 내며 예스러운 느낌을 줘요. 커피를 마시는지 추억을 마시는지 혼란스러운 경험 때문에 종종 찾아요."

커피 가격은 아메리카노가 2500원. 라테는 여기에 500원만 더하면 된다. 10잔 마시면 1잔 무료 쿠폰도 준다. 4000원이면 핸드드립 커피를 즐길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 문의: 02-334-1606
- 영업시간: 오전 11시30분~ 밤 10시 30분
- 특이사항: 공간이 협소해 손님 10여 명 이상은 들어가기 힘들다.



태그:#카페, #이색카페, #헌책, #홍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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